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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넌들낸들 Aug 16. 2023

어린 왕자를 다시 읽고

다시 읽으니 슬프다

나에게 어린 왕자란 책은 흑역사다.


중학교 들어가자마자

난 국어 선생님 눈에 띄었다.


글재주가 좋아 보였는지

예뻐해 주셨다.


중1 여름 방학 전


선생님은 따로 불러 개인 숙제를 내주셨다.

바로 어린 왕자를 읽고 후속 편을 지어오란 거였다.


방학 동안 어린 왕자를 읽어도 읽어도

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루하기만 했다.

너무 감흥이 없었다.

별 감흥 없이 읽다가

뱀에게 물려 죽는 어린 왕자 이야기 2를 지어라니

나에겐 어불성설이라 도무지 지어지지 않았다.

슬픈 이별 끝에 별에 돌아간 어린 왕자 라니...

정말 억지로 억지로 말도 안 되게 지어갔다.

(그때 내가 쓴 글이 흑역사이다.)


개학 후 선생님께 보여드리고 다음날 다시 부르셨다.

"너 책 읽은 거 맞니? 내가 널 과대평가했구나... 생각보다 너 감수성이 부족하네..."


뒤통수를 메가 펀치로 맞은 기분이었고

너무 창피했다.

교무실에 계신 모든 선생님들이 날 보고 비웃는 거 같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난 의도적으로 어린 왕자란 책을 싫어했다.


하지만 2 학기 백일장에서 다시 선생님께 특급 칭찬을 받았고 그때 쓴 글은 선배의 졸업 앨범에 실리기도 했다. 다시 글쓰기에 인정받은 나는 국어 선생님을 똑바로 볼 수 있었다. 어린 왕자로 뒤덮은 나의 오명을 씻어낸 듯했다.


몇 년 전 논술 수업 시간에 어린 왕자 수업을 해볼까? 하며 서점에서 그림이 마음에 드는 책을 샀다.

어린 왕자 책을 사놓고 보지도 않았고 수업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림만 봤다.

그러다 이번에

아이 유치원 보내놓고 어린 왕자 책을 읽어보았다.


읽으면서 눈물이 났다.


별을 떠나 여행하며 만난 어른들은 하나같이 너무 바빠서 어린 왕자의 친구가 되어주지 않았다.

그저 귀찮은 존재로만 여겼다.


그땐 외롭고 쓸쓸한 어린 왕자의 마음을 느끼지 못했을까?


지금 내 옆에 자라나는 어린 공주는 소중한 아이인데

나 또한 그 몹쓸 어른처럼

"엄마 바빠 나중에 놀자. 나중에 이야기하자."를 시전 했다.

아이가 얼마나 속상했을까?


아이에겐 엄마는 하나밖에 없는 존재인데 장미처럼 따가운 말을 해서 얼마나 아팠을까?


잘한다고 노력하는데

책을 읽다 보니

그 어떤 육아서보다 나에게 호통을 준 책이 되었다.

어린 왕자를 읽고 혼난 기분이다.


아이에게 더 소중한 별이 되고 주고 싶어졌다.

엄마가 너무 성숙하지 못해 미안하다.

아이가 열심히 색칠한 글라스데코....

엄마의 똥손이 뜯어주다 망쳐서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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