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 라이프 디자인
얼마전에 자주 메고 다니던 백팩이 운명을 달리했다. 고등학교때부터 10년을 넘게 들고 다니던 가방이었다.
특별한 이유로 오래 쓴 건 아니었다. 몇가지 불편함은 있었지만 버릴 이유가 되지는 못했다.
주변으로부터 "가방좀 바꿔라", "그것 좀 버려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는데 나는 그러지 못한 것이,
아마 이 가방이 담고있는 10년을 쉽사리 버릴 수 없던게 아닐까 한다. 물건을 오래쓰는 내 성격은 구매성향에도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지금 쓰고 있는 필통에 초등학교 3-6반이라고 써있으면 믿을까?)
지금의 나는 무언갈 구매할 때 '나에게 필요한 물건인지', '튼튼하고 질리지 않는지' 등을 따져가며, 오래 사용할 제품으로 고르는 편이다.
이런 내 구매성향에 딱 맞는 편집샵이 있다. 나같은 사람들이 찾는, 소위 '오래 사용되는 제품'들에게 'Long life design'이라는 정의를 내리며, 브랜드 철학으로 삼는 편집샵 브랜드 'D&department Store'.(이하 D&d)
일본에서 시작하여 한국, 중국에 해외 지점을 두고 있는 D&d는 중고 가구등의 재활용품, 특정지역 브랜드 제품, 본사에서 선정한 제품 등, 자사의 기준에 적합한 '오래도록 사랑받을 수 있는 제품'들을 판매하고 있다.
디앤디파트먼트의 시작
디앤디파트먼트 스토어의 시작은 디자이너였던 '나가오카 겐메이'가 자신이 수집하던 재활용품(중고물품)을 웹스토어에 올려 판매하면서부터였다.
1998년 즈음, 일본에는 재활용품점이 급증하기 시작했는데, 겐메이는 '물건의 생산과 신상품이 나오는 사이클이 너무 빨라서'라고 생각했다. 겐메이는 신형 구매를 위해 구형을 쉽게 버리는 소비자의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의 제품에 대한 사고가 문제가 있음을 느낀다.
그는 제품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공유할 수 있는 재활용품점을 만들고 싶었다. 겐메이는 제품 판매에 있어, 구매자 뿐만 아니라 판매자의 역할을 강조한다. 제작자와 제품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갖고 판매대 앞에 서야하며, 제품에 대한 건강한 인식과 사용을 구매자와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작자와 소비자를 잇는 올바른 다리역할을 하기 위해 D&d는 시작되었다.
롱 라이프 디자인(Long life design)
가게에서 제시하는 제품에 대한 기준은 '올바른 디자인'이었다. 디자이너의 시선에서 제품을 봤을 때 '저런 디자인을 만들고 싶어', '저렇게 장인정신이 담긴 제품을 만들고 싶어'라는 생각이 드는 제품을 판매하고 싶었다고 한다.
나가오카 겐메이는 재활용품점을 돌면서 유행을 타지않고 오래가는, 아름다운 디자인들은 디자이너의 명성에 기대지 않는다는걸 깨닫는다. 그리고 이는 60년대 디자인에서 많이 나왔다는 공통점을 발견한다.(60년대에는 전세계적으로 굿 디자인 운동이 벌어졌다고 한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60VISION' 프로젝트다. 60년대 디자인 제품들을 다루는 동시에, 12개 브랜드사들과 협력하여 그 시대 제품을 복각, 재생산하여 판매한 프로젝트인데, 이것이 '롱 라이프 디자인'이라는 D&d의 브랜드 철학을 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프로젝트의 출발점이었던 일본의 가구 브랜드 '가리모쿠60'은 지금도 D&d에서 다루는 대표 브랜드로 자리하고 있다.
롱 라이프 디자인에 맞는 제품을 선정하는 과정은 매우 신중하다.
제품을 실제로 6개월에서 1년 사용하고 취재를 하면서 튼튼한지, 아름다운지 등 여러가지를 판단하여 제품을 선별한다. 계속 생산이 가능한가도 제품선정에 있어 중요한 부분이다. 이토록 까다로운 선별 과정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브랜드들이 입점을 희망한다고 한다. 아마 D&d의 가치관에 공감한다는 반증이 아닐까.
지역을 살리는 커뮤니티
우리나라에는 D&d가 서울 한남점, 제주점 두곳이 존재한다. 이번 여름휴가로 제주를 다녀오면서, 제주점을 방문했는데, 많은 제주 지역제작자들의 제품을 만날 수 있었다. 가장 인상깊었던 건 지금은 없어진 제주 KAL호텔의 재활용품을 사들여와 판매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D&d는 그 지역의 많은 걸 이해하고, 받아들이려 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D&d가 지역점을 여는 최소한의 원칙들이 있다.
1. 본부가 선택한 롱라이프 디자인 상품을 판매할것
2. 해당 지역에서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일과 물건을 꾸준히 소개하고 판매하며 워크숍같은 모임을 만들 교류의 장이 되는 것
3. 먹고 마실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
디앤디파트먼트는 지역의 개성을 이해하는 장소가 되길 희망한다. 기준에 맞는 지역 제작자들의 상품을 팔고, 이들과 협력하여 독특한 클래스를 열기도 한다. 세미나를 개최하기도 하고 숨겨진 지역명소, 가게 등을 소개하는 잡지를 발행하기도 한다. 또한 매장에 카페나 레스토랑을 들여, 사람들이 모여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다. D&d를 한다는 것은 '지역의 개성을 디자인 감각을 사용해, 알기 쉽게 전하는 것'이라고 나가오카 겐메이는 말한다.
D&d에서 발행하는 '디자인 트래블'은 지역을 전달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일본 47개도도부현을 소개하는, 지역의 디자인과 여행을 주제로 한 디자인 트래블은 '반드시 자비로 이용한다. 실제로 숙박하고, 식사하고, 물건을 구매하여 확인한다.’를 하나의 편집 방침으로 삼고있다. 이 또한 지역에 대한 진심이 반영된 것이 아닐까 한다.
마무리
디앤디파트먼트 스토어는 '전하는 가게'라고 한다.
잘 팔리는 것이 아닌, 팔고 싶은 것을 파는 가게이다. 이익을 위하기 보다 올바른 제품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는 것에 집중하며, 지역의 중심이 되어 지역 사람들과 지역 제작자의 개성을 육성하는 일에 더 가치를 둔다. 높은 의식을 가진 손님을 상대하기 위해 본인들부터 준비하는 가게. 제품선정이 까다로워도 입점을 하고 싶은 이유, 위치가 불편하더라도 감수하고 찾아가는 이유. 우리는 D&d로부터 높은 소비의식을 배운다.
참고
"디앤디파트먼트에서 배운다, 사람들이 모여드는 전하는 가게 만드는법", 나가오카 겐메이, 2014, 에피그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