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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듯 평범하지 않은 지난날
너 같은 학생 처음 본다.
나의 수능 체험기
by
넌들낸들
Nov 16.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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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수능 치던 날도 흐렸다.
비는 오지 않았지만 흐리고 추웠다.
하지만 그리 매섭게 춥지 않은 날이었다.
날씨와 수능이 원수 지간인지
지구가 이상 기온으로 고통을 받아도
수능 날 만큼은 매섭게 춥다.
다행히 내가 시험 치던 날은
오늘처럼 흐려서 춥지 않았다.
비 오기 전은 덜 춥기 때문이다.
사실 수시 합격자여서
수험생을 만끽하기 위해
수능을 쳤다.
쉽게 말하면 수험표가 필요했다.
수능 끝나고 친구들과 신나게 놀기 위해
수험표는 필수였다.
여기저기에서 혜택을 받을 수 있기에
수험표가 너무 갖고 싶어
수능을 쳤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생때같은 응시료를 내고 받은 혜택이다.)
긴장감이 라건 일도 없던 우리 집
수능 시험날 아침
수험장으로 가기 위해 나서는데
엄마는 눈을 비비며 나왔다.
"엄마 나 수능치고 올게."
"오늘이 수능이가?"
"엄마 그것도 몰랐어?"
"몰랐지. 아나 가는 길에 김밥 포장해 가라."
수능날 남들은 3단 도시락이나 죽을 가져오는 판에
난 엄마에게 만원을 받아 김밥 천국에서 김밥 한 줄 포장해 갔다.
초라한 나의 도시락...
지금도 생각해 보면 좀 섭섭하다.
터덜터덜 수험장에 도착했는데
담임 선생님께서 교문 앞에 계셨다.
우리 반은 한 5명 정도 온 학교이며
다들 다른 학교 배정받았는데
담임 선생님이 앞에 계셔서 너무 놀라웠다.
기대도 안 한 응원을 받으며 기분이 좋아졌다.
선생님께서 챙겨주신 초콜릿을 먹으며
수험장에 들어섰다.
아는 친구라곤 한 명도 없고
분위기가 얼음장이 따로 없었다.
나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온 아이들은
눈 씻고 찾아봐도 안 보였다.
그 친구들에게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괜히 시험 치로 왔나 봐....'
수능 잘 치기 위해 애들은 문제집 풀이하거나 보고 있는데...
난 컴퓨터용 사인펜과 수험표만 가져온 학생이었다.
맨 앞자리에 앉아 덩달아 긴장감이 맴돌았다.
배우 이필모님 출처: 나무위키
지루한 국어 시험을 마치고
수학 시험 치는데
배우 이필모 닮은 감독관 선생님께서 내 앞에 서서 감독하셨다.
시험 치는 와중에 잘생긴 선생님에게 마음을 뺏기다니...
(나도 참... 엉뚱한 학생이었다
.)
수학까지 다 치고 나니 점심시간이었다.
같은 학교 친구들이 도시락을 들고 나에게 왔다.
친구들의 화려한 도시락 사이
초라한 김밥 한 줄
친구들이 날 동정하듯 자기가 가져온 도시락을 내 앞으로 내밀었다.
점심 다 먹고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싶어도 교실 안 학생들의 분위기가 너무 엄숙해서 밥도 조용히 먹어야 했다.
밥 먹고 앉아 있다가 갑자기 나도 모르게 충동적인 행동을 했다.
수능 포기.
점심 먹고 공부하는 학생들 사이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두리번거리기만 하는 내가 한심하고 미안했다. 창밖의 흐린 날씨마저도 날 우울하게 만들었다.
교문 밖에서 기도하며 기다리던 학부모들이 당황했다.
"학생 왜 나오니?"
"저 대학 합격해서 그냥 나왔어요."
"어머 너 같은 학생 처음 본다. 그래 조심히 가거라."
집으로 가는 길 신문을 샀다.
신문에는 수능 문제가 실려 있어서 구매했다.
내가 치지 않은
사탐과 과탐, 역사 문제가 너무 궁금했다.
거실에 편하게 앉아
홀로 문제를 풀고 채점을 했다.
"헐!!! 사탐 과탐 달랑 4문제 밖에 안 틀렸잖아. 아~~~~ 수능 다 치고 나올걸....!!"
혼자 집에서 미친 듯이 발버둥 쳤다.
며칠 뒤 수능 점수가 나왔다.
점수를 본 담임 선생님이 날 불렀다.
점수가 그렇게 나온 이유를 알려드리자...
담임 옆에 계시던 윤리 선생님께서는 웃으며 말하셨다.
"수십 년 교직 생활 중 너 같은 애 처음 본다."
"
죄송합니다
."
기어들어가는 내 목소리에 담임 선생님은 웃으시며
물었다.
"그 수험표로 뭐가 하고 싶어서?"
"영화도 보고 미용실도 가고 친구들과 레스토랑 가기로 했어요."
"아쉽진 않아?"
"안 그래도 집에서 신문지로 문제 풀었는데 사탐 과탐 4개밖에 안 틀려서... 아까웠어요. 수능 점수 좋았을 거 같은데..."
"네가 선택한 결과니까. 그래도 네가 갖고 싶었던 수험표는 생겼잖아. 그래 마음껏 재미있게 놀아라."
그 후 선생님은 한동안 새 외투를 입고 가도 머리가 짧아져도 운동화가 바뀌어도
"수험표 잘 쓰고 다니네." 하며 놀리셨다.
매년 수능날만 되면
철없는 내 과거가 떠올라
고개가 숙여진다.
그래서 가끔 꿈에서 난 수능을 다시 친다.
오늘밤도 꿈에서 수능 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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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섭 받기를 제일 싫어하던 사람이 잔소리꾼이 된 아이러니... 이것저것 떠오르는 일들, 맛집 소개, 육아 일상 등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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