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드란 직업이 사실 별거 없다. 엄청난 시간을 투자해 떠들 멘트 생각하고 떠들고 사진 찍어드리고 길 안내 해드리고 유적지, 관광지 알뜰살뜰 잘 볼 수 있게 지식을 널리 알리는 일이다.
그나마 난 역사를 사랑하다 보니 유적지 소개나 설화 등 소개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신나게 떠들어 재낄 수 있는 만능입을 가지고 있었다.
그럴 땐 수다맨 저리 가라 혼자 열심히 떠들어댔다.
난 어릴 적부터 역사광이었다.
난 하나에 빠지면 열정적으로 빠지는데
그 열정 중 하나가 역사이다. 어릴 적 절이나 유적지 가면 줄자를 챙겨가 나무기둥 돌기둥 길이 재가며 유적지 탐구 했다. 아마 그 영향은 엄마와 함께 본 인디아나 존스 영화 때문이 아닌가 싶다.
한국의 인디아나 존스가 되어 특히 고구려와 고조선 연구하는 고고학자가 되는 게 꿈이었다.
그랬던 내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신이 나게 유적지 소개하는 가이드가 되었다. 그 또한 기뻤다.
대학 때 배운 거 중학생 때부터 챙겨보던 역사스페셜과 책으로 습득한 나의 지식을 다 뽐낼 수 있어 즐거웠다.
고객분들 중에도 설명 재미있게 잘한다며 칭찬해주시고 하고
기사님(과장님) 도 칭찬을 아끼지 않아
자주 섭외 되었다. 스케줄 빌 때는 국내 가이드 알바를 톡톡히 했다.
사스로 해외여행은 발목 잡혔어도
국내 여행은 언제나 붐이었다.
저렴한 가격에 당일 치기로 편하게 다녀올 수 있으니 너도나도 다녀왔다.
나도 가이드 삼아 내 취미 삼아 다녔다.
하루는 현타가 왔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외출 준비해서 5시 반에 기사님 만나 고객 맞을 준비를 하기 시작한다. 멘트 적어온 걸 보며 연습하며 고객님들 기다리며 보면 6시나 7시가 되어 고객님 한분 한분 오신다. 개중에는 늦게 오셔서 택시 타고 버스를 따라잡아 오시기도 한다. 그리 이른 아침부터 하루가 시작이 되어 다시 도착하면 이르면 밤 10시 보통은 12시가 넘는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퇴근을 하는데
내가 받는 하루 일당은 5만 원.
점심값 8천 원, 저녁값 8천 원이다.
관광지라 밥값도 비싼데.. 간혹 고객님들 쫓아다니느라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대충 끼니 때우기도 한다. 일하다 보면 배고픈지도 모르고 하루를 보낸다. 물과 커피만 있으면 잘 버틸 수 있었다. 그땐 젊었으니까.
가끔 휴게소에서 호두과자 사 먹으며 당을 채워나갔다.
난 그렇게 열정 페이만 받고 일을 했다.
하지만 가이드 일이 너무 재미있었다.
말하는 걸 좋아해 소개하는 맛으로
가이드하는 것도 있지만
그곳에 가야만 먹을 수 있고
그곳에 가야만 볼 수 있는 그 풍경이
너무 좋았다. 숨은 팁을 알려주고 아이들이 있으면 퀴즈도 내며 그 관광지를 알뜰살뜰 볼 수 있게 하는 그 묘미에 푹 빠져 살았다.
개인적으로 4~5월 보성 가이드 가는 걸 참 좋아했다.
어린잎으로 우린 녹차도 마시고 유난히 그때 먹는 녹차 아이스크림이 너무 맛이 있어서
지금도 4~5월 되면 녹차 아이스크림이 생각나 보성에 가고 싶어 진다.
지금 9~10월에는 순천만과 주산지가 너무 가고 싶다. 가을엔 무조건 가야 하는 장소이다.
풍경도 풍경이지만 주산지의 사과는 최고다. 생긴 것도 예쁜데 맛도 꽉 차있다.
가이드는 뒷전이고 난 주산지 가면 사과부터 사 먹었다. 어떤 고객님은 가이드 때문에 사과 따라 산다며 웃으며 사과장수에게 말하기도 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주산지 사과가 너무 먹고 싶다. (장염이라 과일 못 먹으니 더 먹고 싶은 것도 있다.)
그렇게 즐기며 일하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
왜 단돈 5만 원일까?
하루 종일 발로 뛰고 목이 쉬어라 일하는데
여행사 사이트에 상품 가격을 보면 가이드 팁이 포함되어 있다.
한 버스에 40명이 타면
그 가이드 팁 난 받은 게 없는데?
회사에서 가이드팁 포함한 가격이라고 소개하다 보니
해외 가이드처럼 팁은 받지도 못하고
회사에서 주는 단돈 5만 원만 받았다.
알아보니 요즘도 가이드 팁이 포함 사항에 들어가있다.
회사에 의문점을 제기했다.
그러자 온 답은
"★씨가 더 재미있게 잘해봐. 그럼 고객님이 가이드 팁을 주지. 왜 못 받아?"
하는 게 아닌가...
"아뇨. 상품에 가이드 팁 포함이라 하니 다들 내게 팁을 줬다 생각하고 안 주시는 거죠."
"그래 그 받은 가이드 팁이 5만 원이잖아."
"그럼 제 일당은요?"
"에이 ★씨는 깐깐해. 열정 페이 몰라?"
세상에 난 그동안 팁만 받고 하루 일당은 안 받고 일한 거였다. 정말 내 열정으로 일한 거였다.
그 뒤로 난 가이드 일도 때려치웠다.
투잡으로 뛸 만큼 좋아했는데...
" 다들 아는 사이에 뭘 그리 빡빡해. ★씨는 대형 여행사에서 일해서 잘 알면서.."
진짜 더럽고 치사한 인간들..
젊은 학생들도 이 알바를 뛰는데 하루 종일 일해서 고작 5만 원 벌고 집에 돌아가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