테스트기의 붉은 두 줄은 꼭 아이의 핏줄처럼 보였다. 한없이 가는 생명줄. 남자는 나에게, 엄마에게 선물했던 것과 똑같은 붉은 립스틱을 사주었다. 왜 부자들은 자기 첩한테 언제나 같은 종류의 물건을 선물하는 걸까. 나는 남자 따위는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 분명 엄마도 그러리라 생각했다. 남자와 함께 있던 시간들은 엄마를 향한 사춘기 반항심같은 거였다. 새 아빠가 될지도 모를 남자와 함께 있으며, 나는 단 한 순간도 엄마를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래서 테스트기에 뜬 붉은 두 줄을 봤을 때 엄마에게 한 대 맞은 기분이 든 것도 사실이었다. 남자는 붉은 두 줄을 보고 말했다.
“낳고 싶으면 낳아, 기르고 싶으면 기르고.”
순간, 나는 내가 엄마가 겪었던 한 순간을 같이 겪는 중이라는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나는 곧장 엄마에게 가서, 테스트기의 붉은 줄을 알렸다. 엄마에게 말하면서도 엄마가 지우라고 말해줬으면 좋겠는지, 그 반대인지, 알 수 없었다. 엄마는 자신이 어떻게 말해야할지 아는 모양이었다. 엄마는 테스트기를 잡아 쓰레기통에 버린 후, 평소보다 크고 높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워.
나는 바다를 본 적이 없었다. 엄마는 바다를 본 적이 있을까. 왜 나는 바다를 본 적이 없을까. 왜냐하면 엄마가 내 곁에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아이에게 엄마 같은 엄마는 돼지 말아야지. 어쩌면 배가 완전히 부를 때까지 집에서 숨어있어야 할지도 모르니까, 지금 가야지. 아이의 심장은 완전히 모양을 잡았다. 아이도 바다 소리를 심장으로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엄마같은 엄마는 되지 말아야지.
바다로 달리는 차는 남자가 선물해 준 거였다. 엄마와 같은 기종이었다. 왜 부자들은 언제나 자신의 첩에게 같은 물건을 선물하는 걸까.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좋은 집에서 좋은 옷을 입으며 살고 있었는데, 내 주변에 엄마나 아빠는 없고 이모 한 명만 내 뒤를 졸졸 쫒아 다니며 날 시중들고 있었다. 이모는 소매가 다 떨어진 옷을 입고 내 시중을 들었다. 어느 날, 어떤 동화책을 읽었는데. 그 동화책에는 이모처럼 소매가 다 떨어진 옷을 입은 여자가 나왔다. 그리고 그 여자는 괴롭힘을 받고, 마법사를 만나서, 왕자와 결혼했다. 나는 이모를 불렀다. 그리고 책을 바닥에 던졌다. 이모가 무릎을 꿇고 책을 집어서 나에게 주자, 나는 책 모서리로 이모의 머리를 내리찍었다.
나는 마법사를 만나지 못했지만, 원하던 대로 엄마는 만날 수 있었다. 겨우 20분이었지만, 엄마는 화가 난 것도 같고, 무심한 것도 같은 얼굴로 내게 말했다. 엄마의 표정은 나를 태어나서 처음으로 주눅들게 만들었다.
“문제가 있니?”
나는 말했다.
“집이 너무 크다고 생각하지 않아?”
엄마가 나를 비웃으며 말했다.
“왜. 신데렐라를 읽어보니까 창고에서 살고 싶어졌니?”
나는 엄마의 오만하고 우아한 얼굴을 보며, 아, 나는 이 여자를 평생 못 이기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나는 오기에 입가기 비틀렸다. 고개를 높이 들고 말했다. 내 코끝은 머리에 붕대를 두른 이모를 향하고 있었다.
“저 여자는 너무 냄새나고 게으른 거 같아.”
엄마는 내 비틀린 입가를 손톱으로 눌렀다.
“넌 부자가 아니야.”
엄마는 내 바람대로 새로운 이모를 선물해주었다. 새로운 이모는 전보다 젊었으며, 전보다 깨끗한 옷을 입었고, 전보다 조용했다. 나는 그 후 단 한 번도 엄마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엄마를 보고 싶지 않아지자, 엄마는 불쑥불쑥 나타났다. 어느 날, 엄마는 어느 남자와 집으로 돌아왔다. 남자는 조금 취해있었다. 엄마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버렸고, 나는 거실에서 책을 읽는 중이었다. 남자는 나를 보고 놀라 소리쳤다. 그리고 내 옆에 와 앉았다. 나는 참 뻔뻔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너 쟤 딸이야? 얼굴이 쟤랑 똑같다. 딸, 너는 나이가 몇 살이냐?”
남자는 나에게, 엄마에게 선물했던 것과 똑같은 붉은 립스틱을 사주었다.
알고는 있었지만, 창 밖에 서 있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그녀가 참, 우아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가 그렇게 보고 싶어 했던 바다가 아니라,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누구에게 고개 숙인 적 없어 보이는 그녀의 얼굴표정과 곧은 등을 보고 있었다. 그녀를 보고 있으면 짓밟아 부숴버리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가방에서 내가 가진 것 중 가장 붉은 립스틱을 꺼내 발랐고, 거울을 보며 창밖의 그녀와 닮은 내 얼굴을 확인했다. 준비를 다 하고도 차에서 내리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건 어린 시절부터 그렇게 자랐기 때문이었다. 그녀를 두려워하며 자랐기에 때문에. 내가 차에서 내려서자 그녀는 언제나처럼 화가 난 것도 같고, 무심한 것도 같은 얼굴로 걸어와 내 뺨을 내리쳤다. 나는 고개를 숙인 채 혀로 터진 입 안을 쓸었다.
“좋아?”
그녀가 평소보다 높은 톤으로 말했다. 나는 그녀의 손에 묻은 내 립스틱을 발견했다. 립스틱인지 터진 입의 핀지 알 수 없었다. 고개를 들어 그녀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그녀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지는 것을 지켜보고 있으니 묘한 우월감을 느꼈다.
“좋아. 죽겠어.”
마주친 눈동자 속에 내 모습이 선명하게 보여서, 놀란 마음에 아직 팔다리도 생기지 않은 아이가 내 배를 차는 것같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