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가 어서 빨리 죽어버리면 좋겠다고 언니에게 말했다. 언니는 내가 심하다고 했다. 나는 그래도 죽어버리면 좋겠다고 말했다. 할아버지는 다시 일어났다. 거의 걷지 못하고 집에 쳐 박혀서 텔레비전만 본다고 그랬다.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술도 더 이상 마시지 않았다. 어쩌면 이미 그 병원에서부터 할아버지는 자기가 몇 년 안에 죽으리라는 걸 알았는 지도 모른다. 그리고 다시 할아버지가 쓰러졌다. 나는 딱 한 번 할아버지를 보러 갔다. 할아버지는 중환자실에 있었고, 면회시간은 아주 짧았다. 그나마도 여러 명이 쪼개서 봐야했기 때문에, 나는 몇분 보지도 않고 나왔다. 할아버지는 너무 작고 파랬다. 손은 차가웠고, 온갖 줄을 매달고 있었다. 나는 처음으로 할아버지가 불쌍했다. 그래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두 발자국 뒤로 물러나 딱 한 번 할아버지, 하고 불렀다. 할아버지는 멀리 가있는 것 같았다. 절대로 눈을 뜨지 않을 것 같았다. 엄마 말로는 가끔씩 눈을 뜬다고 했다. 그리고도 몇 달을 버티다 할아버지는 죽었다. 나는 여전히 할아버지가 주고 간 상처를 털어버리지 못했다. 나는 여전히 남자가 무섭고, 남자가 갑자기 화내다가 나를 때릴 것만 같다. 영문도 모른 채로 그 화를 견뎌내야 할 것만 같다.
할아버지의 장례식장 마지막날에 나는 이제는 파란색도 빠지고 하얗게 변한 할아버지를 봤다. 어쩌면 영혼만이 색을 갖고 있고, 육체는 원래 하얀색인 지도 모른다. 딱 네 번의 만남. 교통사고로 입원했던 붉은 할아버지, 집안의 가구처럼 앉아있던 노란 할아버지, 죽어가던 파란 할아버지, 그리고 죽어버린 하얀 할아버지가 지금도 그리려고 하면 그려진다. 나는 할아버지가 우리에게 옳지 못한 행동을 한 어른이라고 생각한다. 할아버지가 한 짓은 내가 사람을 믿지 못하도록 만들었고, 그래서 사람을 사귀고 유지하는 일을 힘들게 했다. 나는 여전히 누군가를 만나는 일이 버겁고 그래서 자꾸만 헤어져버린다. 하지만 아주 가끔씩, 지각해서 오토바이 뒤에 나를 태우고 초등학교까지 데려다주던 것, 그때 보이던 목덜미의 작은 사마귀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