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선언 후 기가 찬 일이 많았지만 조금만 버티면 안 볼 사람이라며 웃는 얼굴로 잘 버티고 있었다.
한 달만 더 일해주기로 하고 난 내 갈 길을 준비했다.
그때 당시 세금 다 제하고 내 통장에 월급이 들어오는 돈은 고작 80만 원.
여직원 남직원 초봉이 두 배차이 났다. (퇴사하는 날 나는 고 노무현 대통령 시기로 청와대와 국민 신문고에도 글을 올려 서비스 직 월급차 두 배의 서러움을 기고했었다.)
그 두 배 차이도 기가 차는데
친한 친구 여행사에서는 사스로 힘들어졌다며
친구의 월급을 50만 원만 주겠다는 것이다.
일은 일대로 다 시키면서 말이 안 된다며
때려치워라 열불 터져라 말했다. 그 친구도 나와 함께 퇴사의 길을 걸었다.
나 또한 금방 월급 올려 준다 해놓고 사스가 발목 잡혀 월급이 아니라 주급마냥 토막 내서 들어왔다.
퇴사 앞두고 월급으로 장난치나 싶어 욱하는 마음에 물어보려는 차에 먼저 말을 꺼냈다.
"★씨 미안해. 여기저기 미수금 입금 해주고 나니... 며칠 뒤에 꼭 줄게."
"네..."그저 믿고 기다렸다.
며칠 뒤 나머지 금액도 들어왔다.
마지막 근무 날 소장은 또 부탁했다. 한 달만 더 일 해달라고...
난 단호했다. 더 이상 사무실에 나오기 싫었다.
그러자 소장은 월급 반토막 입금 해주며 나머지 금액 다음 주에 입금해 준다고 또 약속했다.
(결국 40만 원만 들어오고.. 나머지 40만 원은 아직도 받지 못했다.... 피 같은 내 돈으로.. 쓴 인생 경험을 했다치며 잊었다.)
마지막 근무 날이라 그런지
불쌍한 영혼처럼 보여 알겠다며 그러라고 했다.
소장의 부인이 찾아왔다. 날 찾아와 미안하다며 소장 대신 사과 한다는 거였다.
시기 탓으로 돌리며 여행사 침체기인 지금 여기저기 문 닫고 폐업하는 마당이니 이해는 간다고 했다.
난 그동안 내가 관리하던 고객들에게 문자와 메일을 보냈다.
단골 중소기업에는 더 이상 항공권 끊어줄 수 없게 되어 아쉬움을 표했다. 대신 절친한 언니의 연락처를 알려주며 항공권 발행 거래처를 소개해주었다. 티켓 끊어주며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을 접할 수 있었고 조금이나마 그들에게 도움이 되어주고 싶었다. 최선을 다해 친절 또 친절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일을 할 수도 있고 고향에 정착한다면 한국에서 좋은 추억만 가지고 고향에 돌아가시길 간절히 바랐다.
나를 통해 자주 여행 하시던 분들에게는
이 여행사는 퇴사하지만 프리랜서로서 여행 추천과 예약을 받는다고 안내했다.
다음날 아침
집에서 근무시간에 맞춰 컴퓨터를 켰다.
메일을 먼저 열었는데
기대도 못한 답장들이 와 있었다.
A 님은
★씨의 프리랜서 도전을 응원합니다
★씨 덕분에 부모님 모시고 즐거운 여행을 했습니다.
언젠가 또 여행 가게 된다면 ★씨에게 꼭 연락드리겠습니다.
B 님은
★씨 소개로 이번에 크루즈도 가는데....
★씨 통해 내가 여행 몇 번을 갔지만 다 만족했어요.
크루즈 다녀와서 또 연락할게요.
등의 응원의 메일과 응원의 문자들이 왔다.
고작 1년 여행사에서 일했는데
날 응원해 주는 단골 고객들이 있었다.
감사의 눈물이 났다.
그리고 응원해 주신 분들 중 몇 분은 약속을 지키듯 나를 통해 여행을 떠나셨다.
아무리 아는 거래처가 많다고 해도
난 경력 1년 차 여행사 직원이었던지라
프리랜서 일이 쉽지는 않았다.
내가 만든 단골 150명의 명단으로는 생활이 되지 않았고 영업과 명함도 한계에 부딪치고 새로운 길을 찾아야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난 열심히 영업을 뛰지 않았다. 새로운 내 길이 더 재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