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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지 않겠지만 때론 단념한 듯 무심하게

마음의 얽힘을 풀다 : 단념

by 변한다

체념이 아닌 단념으로, 아집이 아닌 아량으로, 자만이 아닌 자긍으로 - 박노해


얼마 전, 전 직장 동료를 집으로 초대해 토요일 점심을 함께 했습니다. 그동안 퇴근 후 치맥으로 함께 시간을 보내던 우리가, 이번에는 내가 차린 식사를 나누는 건 처음이었죠. 그동안은 잘 몰랐던 그의 고생담을 듣고 싶었고, 특히 간호조무사 자격 취득을 위해 하루 종일 학원에서 공부하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했습니다. 나이가 들어 종일 엉덩이 붙이고 있는 게 얼마나 힘든지 조금은 이해가 갔고, 괜스레 마음 한편이 몽글몽글해졌습니다.


그가 내놓은 이야기 중 하나가 기억에 남습니다. "오십이 넘은 아줌마를 누가 써주겠냐"는 말에, 이직을 과감히 포기하고 25년간의 엔지니어로서 직장생활을 뒤로 한 채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모습은 '소리없이 강한 레간자' 라는 오래된 카피가 생각날 정도로 묵묵히 강해 보였고, 심지어 위풍당당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그 모습은 잠시 나를 3년 전의 내 모습으로 돌아가게 만들었죠. 그때, 나는 불안함에 휩싸여 수십 장의 입사 지원서를 제출하며 정신없이 이력서를 썼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손이 떨릴 정도로 초조했고, 그 불안정을 모면하기 위해 자격증을 따거나 책을 저술하는 등의 일을 하며 악착같이 살아왔습니다.


소노 아야코의 『나는 이렇게 나이 들고 싶다』에서 노년기에 필요한 네 가지를 '허용', '납득', '단념', '회귀'라고 했습니다. 나는 이 네 가지 중 '회귀'를 제외하고, 40대 이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허용', '납득', '단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중에서도 '단념'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싶습니다. '단념'은 마치 자동차가 저단 기어로 변속해 속도를 줄이는 것처럼, 지금까지 내달려온 삶을 잠시 멈추고 내 위치를 점검하는 과정 일종의 다운시프트입니다. 앞만 보고 달리던 길에서, 이제는 내 삶의 이상과 현실 사이의 틈을 메우며 불필요한 욕심을 내려놓고, 단념해야 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와 비교하면서 문득 내가 아직 '단념'을 하지 못한 채 계속해서 무언가를 움켜잡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와 달리, 나는 아직도 내 욕심과 남의 시선에 휘둘리며, 내 삶을 놓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모습이 더 대단하게 느껴졌고, 그에게서 아득함을 느꼈습니다. 그는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접점을 빠르게 찾고, 타협하며 나아가고 있었던 반면, 나는 아직도 단념하지 못하고 무심하지 못했던 것이죠. 거추장스러운 것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고, 내 안의 욕심과 외부의 기대에 휘둘리며 나를 놓지 못했던 것입니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지난해 40대 취업자는 총 617만 9천 명으로, 전년 대비 8만 1천 명 감소했다고 합니다. 이는 한국 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40대 취업자의 수가 최저치를 기록했다는 의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눈높이를 맞추세요"라고 말하지만, 막상 닥치면 그런 말을 쉽게 꺼낼 수는 없습니다. 몇 해 전, 나도 치열한 취업 전선에서 발버둥을 쳤기에 그들의 노력이 결코 부족하다고 말할 수는 없음을 압니다. 실제 모자란 것은 우리의 애씀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제공한 기회들입니다. 고질적인 내수 부진은 고용 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고, 그 부분에 대한 책임을 사회가 어떻게 설명하고 보상할 것인지도 생각해 봐야 합니다.


사회의 역할은 우리가 '체념'하지 않도록 돕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체념은 희망을 저버리는 것이지만, 단념은 미련 없이 과거를 내려놓는 것입니다. 사회가 그 차이를 인식하고, 우리가 절망과 고립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손을 내밀어 조금은 기다려주는 게 중요합니다. 지금처럼 다그치고 채근할 게 아니라.


소노 아야코가 말한 것처럼, 단념은 최고의 예술이자, 지혜로운 어른만이 할 수 있는 행위입니다. 제2의 인생을 열어가는 그의 모습에서 나는 또 다른 평안과 안정을 느꼈습니다. 이런 평온은 결코 쉽게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이 필요하고, 그 시간이 지나야 우리는 진정한 평화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 사회와 이웃들이 그 시간에 인내해주기를 바랍니다. 이제는 "눈높이를 맞추세요"라는 말이 아니라, 손부터 살며시 내밀어 주는 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나도 머지않아 맞이할 50대의 평온을 꿈꾸며, 언젠가 끝날 내 직장생활을 잘 마무리하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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