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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한다 Apr 29. 2022

그래, 괜찮아. 네가 좋다면

독서사색

요즘 TV를 켜면 ‘아빠 찬스’ 이야기가 많이 들린다. 자녀 교육에 득이 된다면야 물고기를 낚듯 자녀를 연결해주고, 기회를 어떻게든 제공해주고픈 부모의 마음은 심정적으로 동의한다. 그렇다고 원천봉쇄를 할 수는 없지 않나. 그 고민은 어디가나 똑같다. 프랑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부모마다 숙제를 도와줄 수 있는 역량이 다르다는 이유로 초등학생에게 숙제 내주는 것을 금지하고자 했단다. 결과는 대실패, 비웃음만 샀다.


문제는 남한테 피해준다는 거다. 즉 기회의 사재기, 부모가 자기 아이에게 불공정하게 이득을 주면서 다른 아이들의 기회를 제약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리처드 리브스의 <20 VS 80의 사회>에서의 ”부모는 아이가 잘 살아가도록 도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할 권리를 갖지만 아이에게 경쟁 우위를 부여하기 위해 무언가를 할 권리는 없다.” 시사하는 바가 크다.


리처드 리브스는 작은 양보들이 모여 사회를 바꿀 수 있다 했다. 맥없는 착한 소리에 머리가 갸우뚱, 도통 모르겠다. 그 작은 양보조차 바로 나의 손해로 이어진다는 조급함 때문에 사회가 갑자기 순하게 바뀔 희망은 크게 없다고 본다. 오늘을 이해해보려 어제를 살피는 과정에서 나를 되짚어본다. 내 할아버지, 내 아버지의 찬스는 과연 어땠는지.


술 한 잔 따를 때 한 방울 흘리기만 하면 ‘썅’ 외마디가 참 인상적이었던 내 할아버지에게 또다른 기억 하나, 손주들 앉혀놓고 매번 하셨던 그 한마디, ‘아는 것이 힘이다’ 였다. 그도 그럴 것이 공사 직원의 팍팍한 월급에도 8남매를 의대, 약대, 음대, 경영대까지 그리고 번듯한 대학에 다 보냈고 그 자랑으로 70년 넘게 버티셨으니, 그에게 교육이 삶 그 자체였을 것이다.


희한하게도 우리 아버지는 달랐다. ‘남들 이목이 뭔 대수냐, 너가 잘 할 수 있는 것부터 찾아라’ 덕분에 남과의 우열을 당해볼 틈이 별로 없었다. 부모님은 어차피 사회에 나가면 다 경쟁이고 안온한 가정에서부터 벌써 지치게 할 필요가 있냐는 쿨함을 지니고 계셔서 다행이었다. 그러나 한 대 걸러서 유전일까?


내심 원하고 참 바랐다. 내가 뒤늦게 책을 즐기니 아들도 글줄을 제발 많이 읽어주기를… 허나 주로 만화를 많이 보길래 청소년 소설 같은 걸 여기저기에 깔아놓고 유혹의 소나타를 불렀던 게 수년째다. 근데 오전에 아이 담임과 전화 상담을 했는데 듣던 중 반가운 소리에 기분이 한결 낫다. “어머니, 얘는 완전 이과형이에요. 학습만화 아직 보죠? 냅두세요.“


어떤 이는 아이가 무엇이 결여됐는지를 보지 말고 아이에게 무엇이 있는지를 찾아내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고 했다. 팔랑거리는 마음을 다잡는다. 부족함을 찾아 채우려 하기 보단 모든 가능성에 마음을 열고 집중하자. 선생님과의 전화를 끊고 온라인 서점 중고매장에 들어가 신나게 학습만화를 사제낀다. 이번 주말엔 아들이 서바이벌 만화 과학상식 볼 때 조정훈의 <대치동>이나 읽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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