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명탐정 코난-2
해당 글에는 애니메이션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애니메이션을 보신 분들에게 감상을 권하며 애니메이션을 아직 보지 않으신 분들은 스포일러가 상관없으신 분들만 읽어주세요.
앞서 지난 화에서 이야기했듯이 오늘은 조금 더 사적인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사적인 이야기에 가까운 코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애니메이션에 대한 사적인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덕후라면 최애캐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겠지. 2화 마지막에서 자랑(?)한 것처럼 나의 (현) 최애캐는 ‘후루야 레이’이다.
‘후루야 레이’, 다들 아시나요? 신캐라고 하기에는 등장한 지 좀 되기는 했지만 코난 초창기부터 함께한 캐릭터가 아닌 비교적 최근에 등장한 캐릭터이다. 코난 원작이 단행본 기준으로도 무려 100권이 넘게 나왔으니 등장한 지 조금 됐다고는 한들 다른 캐릭터들에 비해 전체 분량 기준으로는 상당히 최근에 나온 캐릭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 내, 혹은 한국에서 어느 정도의 인기인지 정확하게 내가 가늠할 수는 없지만 레이, 즉 제로의 등장으로 코난이 다시금 꽤 인기를 끈 것으로 알고 있다. (왜 레이가 제로인지는 작품에서!) 역시 사람 보는 눈이 다 비슷한 걸까? 물론 같은 애니메이션을 봐도 수많은 사람이 각자 다른 캐릭터를 좋아하곤 하니 모두의 눈이 똑같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제로가 대부분의 많은 덕후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들을 갖추고 있다는 것은 무시할 수 없을 것 같다.
사실 제로의 면면을 곱씹어 보자면 그다지 내가 좋아할 만한 요소들은 아니라 생각이 든다. 근데 왜 나는 제로가 최애캐가 되었나…. 일단 물론 잘생겼다. 하지만 잘생겼다는 점을 꼽기에는 코난 캐릭터들은 주인공 혹은 조연 격의 캐릭터들만 해도 다 잘생기고 예쁜 편이다. 코난 그림체가 외적인 부분이 엄청나게 강조되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다들 깔끔하게 잘생기고 예쁘다. 하지만 우리에게 비치는 코난 그림체로의 만화 속 모습이 아니더라도 제로는 코난 세계관에서 아주 잘생긴 편이다. 실제로 잠입 수사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는 카페에서 여고생들의 인기를 한몫 얻고 있다는 내용이 애니메이션에서 나오기도 하니까.
그리고 제로는 그 잘생김이 코난 세계관에서도 조금 독특한 편이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금발, 파란 눈. 물론 코난에는 외국인 캐릭터들도 많이 나오는 편이고 핫토리 헤이지만 해도 까무잡잡한 피부를 하고 있지만 제로는 그냥 외국인이라서 라던가, 그냥 까무잡잡한 편이라고 하기에는 그 외모에 중요한 서사가 있다. 혼혈이라는 이유만으로 어릴 적 친구들에게 받은 놀림, 그리고 거기에 주눅 들지 않고 맞서 싸운 어린 시절, 싸우는 아이는 안되지만, 친구와의 화해를 위한 명예의 훈장이라면 치료해주겠다며 치료해준 그의 첫사랑인 같은 혼혈의 의사 선생님, 그 의사 선생님은 인간의 모습은 다 제각기이지만, 모두가 똑같은 피가 흐른다는 것을 알려줬고, 그리고 일부러 치료받고 싶어 다쳐서 찾아오던 어린 후루야 레이를 두고 검은 조직으로 떠난 의사 선생님, 다시는 볼 수 없는 별로 떠나버린 의사 선생님. 그런 어린 시절을 겪으며 차별에 엇나가지 않고 자신도 남들과 다르지 않은 일본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경찰이 된 남자. 그리고 우수한 모습으로 공안에 발탁되어 젊은 나이에 그들을 진두지휘하는 위치에 이르고, 검은 조직에 잠입하게 되는 남자.
제로의 서사가 주는 울림이 그를 좋아하게 하는 걸지도 모른다. 코난은 기본적으로 매일 같이(…) 사람이 죽어 나가는 만화니까(추리를 해야 하니까…) 마냥 밝은 소년 만화라고 할 수는 없다. 주인공인 코난부터가 독약을 먹고 어린 아이가 되어 있지 않은가. 같은 어린아이가 된 하이바라 아이는 어린 시절 검은 조직에 들어가게 된 부모님을 따라 자신도 검은 조직의 과학자가 되어야 했다. 게다가 부모님과 언니가 모두 죽고 자신도 잡혀있다 죽음을 선택하기 위해 독약을 먹었다가 부작용으로 어린아이가 되어 탈출한 것이니 밝고 즐거운 서사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린아이가 되어 두 번째 삶을 살게 되었고 이제는 그 삶에서 또 많은 것들을 얻었고 어쩌면, 아니 아마도 확실히 (우리만 알지만) 검은 조직에 복수를 할 수 있게 되겠지. 하지만 여전히 작중 내 그 아이는 늘 불안에 떠는 삶을 살고 있고 언제든지 자신의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생각을, 언제든지 자신이 희생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런 그 아이를 그 상황들에서, 생각들에서 구원해주는 대상인 주인공인 코난. 그러나 그에 대한 감정이 커질 수도 없게 코난은 란과 공식 커플. 하이바라의 인생 또한 참 기구하고 쉽게 풀리지 않는다고 할 수 있겠다. 질투할 수도 없게 란은 못되기는커녕 왜 코난이 좋아하는지 알만한 멋지고 착한 아이이고 하이바라에게도 잘해주니 그저 빨리 이 모든 일이 끝나고 하이바라에게 정말 새 인생이 찾아오기를 바랄 뿐.(안돼. 그러면 만화 끝나잖아. 아냐 행복해…아냐 끝나지마….)
이런 하이바라와 같은 기구한 인생들이 몇몇 있지만 그래도 그들의 곁에는 의지가 될 만한 사람들이 꽤 있는 편이다. 코난은 우울하다면 마냥 우울한 만화일 수 있지만 그래도 나름 소년 만화 같은 전개를 따르는 편이다. 결국 정의는 승리하고, 우정과 사랑이 공존하는 만화.
하지만 후루야 레이의 인생은 어떤가. 물론 그는 지금 잘살고 있고 이렇게 이야기하는 게 실례일 수 있지만 팬들이라면 울면서 공감할 것이다…. 제발…우리 애 좀 행복하게 해줘요…. 자신의 첫사랑인 의사 선생님은 어린 시절 자신을 떠나버렸고(하필이면 검은 조직으로…) 그렇게 하늘의 별이 되어버렸다. 보통 코난 세계관에서는 소꿉친구와 사랑에 빠지는 게 공식적인 루트(?)같은 느낌인데 첫사랑이 유부녀(…)인 데다가 어린 시절 자신을 떠나 부부가 다 하늘의 별이 되어버렸고 그 부부의 자녀 중 비슷한 또래였던 아이 역시 하늘의 별이 되어버렸다. 제로를 떠나기 전 의사 선생님이 뱃속에 품고 있던 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검은 조직이 되어 독약을 연구하다가 어린아이가 되어버렸다.
첫사랑인 선생님, 선생님의 남편, 선생님의 딸이 다 검은 조직에 죽고 또 다른 선생님의 딸 또한 어린아이가 되어 검은 조직에 쫓기는 신세. 그리고 함께 검은 조직에 잠입했던 친구 역시 죽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검은 조직의 간부로서 잠입 수사를 계속 해야 하는 신세. 이만큼 처참한 인생은 흔치 않을 것이다.
게다가 그는…친구가 없다. (후루야: ??) 아니, 친구가 있었는데, 없어요. 같이 조직에 잠입했던 친구뿐만이 아니라 동기들이 모두 사망했다. 곁의 사람들이 다 죽어 나가도 트리플 페이스로 살아가며 아오야마 고쇼 선생님 피셜 ‘휴일은 없다.’는 인생을 살고 있는 그. 돈은 많겠지만 돈 쓸 시간이 없을 인생을 살고 있는 그의 인생은 경이롭게 느껴짐과 동시에 안쓰러움을 자아내기도 한다.
초반에 그는 나의 취향이 아니라는(?) 말에는 이와 같은 사고가 있는데 나는 결코 그와 같은 삶을 살지 못할 것이다. 그와 같은 삶을 살지 못할 거라 생각하는 지점은 여러 가지가 있다. 살지 못할 것 같지만 닮고 싶은 부분도, 그렇게 살고 싶지 않은 부분도 있다. 그리고 도저히 닮을 수 없는 부분도 있다.
그의 인생을 돌이켜봤을 때 나라면 이미 무너지고도 남았을 일들에서 여전히 꿋꿋이 하루하루 해야 할 것들을 하고 앞으로 내가 해내야 할 것들을 위해 노력하는 삶. 이는 닮고 싶은 부분이다. 무너질만한 삶이 찾아오길 바라지는 않지만, 삶은 늘 뜻대로 되지는 않는 법이고 나 역시 후루야 레이처럼 그 삶을 꿋꿋이 보다 나은 방향으로 살아내기를, 힘들다는 이유로 지금의, 앞으로의 삶을 내던지지 않기를 바란다. 하지만 모두가 알지 않는가. 그것은 정말이지, 쉽지 않다.
물론 나는 어제 내가 바라는 만큼 그런 삶을 살아내지 못했더라도 오늘, 그리고 내일 더 그런 삶에 가까워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애니메이션은 작중 내에서 비치는 단면적인 캐릭터의 모습밖에 볼 수 없으니 아마 그도 이런 혼란을 매일 같이 이겨내고 있겠지. 그러니 이러한 면은 닮고 싶은 모습이자 어쩌면 닮은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평생 자신 있게 닮은 면이라고 이야기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그 정도로 그런 태도로 삶을 관철해나가는 것은 쉽지 않고 나는 영원히 그의 영역에는 도달하지 못할지도 모르고 그렇기에 영원히 그를 동경할 뿐일지도 모른다.
그런가 하면 닮고 싶지 않기에 나와는 참 맞지 않는, 나의 취향에는 어긋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는 면도 있다. 공안이라는 직업 자체가 우선 그렇다. 국가를 위해 헌신하고 우리가 생각지도 못하는 일들을 하는 사람. 나는 자주 이런 특수요원 같은 삶을 그려내는 매체에 빠지곤 하지만 사실 내가 바라는 삶과는 그다지 맞지 않는다. 물론 나 역시 나의 국가에 대해 그 의미가 작지 않다. 하지만 무조건 특정 대상을 향한 헌신을 하는 삶은 내가 바라는 삶이 아니다. 게다가 경찰이나 군인 같은 조직의 특성상 수직적이고 엄격한 틀을 지켜나가야 하는 삶은 생각만 해도 숨이 막힌다. 조직의 특성에 따른 것이고 그것이 무조건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나는 도무지 그리 살 자신이 생기지 않는다. 그러니 지금도 봐라. 그들에게 그저 감사할 뿐인 글 쓰는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정확히는 코난은 일본 만화, 애니메이션이고 후루야 레이는 일본의 공안이니 한국과 일본의 아직 풀리지 않는 문제들은 생각하고 일본이 자신의 애인이라고 하는 그의 성격을 생각해보면…우리는 큰 갈등을 빚어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그와 같은 바쁜 삶을 살아낼 자신 역시 도무지 없다. 바쁘게 자신의 하루를 꽉 채워서 무언가를 이뤄내는 이들은 나를 자주 설레게 한다. 분명 그것은 어떠한 동경이지만 정작 내가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 내가 원하는 것에 모든 것을 퍼붓는 삶은 바라 마지않는 삶이나 내가 무엇보다 원하는 것은 내 곁의 이들과의 시간, 행복, 그리고 그저 평생 글을 써나가는 일뿐이다. 그러니 내가 아무리 원하는 삶에 충실해도 그와 같은 모습이 그려질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와 그의 다른 점은 그가 엄청난 능력을 지녔다는 것이다. 똑똑한 데다 전투 실력도 출중, 사격도 잘해, 여러 외국어도 능통, 요리도 잘해, 운전도 잘해(비록 차를 부셔먹지만…), 트리플 페이스를 그냥 유지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온갖 일에 능통한 사람이 바로 후루야 레이다. 나는 머리도 그다지 좋지 않고 운동 신경도 좋지 않은 평범한 글쟁이이니 그와는 인간으로서 전혀 다른 영역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그의 이 모든 것은 재능도 있겠지만 노력이 뒷받침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동경하는 점이자 내가 닮을 수 없는 점이라 생각한다. 나는 게으른 것으로 유명해질 수 있는 사람이고 그의 노력하는 면을 닮고 싶기는 하나 그의 영역에 도달할 만큼 모든 일에 노력하고 싶지는 않은 사람이다. 그러니 내게 그는 영원히 나와는 다른 영역의 인간일 것이다.
이렇듯 나에게 있어 ‘후루야 레이’는 같은 영역 안에 있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지만 그렇기에 동경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이다. 아니, 캐릭터라고 해야 할까. 나는 자주 주인공보다 주변 캐릭터들을 좋아한다. (물론 덕질을 하다 보면 결국 다 돌아가면서 좋아하긴 한다) 대부분의 소년 만화에서 그려지는 주인공은 재능충에 제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우정사랑노력으로 결국 그 모든 걸 이뤄내곤 한다. 그리고 그 과정이 애니메이션에 섬세하게 담겨있다. 그러나 주변 캐릭터들은 이미 많은 것들을 잃었고, 또 이뤘고, 그런 서사를 처음부터 온전히 보여주지 않았지만, 누구나 그렇듯이 알고 보면 속사정이 절절하고, 그러나 그것을 이겨내 지금에 이른 사람들. 나는 주인공의 마음으로 그런 이들을 동경하고, 사랑하고, 존경한다. 영원히 나는 저 사람처럼은 되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그런 나의 삶의 지침을 만들 수 있도록 해주는 사람, 그런 사람을 좋아하는 게 아닐까.
지금까지 ‘후루야 레이’의 절절한 삶에 대해서만 언급했지만, 사실 그의 인기에 힘입어 나온 명탐정 코난의 스핀오프 작품 ‘제로의 일상’을 보면 ‘하로’라는 사랑스러운 강아지 가족이 생겼다. 그의 곁에도 그를 위로해줄 소중한 가족이 생긴 것이다. 걱정되는 부분은 그의 팍팍한 바쁜 삶에서 하로가 누릴 수 있는 시간이 적지 않을까 하는 것이지만 제로와 하로, 그 둘이 가족이니 둘이 잘 맞춰 나가겠지. 나를 행복하게 하는 나의 최애캐들의 행복을 나도 바란다.
사적인 이야기를 하겠다더니 너무 ‘후루야 레이’에 대한 사적인 이야기만 줄줄이 늘어놔서 이게 뭐야, 싶으신 분들도 많을 것 같다. 다만 주저리주저리 하고 싶은 이야기를 늘어놓고자 쓰는 글이기도 하니 너무 불편하지만 않게 가볍게 쟤의 저런 사고의 흐름을 즐겁게 읽어주셨으면 좋을 것 같다. 정제된 글의 특성상 모든 덕심을 다 담을 수야 없고 그러려면 평생 코난에 대한 글만 써야 하기 때문에 글에는 다 쓰지 않겠지만 함께 코난에 대해 또 다른 것에 관해 이야기 나누고 싶으시다면 망설이지 말고 이야기 걸어주셨으면 좋겠다. 함께 즐겁게 덕질해보아요. 또한 언제 또 코난에 대한 글을 쓰고 싶어 코난을 써올지 모를 일이니 다른 애니메이션을 즐겁게 읽으며 또다시 코난으로 찾아온다면 반겨주셨으면 좋겠다.
다음 편에는 어떤 애니메이션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지 즐겁게 기다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원하는 애니메이션이 있다면 말씀해주시면 빠르게 가지고 오도록 할 테니 편하게 말씀해주세요:)
업로드일에 비해 늦어져서 죄송하며 오늘 오전 중에 업로드 예정이었는데 늦어져 죄송합니다. 늦었지만 글만큼은 즐겁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늦어도 기다려주시고 즐겁게 읽어주시는 마음에 보답할 수 있도록 다음에는 더 좋은 글로 정해진 일자에 빠르게 찾아오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해당 글은 경기청년갭이어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표지 및 본문 내 사진 출처 : https://namu.wiki/w/%ED%9B%84%EB%A3%A8%EC%95%BC%20%EB%A0%88%EC%9D%B4
제로의 일상 표지 출처 : https://namu.wiki/w/%EC%A0%9C%EB%A1%9C%EC%9D%98%20%EC%9D%BC%EC%83%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