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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나 Sep 01. 2023

애니메이션을 쓰는 마음<1>
(스포주의)

1화. 프롤로그



해당 글에는 애니메이션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애니메이션을 보신 분들에게 감상을 권하며 애니메이션을 아직 보지 않으신 분들은 스포일러가 상관없으신 분들만 읽어주세요.





 애니메이션을 좋아하기 시작한 언제부터였더라. 기억도 안 나는 어린 시절부터 낮에 쿨쿨 자고 일어나 밤이면 만화영화를 보여달라 부모님을 괴롭혔다고 하니 좋아한 기간은 사실상 평생에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정말 ‘나는 애니메이션 ‘덕후’다!’의 영역에 들어온 것은 조금 다른 시기였다. 이제는 너무 오랜 시간이 흘러 정확한 시기가 잘 가늠되지 않는다. 중학교 1, 2학년 때쯤이었던가. 어쩌면 더 빠를지도. 벌써 내 나이가 20대 후반이 되었으니 10년이 훌쩍 넘고 15년에 가까워지는 시간을 ‘애니메이션 덕후’라고 자부할 수 있는 시간을 보낸 경력직 덕후가 되었다. 나보다 나이가 많거나 덕질 경력이 긴 이들에게는 짧아 보일 수도 있겠지만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으니 그리 짧은 시간만은 아닐 것이다. 그 긴 시간 동안 흔히 덕질을 쉰다는 휴덕의 기간에 가까운 시간을 보낸 적도 있었지만, 휴덕은 있어도 탈덕은 없다는 말처럼 나는 늘 다시 애니메이션으로 돌아왔다.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데에 장애물이 없었냐고 하면 그렇지는 않다. 휴덕에 가까운 시간을 보낸 이유에는 그저 삶이 바빠서라던가, 다른 문제로 인한 감정의 변화, 혹은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런 시기가 찾아온 탓도 있지만 그뿐만은 아니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고 덕질하는 애니메이션은 기본이 일본 애니메이션. 개개인이나 문화콘텐츠에 무조건 역사적, 정치적인 이유를 가지고 판단하고 행동할 수는 없지만 일본과 한국의 심지어 아직도 풀지 못한 많은 일들은 한국인인 내게도 영향이 있었다.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일본의 문화라는 이유로, 일본과 해결되지 않은 일이 있다고 해서 싫어하거나 가치 평가를 낮추지는 않았다. 그랬다면 애초에 일본 애니메이션을 즐기지 않았겠지. 그래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작품 그 자체가, 혹은 좋아했던 작가가, 성우가, 더는 좋아할 수 없게 되는 이유를 가지고 있다면 그건 조금 다른 문제이지 않겠는가. 이는 사실 한국과 일본이라서가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는 문제이긴 하다. 최근 한참 논란이 됐던 마약이라던가, 큰 범죄행위인 음주운전 같은 사건들로 우리나라의 유명인들이 체포되는 등의 일이 있기도 하지 않았던가. 다만 일본과 한국 사이의 풀지 못한 사건과 그로 인한 관계로 더욱 자주 실망하고 상처받을 일이 생기곤 했다. 작가의 사생활과 작품의 평가 간의 관계에 대해서는 많은 의견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평가 자체는 그 작품만으로 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걸 소비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며 작품 내에 작가의 개인적인 문제가 되는 사상이 들어가 있는 경우는 또 다른 문제이니까. 나는 덕질을 하며 그런 문제들을 적지 않게 겪어야 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면 볼수록 사랑이 쌓여감과 동시에 불편 역시 차곡차곡 쌓여갔다. 꼭 일본 애니메이션이라서가 아니라 어느 나라의 어떤 작품이든 대놓고 나의 가치관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혹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부분이 담겨있는 예도 있을 것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에도 그런 게 있겠지. 하지만 그 외에도 미묘하게 불편한, 혹은 처음에는 불편한 것을 몰랐다가 반복해서 보고, 생각할수록, 나이가 들며 스스로 가치관이 더욱 정립되고 성숙한 사람이 되어갈수록 불편함이 인식되는 그러한 것들이 적지 않게 쌓여왔다. 이는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것일수도 있고, 그저 개개인 가치관의 차이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고, 바뀌어 가야 할, 바뀌고 있는 어떠한 문제일 수도 있다.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내게 일본과 한국 사이의 문제 외에 특히 두드러지게 느껴진 것은 아무래도 내가 여성이라 여성이 다뤄지는 방식에 대해서였다. 나 역시 여전히 건강한 가치관을 찾아나가는 중이고 만화에 따른 특성이나 방식에 따른 재미에 대해 이해하고 즐기는 편이지만 미묘하게 기저에 깔린 불편한 인식을 목격하게 될 때가 있다. 나는 늘 애니메이션을 보고 설레고, 사랑해 마지않았지만, 이러한 것들은 종종 내 사랑의 가치를 의심하게 했다.


 또한 때로는 문제는 작품 내에만 있지 않았는데 나는 2차 창작을 즐기는 덕후다. 아마 덕질을 하다 보면 어떤 종류의 2차 창작을 주로 즐기느냐는 둘째치고 즐기지 않는 경우는 흔치 않을 것 같다. 공식 일러스트 외에 SNS에서 개인 팬이 그린 그림을 보고 좋아하는 것만으로도 2차 창작을 즐기는 것이 아닌가. 2차 창작에는 저작권과 관련된 문제가 예민하게 엮여있고 2차 창작을 싫어하는 제작자들도 있지만 특히 애니메이션 시장에서는 2차 창작 시장이 커지는 것이 곧 작품의 성공과 이어진다고 할 만큼 밀접하게 연결되어있고 하나의 문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좋은 일도, 안 좋은 일도 일어나기 마련이지 아닌가. 앞서 저작권과 관련된 이야기를 한 것과 같이 사랑한다는 이유로 원작자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쉽게 벌어지기도 한다. 또한 인터넷에 발달 덕분에 함께 덕질을 하며 더욱 즐거운 덕질을 할 수 있는 커뮤니티가 활발하게 운영이 되는데 처음에 좋았던 모임이라고 늘 좋다는 법은 없으니 함께하여 2배로 즐거웠던 덕질이 때로는 2배의 괴로움으로 변질하기도 한다. 또한 SNS 등의 현재 가장 대표적이고 핫한 공간들을 활발히 쓴다고 할 수 있는 연령층은 아무래도 10, 20대의 어린 친구들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2차 창작이라는 자유로운 시장은 때로는 문제가 많은 결과물이 나타날 수 있고 그것에 가장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은 가장 활발하게 그것을 접하고 아직 자신의 가치관이 단단히 정립되지 않은 채 이런저런 것을 흡수하는 어린아이들일 것이다. 나 역시 이를 온전히 피해 가진 못했다고 생각하며 좋은 영향과 좋은 만남이 여전히 남아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 또한 지금까지도 내게 영향을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애니메이션을 사랑한다. 애니메이션을 사랑하는 것이 내게 때로는 혼란이었고 그리하여 때로는 방황했지만 여전히 애니메이션은 나를 설레게 한다. 내가 여전히 애니메이션을 즐기는 여러 이유 중 하나는 이 모든 일은 애니메이션을 사랑하지 않을, 애니메이션만의 바뀔 수 없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앞서 이야기하며 중간중간 이야기를 했지만, 이 모든 문제는 사실 어디서든 발생할 수 있고 발생해왔고 또 많은 이들이 더욱 옳은 방향으로 바꾸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부분이다. 나 또한 늘 보다 옳은 방향으로 삶을 이끌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나의 애니메이션 덕후로서의 모습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애니메이션을 여전히 사랑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여전히 애니메이션이 내게 설렘을 주고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모습을 하고 있다는 점이고 나는 무엇이든 불편한 점을 이유로 사랑하기를 포기하기보단 보다 사랑하며 불편한 점을 함께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꿔나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애니메이션은 내가 그렇게 사랑하는 것 중 꽤 커다란 사랑의 하나이다.


 요즈음도 나는 여전히 애니메이션을 즐기고 있다. 이제 내게 애니메이션은 즐긴다는 말과는 조금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시간 대부분을 애니메이션과 함께한다. 집중해서 글을 쓸 때나 책을 읽을 때, 다른 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때와 같이 애니메이션을 보지 않을 때도 분명히 있지만 보지 않아야 할 때를 제외하면 대부분 시간은 애니메이션을 본다. 무엇을 볼 것인지를 기대하고, 무엇을 봤는지를 생각하고, 애니메이션을 보지 않을 때면 애니메이션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고, 찾아보고 있으며, 결국 애니메이션을 쓰고자 하는 마음이 차올랐다. 그런 마음이 넘쳐흘러 내게서 흘러나오고 있어 나는 이렇게 애니메이션을 쓴다. 쓰는 인간인 내게 애니메이션을 보지 않을 수가 없는 이 마음이 애니메이션을 쓰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기 때문에.




 애니메이션을 좋아하기 시작했던 대략 15년여 전, 그때가 그다지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기억하는 나는 ‘명탐정 코난’으로 입덕했다. 약 15여년이 지난 지금도 보고 있는 애니메이션인 ‘명탐정 코난’ 입덕했다는 사실은 내게 감회가 남다르다. 어쩌면 내 기억에 오류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내 기억으로는 동생과 아빠와 함께 ‘명탐정 코난 극장판’을 보러 갔었다. 내가 극장판을 보러 가고 싶다고 주장하여 보러 갔던 거 같은데 어쩌면 아빠가 아닌 엄마와 보러 갔을지도 모르겠다. 극장판을 보러 가고 싶다고 주장할 정도면 이미 그 전에 입덕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내가 왜 그렇게 코난의 극장판을 보러 가고 싶었는지에 대한 마음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건 좀 슬픈 일이지 않나 싶긴 하다. 처음으로 입덕했던 그 마음을 잊어버리다니 말이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코난의 새로운 에피소드를 보며, 그리고 새로운 애니메이션들을 보며, 또한 보고 또 봤던 애니메이션들을 보며 여전히 늘 새로이 입덕하듯이 설레고 행복해하니 아쉬워하기보단 기억나진 않지만, 극장판을 보러 가고자 했던 내게 이러한 세계에 입덕하게 해준 것에 감사하는 것이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우습게도 나는 그때 봤던 코난 극장판이 몇 기 극장판이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코난 극장판을 보고 입덕했다고 하면서 이런 글까지 쓰는 내가 몇 기 극장판이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이 얼마나 황당하게 들릴지는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기억나지 않는데 어쩌겠는가. 지금은 모든 코난 극장판과 애니메이션을 몇 번이고 봤으니 극장판의 내용은 다 알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그래서 그 많은 내용의 극장판 중 그때 봤던 극장판이 뭐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유일하게 기억나는 것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던 그 순간. 


 설레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던 그 순간. 터져나갈 것 같은 심장과 함께 차오르는 흥분을 애써 감추고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은 설렘을 연신 삼켜대던 그 순간뿐이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서 나는 애니메이션 덕질을 시작했다. 검색해보고, 나온 애니메이션, 만화, 관련 게임 등을 찾아보고, 다른 사람들이 인터넷에 올린 해당 애니메이션에 관련된 게시물을 보기도 하고, 작가의 인터뷰 등을 보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과 애니메이션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애니메이션에 대해 계속해서 생각하고 상상하며, 다른 사람들의 2차 창작물을 보기도 하고, 나 역시도 2차 창작을 하기도 하고, 비슷한 다른 애니메이션을 찾아보기도 하고, 재밌다는 애니메이션을 찾아보고, 다른 애니메이션에 빠지기도 하고, 애니메이션 행사에 가기도 하고, 코스플레이어들을 보고 설레고, 공식 굿즈를 가지고 싶어 하고, 2차 창작물 굿즈를 사기도 하고, 그렇게 덕후가 되어갔다. 이후로 내 영혼은 늘 반쯤 애니메이션 속 세상에 살고 있으니 지갑은 늘 조금 헐렁하고 시간도 늘 부족하지만, 행복은 두 배인 사람이 되어 살고 있다.


 이러한 나라는 사람이 앞으로 매화마다 하나의 애니메이션을 가지고 와서 속 안에 담긴 덕심을 뱉어내고자 한다. 같은 덕후들은 즐겁게 함께 덕질하는 마음으로 즐겨주시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아직 보지 않았던 애니메이션이 있다면 글을 읽으며 입덕을 해도 기쁠 것 같다. 전혀 애니메이션을 좋아하지 않던 분들도 글을 읽고 입덕을 하셔도 좋을 것이며 그렇지 않더라도 누군가의 넘쳐나는 덕심을 즐겁게 즐겨주시면 감사하겠다.




해당 글은 경기청년갭이어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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