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명탐정 코난-1
해당 글에는 애니메이션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애니메이션을 보신 분들에게 감상을 권하며 애니메이션을 아직 보지 않으신 분들은 스포일러가 상관없으신 분들만 읽어주세요.
프롤로그를 쓰고 나서 처음으로 어떤 애니메이션을 가지고 글을 쓸지를 꽤 오래 고민했다.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이야 수도 없이 많으니 딱히 좋아하는 순서대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다. 애초에 순서를 매길 수도 없고. 하지만 아무렇지 않게 처음에 대해 생각하기에는 괜히 처음이란 단어가 주는 울림이 있지 않은가.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오랜 시간 덕후로 살아온 내게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의 순서를 매겨달라던가, 하나만 볼 수 있다면 뭘 보겠느냐던가 하는 질문은 잔인하기 짝이 없는 질문이고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인 만큼 처음을 단 하나를 정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러나 글을 시작하지 않을 수는 없지 않나. 그러니 그저 오늘의 선택이 선택하지 못한 다른 애니메이션들에 대한 모욕이 되지 않길 바라며 ‘명탐정 코난’으로 슬그머니 글을 시작해본다.
‘명탐정 코난’으로 시작하는 글을 보고 프롤로그를 읽으셨던 분들은 아, 처음 입덕하게 된 계기가 된 작품이라 이걸로 시작하나보다, 라고 생각하실 것 같다. 처음 어떤 애니메이션부터 쓰면 좋을까를 고민했을 때는 꼭 ‘난 코난으로 입덕했으니까 역시 코난부터 써야지!’ 하는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니었다. 앞으로 쓸 애니메이션들도 딱히 내가 입덕한 순서는 아니다. 입덕한 순서가 인제 와서는 기억이 나지도 않고 말이다.
처음 무슨 애니메이션을 쓸지 고민할 때는 최근 가장 빠져있으며 9월부터 시부야 사변 에피소드가 시작한 ‘주술빙빙(아님 주술회전임)’을 쓸까 생각하기도 했었다. 그러다 최근 다시금 정주행을 한참 했었던 ‘킨타마(아님 긴타마임. 은혼임. 금혼 아님.)’을 쓸까 하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또 내게 의미가 깊은 애니메이션이자 최근 라프텔에서 다시 감상할 수 있게 된 ‘듀라라라!!’를 쓸까 하기도 했었다. 그렇게 계속 생각하다 동시대 덕후들 중 이 작품을 파지 않은 여자 덕후는 없다고 단언해도 과언이 아닌 ‘가히리(가정교사히트맨리본)’을 쓸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레전드 오브 레전드 ‘헌헌(헌터x헌터)’을 쓸까 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또다시 생각하다 아니면 이걸, 아니면 이걸, 아니면 이걸?! 하는 고민이 끝도 없이 이어졌었다.
결국 터질 것 같은 머리를 부여잡으며 그냥 우선 저번 편에 언급하기도 했던, 나의 입덕작. ‘명탐정 코난’을 쓰기로 정했다. 길게도 이야기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기나긴 고민 끝에 전혀 고민하지 않은 결정을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몸은 작아졌어도 두뇌는 그대로, 미궁을 모르는 명탐정! 진실은 언제나 하나!”
애니메이션 덕후가 아니더라도 이 대사를 줄줄이 외우는 한국인들이 상당히 많을 것 같다. 아마 일본인들도 그렇겠지? 또 다른 외국에서의 코난의 인기는 잘 알지 못하니 모르겠지만 적어도 한국에서는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만화인 만큼 외우지는 않더라도 대부분 이들에게 익숙한 대사일 것이다. 자녀가 없는 나는 요즈음에도 아이들이 코난을 많이 보는지는 잘 모르겠다. 여전히 원작 만화가 연재 중이고 애니메이션의 새 에피소드가 계속 나오고 있으니 여전히 텔레비전에서도 나오고 있겠지, 그렇다면 요즘 아이들도 좋아하지 않을까, 포켓몬도 여전히 인기가 있다고 하니 코난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하고 생각할 뿐이다.
나 역시 코난으로 덕후의 길에 입덕하게 된 것은 맞지만 입덕이라는 표현을 쓰기 전부터 코난은 내게 익숙한 애니메이션이었다. 익숙한, 이라는 표현이 맞을까. 더욱 정확한 표현으로는 당연한, 이 맞을 것 같다. 당연한 애니메이션이라는 단어는 조금 이상하지 않나요? 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 있어서 코난은 정말이지 ‘당연한’ 애니메이션이었다. 늘 텔레비전에서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애니메이션, 애니메이션의 바이블,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그것에 대해 지금도 종종 느끼게 해주는 예가 있는데 고인물 애니메이션 덕후가 된 지금의 나는 애니메이션 대부분을 자막판으로 보는 것에 익숙한 편이며 코난 또한 자막으로 최신화를 챙겨보고 있다. 더빙이 잘 된 편인지, 안 된 편인지에 따라도 다르겠지만 보통 평소 듣던 목소리와 다른 목소리로 같은 내용과 캐릭터를 보면 어색할 수 있는데 코난은 내게 몇 안 되는 더빙판과 자막판, 둘 다 전혀 어색함이 없이 받아들여지는 애니메이션이다. 참고로 이것은 성우 분들의 연기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나 개인의 익숙함에 대한 이야기임을 명심해주셨으면 좋겠다. 물론 별개로 코난은 더빙이 아주 잘 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애니메이션의 말투들은 애니메이션에 따라 다르겠지만 현실에서 쓰는 말투와는 조금 다른 부분들이 있을 수 있고 일본과의 문화 차이도 있는 만큼 아무리 연기를 잘해도 어색함이 느껴질 수도 있는데 코난은 그런 부분을 잘 해결한 더빙이라고 생각한다.
저번 화에서도 이야기했던 것처럼 그런 당연한 애니메이션을 왜 갑자기 그리 적극적으로 극장판을 보러 가고 싶었는지, 평소에도 일상적으로 봐왔던 코난의 극장판을 보고 뭐가 그렇게 울림이 있었는지, 인제 와서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극장판이 가지고 있는 힘이 있음에 대해서는 여전히 공감하는 바이다. 나는 꼭 극장판 애니메이션만을 선호하거나 극장에서 보는 것만이 무조건 애니메이션을 보는 데에 있어 상위의 가치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분명 극장 관람이 주는 힘이 있다는 것도 무시하지 않는다. 시야를 꽉 채우는 커다란 스크린으로, 큰 스피커에서 나오는 온몸을 때리는 큰 울림으로, 불 꺼진 넓은 공간에서의 때로는 외로울 정도의 휑함으로, 때로는 내가 집중하는지 남이 집중하는지 알 수 없는 복작복작함 속 고요로 또 다른 세상에 머물게 해주는 그 힘. 극장에서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은 그저 눈으로 애니메이션을 관람하는 것을 넘어서는 온몸으로 애니메이션을 느낄 수 있게 하는 힘이 있다.
그뿐만 아니라 극장에서 애니메이션을 보는 마음의 열기에 더욱 부채질하는 것은 극장을 ‘가는’ 마음에도 있다. 애니메이션이 시작도 하기 전, 극장에서 개봉한다는 소식을 들을 때부터. 코난의 경우 매 극장판 마지막에 다음 극장판에 대한 예고가 나오니 사실상 그 전의 극장판 엔딩에서부터 설렘은 시작된다. 개봉 소식을 듣고, 개봉 일자를 기다리고, 표를 끊고, 보러 가는 그 길이 주는 설렘까지. 가는 길은 차가 막혀도, 지하철에 사람이 많아도, 몇 번을 갈아타야 해도 두근두근. 팝콘이며 오징어며 나초를 기다리는 순간도 두근두근. 영화관에 들어가기 전 미리 다녀오는 화장실을 가는 길도 두근두근. 광고를 보며 사 온 음식을 반 이상 먹어 치우는 일도 그저 재밌어 까르르 까르르.
그리고 엔딩이 흘러나올 때쯤엔 그 어느 때보다 두근두근. 좋아하는 것을 기다리는 기쁨과 좋아하는 것에 정성을 다하는 기쁨, 좋아하는 일을 온몸과 마음을 다해 느끼는 일, 그리고 그것들이 조화를 이뤄 충만한 행복으로 다가오는 일이 극장에는 있다.
이번에도 그랬다. 명탐정 코난 ‘흑철의 어영’의 개봉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나의 덕심은 시작됐다. 기다리는 시간이 안달이 나기도 했지만, 기다릴 것이 있다는 사실에는 일상을 보다 들뜨게 하는 힘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코난 극장판 중 손에 꼽게 좋아하는 작품들이 최근의 작품들은 아니지만 여전히 코난 극장판은 내게 그 존재만으로 충만함을 주는 힘이 있다.
코난 극장판은 늘 코난의 주인공인 ‘에도가와 코난’의 정체가 ‘쿠도 신이치’이며 그가 놀이공원에서 수상한 사람들의 뒤를 쫓다가 APTX4869(아포톡신4869)이라는 독약을 먹고 쓰러져 그 부작용으로 유아화 된 것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한다. 아마 모두가 알고 있겠지만 수상한 사람들의 정체는 검은 조직이라는 주로 검은 옷을 입고 활동하는 범죄조직이며 간부진들은 술 이름으로 된 코드네임을 사용한다. 유아화가 된 쿠도 신이치, 즉 코난이 검은 조직을 잡기 위해 아버지가 탐정인 그의 소꿉친구이자 짝사랑 상대인 ‘모리 란’의 집에 자신이 쿠도 신이치라는 것을 숨기고 함께 살게 된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그가 ‘쿠도 신이치’라는 것을 알고 있는 이들에 관한 이야기를 매번 소개해준다.
초반에 나오는 이 설명은 언뜻 들으면 그저 매번 하는 배경 설명 정도로 보이지만 사실 자세히 보면 그가 ‘쿠도 신이치’라는 것을 알고 있는 인물들에 대한 설명이 매번 조금씩 바뀌며 그들이 이번 극장판의 핵심 인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코난 덕후라면 이 또한 빼먹을 수 없는 소소한 재미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이번 ‘흑철의 어영’ 극장판에서는 코난이 아닌 중심인물인 ‘하이바라 아이’의 소개로 바뀌어 나오기도 했다.
또한 늘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고 하더라도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의 상징적인 시작은 늘 설레는 법이 아니겠는가. 또 극장판에서는 매번 코난의 은인, 아가사 박사의 새로운 발명품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편인데 이 새로운 발명품도 주로 초반에 어린이 탐정단 아이들과 함께 소개된다. 초반에 이러한 발명품들을 보며 어떻게 활용될지 상상하는 소소한 재미 또한 극장판의 놓칠 수 없는 재미라고 할 수 있다. 코난 극장판을 아직 한 번도 보지 않았던 분은 이러한 부분을 그냥 넘길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다음번에 극장판을 볼 때는 이러한 부분을 한 번 주의 깊게 보고 상상하는 즐거움을 느껴보시면 어떨까 권해드리고 싶다.
코난은 극장판만 해도 벌써 26기까지 나왔을 정도로 오래된 만화인만큼 최근 코난의 극장판은 날이 갈수록 액션이 화려해지는 맛이 있다. 판타지에 가까운 액션들이 나오는 것을 즐겁게 보는 분들도 많지만, 제아무리 독특한 발명품도 많이 나오고 코난에 등장하는 캐릭터인 괴도키드의 원작 ‘매직 카이토 1412(괴도 키드 1412)’에는 마법이 나오기도 한다지만 기본적으로 현실적인 세계관을 가진 ‘명탐정 코난’의 현실적이지 않은 액션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분도 꽤 계신 것 같다.
나는 개인적으로 환호한다, 까지는 아니지만 그다지 나쁘지 않다, 이다. 코난이 현실적인 세계관을 가진 것은 사실이나 조금의 오차 범위도 인정하지 않는 현재의 현실을 그리고 있는 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주로 이러한 화려한 액션은 극장판에서 많이 시도되는데 이는 극장판이 줄 수 있는, 극장판 애니메이션이기에 시도될 수 있는 기쁨을 좀 더 살리는 시도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보통 일주일에 한 번씩 연재가 되는 TV판 애니메이션보다 많은 제작비와 기간을 들여 만들 수 있는 극장판 애니메이션이기에 더욱 화려한 시도를 할 수 있으며 이는 극장에서 상영됨으로써 그 화려함이 완성된다. 그렇기에 물론 오랫동안 방영을 하다보니 점점 이전에 시도되지 않은 자극적인 연출에 초점이 가까워진 부분도 있을 수 있겠지만 기술의 발전과 함께 극장판이라는 특성이 만나 탄생한 화려함이라 나는 생각한다.
또한 코난 극장판은 기본적으로는 원작에 연재된 에피소드가 아닌 극장판만의 독자적인 에피소드로 제작이 된다. 그렇기에 원작의 세계관과는 별개라고 생각해야 한다. 물론 완전히 별개라고 보기는 어려우며 원작의 중요한 부분들과 연결된 부분도 있으므로 2차 창작처럼 아예 별개의 이야기로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원작에서 진행되는 에피소드가 아닌 별개의 에피소드이며 그래서 극장판 명탐정 코난은 조금 더 자유로움을 가지고 극장에서 봤을 때 더욱 즐길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 내는 데에 집중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명탐정 코난’이 고민을 가지고 시도를 하는 것도, 그 시도의 결과물인 ‘명탐정 코난’도 긍정하고 싶다.
뭐, 개인적으로 최근 가장 좋아하는 코난의 캐릭터가 ’후루야 레이’인 탓에 그가 극장판에서 보여주는 화려한 액션이 그저 좋게만 보여 긍정적인 마음이 드는 걸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이번 ‘흑철의 어영’은 팸플렛을 살 수 있어서 더욱 행복한 극장판이었다. 나는 굿즈라면 환장하는 오타쿠이지만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은 탓에 굿즈에 크게 돈을 투자하지 못하는 덕후이다. 게다가 한참 휴덕까지는 아니지만 비교적 가벼워진 덕심을 가지고 지내왔던 한동안이었기 때문인지 최근에는 어차피 다 살 수 없는 굿즈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아왔었다.
그러나 팸플렛이라니. 팸플렛은 덕후에게는 도무지 참을 수 없는 굿즈 아니겠는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정보성 굿즈에 환장하는 덕후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고인물 덕후인 주제에 코난 극장판에 팸플렛이 판매된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던 라이트 덕후라 부끄럽지만, 결론은 이번에 팸플렛을 마주해버렸다. 사실 ‘흑철의 어영’을 보고 나왔을 때는 팸플렛 판매 지점이 아닌 곳에서 봤기 때문에 팸플렛을 보지 못했었다. 그러나 이후 오펜하이머를 보러 갔던 용산아이파크몰 CGV에서 마주해버린 것이다. 감사하게도 남자친구님께서 팸플렛을 내게 하사해주셨고 그렇게 나는 행복한 덕후가 되었다. 팸플렛은 매번 만들지는 않는 것 같지만 원작자 ‘아오야마 고쇼’ 만화가 선생님의 코멘트, 성우분들의 대담, 다양한 분야의 제작진분들의 코멘트 등이 실려있는 돈이 아깝지 않은 알찬 굿즈였다. 내년 극장판에도 팸플렛이 나오기를 기대하며 이전에 발간된 팸플렛도 구할 수 있기를 하고 기대해 본다.
글을 쓰기 전에 어떤 글을 써야 할지 계획하고 쓴 것이 아닌 코난을 써야지! 결심하고 그저 코난에 대해 줄줄이 이야기를 늘어놓다 보니 자연스럽게 입덕 계기인 극장판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져 그에 대한, 그리고 새로 나온 극장판에 관한 이야기만 쓴 것 같다. 그래서 다음 화에 이어서 코난에 대한 조금 더 사적인 마음을 써보려고 한다. 참고로 위에서 한 번 언급하였지만, 나의 (현)최애캐는 ‘후루야 레이’이다.
0(제로), 좀만 기다려-!
해당 글은 경기청년갭이어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흑철의 어영 포스터 출처 : 네이버 영화
후루야 레이 출처 : https://namu.wiki/w/%EC%95%84%EB%AC%B4%EB%A1%9C%20%ED%86%A0%EC%98%A4%EB%A3%A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