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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한다 Apr 15. 2022

봄, 봄, 봄

독서사색

창밖을 봐. 지리 했던 겨울이 그 사이 가고 벚꽃이 마치 콘프레이크처럼 흩뿌려지네. 점심 밥 후딱 먹고 한분순 시인의 <시인은 하이힐을 신는다>를 읽었다. 역시 시는 아무나 못써. 뭐 좀 써보려고 기지개 좀 펴보려고 했더니만 기가 팍 꺾인다. ‘봄은 낭만이 출렁이고, 발끝에 내는 바스락거리는 기다림이며, 겨울이 혀 아래 숨긴 그대’ 라는 게 우리가 기다리고 기다리는 봄의 뜻이라는데 캬. 끝내주지 않나.


이 시를 읽고 나서 창을 열고 빼꼼히 고개를 내밀어봐. 지루한 코로나19로 온전한 일상들을 송두리째 빼앗긴 우리에게도 3번째 봄은 이렇게 성큼 와버렸지 뭐야. 내가 사는 도시에서 확진자가 나오고 딱 2년 되던 날, 퇴근길에 버스 차창 너머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봤는데, 사람들이 전부 하얀 호빵을 문 것처럼 보이더라. 이제는 마스크를 쓰지 않는 게 정말이지 이상할 정도가 되니 어디 그랬었나?


꼭 모든 상황이 납득되고 이해되길 바라는 건 오만이고 주제 넘은 것이지. 개인적으로는 일에 수술에 공부에 아이 훈육에 다채로운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너무나 스펙타클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은 꼭 놓지 않았던 거 같아. 그때 과연 독서는 나에게 어떤 의미였을까를 생각해봤는데 얼마 전에 김영민의 <공부란 무엇인가>를 보고 이거다 싶었다.


“내 작은 자살”


소설가 수전 손택이 한 말이다. 내 안의 죽음이자, 멈춤이란 뜻. 독서로 잠시 현재를 얼음! 멈추고자 한 나와 입장이 똑같아 정말 놀랍더라. 이런 이야기도 있었지. “독서의 적은 인생 그 자체다. 삶은 질투와 경쟁으로 뒤흔들리고 우리를 독서를 통한 자기 성찰에서 멀어지게 한다. 그 모래지옥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책을 읽는다. “ 이 말도 참 찰떡같이 착착 입안에 달라붙지. 에밀 파게라는 듣도 보도 못한 프랑스의 비평가가 한 말이라는데 난 내 안의 작은 자살이 더 와닿았다.


예측 불허인 삶에서 스트레스 가득 쌓이고 막 여기저기 화풀이하고 싶을 때 앞으로 <공부란 무엇인가>에서 저자 김영민 교수가 했던 말을 떠올리려 한다. 남에게서 뭘 빼앗는 것이 정말 나쁘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게 하는 환경에 놓이고 싶다는 말...남들이 보기에 성공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베드보이가 되고 싶지는 않다는 결심에 유독 공감한다.


나이가 들면서 이제 40대 중반으로 꺾어지니, 언제 고꾸라질지도 모르는 내 유한한 인생, 도끼눈으로 힐난하고 비판하면서 매순간 낭비하며 살고 싶지가 않더라. 가능하면 내 온건한 마음의 텃밭과 토대를 가꾸고 기회가 된다면 주변 이들에게 나눠주고 싶을 뿐. 더불어 돌이켜보건대 우리네 인생은 언제 탄탄대로 쭉 뻗은 고속도로인 적이 있었던가. 자조적인 말을 하다가도 지나온 세월 통째로 따져보면 또 그렇게 불평불만까지 할 필요가 있었던가 싶더라.


그래서 지금의 번아웃 비슷한 상황도 구조적으로 정말 해결하지 못하는 불가피한 상태라면 끓어오르는 화는 고이 접어두고 그래도 그 너머 긍정적 요소를 찾아보는 거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불편 끝엔 결국 설레는 발전...뭔가 모자라고 불안한 삶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견디다 보면 한 뼘의 성장이 있을 거라고 위로하며 다독이는 이런 저런 책들이 말대로 꽤 괜찮은 도피처였어. 내 분주한 고단한 삶에 있어 독서는 숨구멍이자, 안식처지.


독서로 현실과의 질긴 연결고리를 잠시나마 끊어버리고 현실의 시궁창을 뛰어넘고자 할 때는 나는 도서관이나 서점에 지친 육중한 몸을 끌고서라도 가곤 한다. 빼곡한 책들이 뭔가 날 제압하는 압도적인 뭔가가 있거든. 물론 요즘 같이 답답하고 숨 막히는 일상에서 제일 가고 싶은 데는 다름 아닌 바다향내 나는 해변이지 어디겠어? 춥지만 않으면 텐트 하나만 치고 파도 철썩 지근거리에서 책 한 장 넘겨보고 바다향 진하게 맡아보고 싶을 뿐이다. 그래서 더욱 기다리는지도 모르겠다. 진한 봄, 그리고 더 짙은 여름을


사진(성남시 태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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