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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엉 Apr 26. 2024

스트레스를 받으면 홀드를 잡습니다.

클라이밍 한번 해보실래요?

 살아가면서 한 가지 취미는 반드시 필요하다. 업무에서 벗어난 일상의 취미생활은 나를 스트레스로부터 자유롭게 하고 내일을 위한 새로운 에너지를 제공한다. 나는 그래서 클라이밍을 한다. 야근을 했더라도 오늘 너무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삼십분이라도 홀드를 잡기 위해 회사 앞 암장을 찾는다.


정확히는 볼더링
왼쪽부터 리드, 볼더링, 스피드

 편하게 '클라이밍'이라고 통용되지만 스포츠 클라이밍에는 리드클라이밍, 볼더링, 스피드 클라이밍 3가지로 나뉘며, 우리가 아는 실내 클라이밍은 '볼더링'이라는 종목이다. 볼더링은 '큰 바위'라는 뜻의 Boulder에서 파생된 용어로, 보조 장비 없이 팔다리로만 암벽을 오르는 것을 말한다.


암벽을 타기 시작한 이유

 2년 전부터 클라이밍을 같이 하자고 꼬시던 친구가 있었다. 그때는 듣는 척도 안하고 있다가 작년, 같이 클라이밍 한번 해보자는 Celia의 말에 바로 친구한테 전화를 걸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인생 스포츠를 2년 먼저 만날 수도 있던건데 아쉽다. 미안하다 친구야. 네 말 좀 들을걸.

친구에게 클라이밍을 배우고 곧바로 동네 클라이밍장을 등록했다.

 첫 날 해보니 느꼈다. '어, 이거다!' 머리도 쓰고 전신운동이 되니 여러모로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날 이후 며칠간 젓가락질도 힘들었지만 얼마 안가 암벽화를 구매했다.


왜하세요 클라이밍?

 운동이 된다.

 "클라이밍 그게 운동이 되나요?"라고 묻는 이가 있었다. 하루만 가서 해보라고 권하고 싶었다. 온몸이 근육통으로 몸부림치는 내일을 마주할텐데. 클라이밍은 전신 운동이다. 다리와 팔은 물론이며 손가락같이 안쓰던 소근육도 사용하기 때문에 여러 부위를 발달시킬 수 있다.

모든 문제에는 START와 TOP이 있다. START를 손으로 잡고 시작해서 같은 색 TOP에 두손을 모으면 끝. 문제의 난이도에 따라 테이프의 색이 다르다.

 헬스장에서 하는 운동은 솔직히 재미붙이기 쉽지 않다. 몸의 변화를 가시적으로 확인하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클라이밍은 나의 성장이 비교적 눈에 더 잘 들어온다. 문제의 난이도가 표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문제를 완등하는 프로세스가 게임과 같은 성향을 띠어 적성에만 맞는다면 재미붙이기 쉽다. 나중에는 레벨업을 위해 따로 헬스장을 찾아가는 자신을 볼 수 있다. 실제로 나는 클라이밍을 한 뒤로 1개밖에 못하던 턱걸이가 15개로 늘었고 레벨업이 하고 싶어 자발적으로 이두와 하체운동 등을 병행하고 있다.


퍼즐을 푸는 느낌

클라이밍은 어떤 홀드를 먼저 잡고 올라가는가
혹은 어떤 자세를 취하는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클라이밍은 문제해결능력을 향상시킨다는 연구자료가 있을 만큼 두뇌 사용이 중요한 스포츠다. 암벽을 무작정 힘으로만 올라가면 금방 지친다. 저 홀드들을 어떤 순서와 자세로 지나갈지 고민해야 효율적으로 올라갈 수 있다. 이를 '루트파인딩'이라고 하는데, 사람마다 신체조건과 생각이 달라 같은 문제 안에서도 다양한 루트들이 나오며 그 과정에서 무게중심, 힘의 배분 등 여러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나의 레벨이 오르면 오를수록 어려운 루트의 문제들을 마주하니 그 때는 더욱 머리를 굴려야 한다.


누군가가 문제 앞에서 열심히 마임을 하고 있거나 벽과 눈싸움을 하고 있다면, 그게 루트파인딩이다.

 완등을 위해 고민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도 즐거울 뿐더러, 열심히 연구한 방법으로 완등에 성공하면 그 쾌감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뿌듯하다. 내가 클라이밍을 하는 가장 큰 이유. 

이 문제를 성공하려고 20번은 넘게 붙었다.

 SNS에서 수많은 이들이 올리는 클라이밍 영상은 답지가 될 수 있지만 나는 되도록 내가 풀 문제는 보지 않는다. 문제를 푸는 과정을 온전히 즐기기 위해서다. 물론 이미 완등한 문제의 영상들은 사람들의 색다른 루트를 보는 재미가 있다.

 

복잡한 머리를 비우기 좋다.

누워서 쉬는게 아니라 스타트를 못하고 넘어진 것.

 사실 어떤 활동이던지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거나 머리를 비우는 각자의 방법들이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역할을 클라이밍이 해준다. 열심히 벽을 오르고 있다보면 다른 잡생각을 할 겨를이 없다.


 헬스장을 가면 운동에 몰입하여 이 세상에 거울과 나. 단 둘만 존재하는 것 같은 사람들이 있다. 클라이밍에서도 가능하다. 홀드를 잡은 이상, 이 세상은 저 암벽과 나의 대결일 뿐이다. 온전히 암벽을 완등하는 것에 집중하다 보면 머릿속에는 저 문제 외에 다른 것이 들어올 공간이 없다. 그렇게 클라이밍을 마치고 나면 개운한 느낌이 든다.

 

클라이밍은 혼자 하지만 함께하는 운동이다.

당신은 모르겠지만 많은 이들이 당신의 등반을 지켜보고 있다.

 암벽을 오르고 있으면 뒤에서 '나이스', '가자' 등의 응원이 들리고 완등을 하면 박수를 쳐준다. 내려와서 눈이 마주치면 가볍게 감사인사도 한다. 사람들의 응원 아래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성취감은 배가 된다. 처음에는 이런 상황들이 어색하고 부끄럽지만, 계속 듣다 보면 어느샌가 처음보는 사람의 완등을 응원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렇다고 동호회처럼 여러 명이 모여서 활동하는걸 선호하는건 아니다. 누군가는 파이팅 넘치는 모임의 분위기를 좋아하지만 나는 조용히 문제푸는게 좋아서 주로 혼자 운동한다. 하지만 그렇게 암벽을 오르다가도 같은 문제를 풀고 있는 모르는 이와 의견을 나누기도, 고수분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한다. 공통분모가 있으니 말을 주고받기 편해서 이런 스몰토크는 즐기는 편이다.


 이런 이유들로 클라이밍을 하고 있고, 클라이밍은 내 일상에 커다란 원동력이 되고 있다. 아마 내 몸이 허락할 때까지는 계속 홀드를 만지고 있지 않을까 싶다.


이런 분들에게 클라이밍을 추천합니다.

색다른 운동을 해보고 싶다.

전신을 골고루 단련하고 싶다.

퍼즐이나 '문제적 남자'같은 문제를 푸는 느낌이 좋다.

맨몸운동에 자신있다.

손바닥의 굳은살이 익숙하거나 갖고 싶다.

다이어트를 재밌게 하고 싶다.

전완근을 고구마처럼 키우고 싶다.

한 손으로 소주병을 따고 싶다.

회사 혹은 집 근처에 클라이밍장이 있다.

턱걸이를 잘하고 싶은데 따로 연습하기는 힘들다.

키에 비해 팔이 긴 편이다.

낙법을 잘 친다.

조심성이 많고 절제할 줄 아는 사람이다.

...


 장점만 있는 건 아니다. 방심하면 어디든 다칠 수 있는 운동이다. 재밌다고 너무 자주 하면 부상을 입는다. 신발은 너무 작아 발가락이 아프고 팔뚝은 상처투성이며, 찬바람만 불면 손가락이 시릴 때가 있다. 완등과 레벨업에 욕심부리지 않고 추가적인 근력운동과 휴식이 있어야 안전할 수 있는, 아니 그래도 다칠수 있는 결코 친절하지 않은 스포츠다. 그래도 나는 벽을 타고 있다.


 일터가 아닌 다른 곳에서 열정적으로 몰두할 수 있는 무언가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일 수 있다. 그 무언가를 찾고 있는데 뭘 해야할지 모르겠다면 근처의 클라이밍장을 한번 방문해 보는 건 어떠신지.


혹시 모르지 않은가. 당신의 인생 스포츠가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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