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프리랜서 도전기

새로운 시작

by 넌들낸들

퇴사 선언 후 기가 찬 일이 많았지만 조금만 버티면 안 볼 사람이라며 웃는 얼굴로 잘 버티고 있었다.

한 달만 더 일해주기로 하고 난 내 갈 길을 준비했다.

그때 당시 세금 다 제하고 내 통장에 월급이 들어오는 돈은 고작 80만 원.

여직원 남직원 초봉이 두 배차이 났다. (퇴사하는 날 나는 고 노무현 대통령 시기로 청와대와 국민 신문고에도 글을 올려 서비스 직 월급차 두 배의 서러움을 기고했었다.)

그 두 배 차이도 기가 차는데

친한 친구 여행사에서는 사스로 힘들어졌다며

친구의 월급을 50만 원만 주겠다는 것이다.

일은 일대로 다 시키면서 말이 안 된다며

때려치워라 열불 터져라 말했다. 그 친구도 나와 함께 퇴사의 길을 걸었다.

나 또한 금방 월급 올려 준다 해놓고 사스가 발목 잡혀 월급이 아니라 주급마냥 토막 내서 들어왔다.

퇴사 앞두고 월급으로 장난치나 싶어 욱하는 마음에 물어보려는 차에 먼저 말을 꺼냈다.

"★씨 미안해. 여기저기 미수금 입금 해주고 나니... 며칠 뒤에 꼭 줄게."


"네..."그저 믿고 기다렸다.

며칠 뒤 나머지 금액도 들어왔다.


마지막 근무 날 소장은 또 부탁했다. 한 달만 더 일 해달라고...

난 단호했다. 더 이상 사무실에 나오기 싫었다.

그러자 소장은 월급 반토막 입금 해주며 나머지 금액 다음 주에 입금해 준다고 또 약속했다.

(결국 40만 원만 들어오고.. 나머지 40만 원은 아직도 받지 못했다.... 피 같은 내 돈으로.. 쓴 인생 경험을 했다치며 잊었다.)


마지막 근무 날이라 그런지

불쌍한 영혼처럼 보여 알겠다며 그러라고 했다.

소장의 부인이 찾아왔다. 날 찾아와 미안하다며 소장 대신 사과 한다는 거였다.

시기 탓으로 돌리며 여행사 침체기인 지금 여기저기 문 닫고 폐업하는 마당이니 이해는 간다고 했다.


난 그동안 내가 관리하던 고객들에게 문자와 메일을 보냈다.

단골 중소기업에는 더 이상 항공권 끊어줄 수 없게 되어 아쉬움을 표했다. 대신 절친한 언니의 연락처를 알려주며 항공권 발행 거래처를 소개해주었다. 티켓 끊어주며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을 접할 수 있었고 조금이나마 그들에게 도움이 되어주고 싶었다. 최선을 다해 친절 또 친절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일을 할 수도 있고 고향에 정착한다면 한국에서 좋은 추억만 가지고 고향에 돌아가시길 간절히 바랐다.


나를 통해 자주 여행 하시던 분들에게는

이 여행사는 퇴사하지만 프리랜서로서 여행 추천과 예약을 받는다고 안내했다.


다음날 아침

집에서 근무시간에 맞춰 컴퓨터를 켰다.

메일을 먼저 열었는데

기대도 못한 답장들이 와 있었다.


A 님은

★씨의 프리랜서 도전을 응원합니다

★씨 덕분에 부모님 모시고 즐거운 여행을 했습니다.

언젠가 또 여행 가게 된다면 ★씨에게 꼭 연락드리겠습니다.


B 님은

★씨 소개로 이번에 크루즈도 가는데....

★씨 통해 내가 여행 몇 번을 갔지만 다 만족했어요.

크루즈 다녀와서 또 연락할게요.


등의 응원의 메일과 응원의 문자들이 왔다.

고작 1년 여행사에서 일했는데

날 응원해 주는 단골 고객들이 있었다.


감사의 눈물이 났다.

그리고 응원해 주신 분들 중 몇 분은 약속을 지키듯 나를 통해 여행을 떠나셨다.


아무리 아는 거래처가 많다고 해도

난 경력 1년 차 여행사 직원이었던지라

프리랜서 일이 쉽지는 않았다.

내가 만든 단골 150명의 명단으로는 생활이 되지 않았고 영업과 명함도 한계에 부딪치고 새로운 길을 찾아야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난 열심히 영업을 뛰지 않았다. 새로운 내 길이 더 재미있었다.)

가끔 알바처럼 보너스처럼

일하게 되었고

워낙 쉽고 편리해진 세상이다 보니

더더욱 날 찾는 사람은 없어졌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