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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구했던 열등감

내면의 그림자와 마주하기 : 열등감

by 변한다

열등감이 나쁜 것은 아니다. 어떻게 다루는가가 문제다 - 알프레드 아들러


사실 내가 기억하는 과거의 학교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학생 간 갈등과 극적인 화해, 진한 우정이 넘치는 그런 곳이었지만, 그곳은 또한 내가 처음으로 경제적 차별을 뼈저리게 느낀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형편이 비슷했던 서울 강북에서 살다가 고학년이 되어 송파의 1988년 서울올림픽을 위해 지어진 대단지 아파트로 이사오게 되었고, 그곳이 우리 가족의 첫 새집이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유명한 혼성그룹의 멤버나 발라드 가수들이 살던 대형평수 아파트가 인기였고, 우리 집은 그에 비해 가장 작은 평수에 속했죠.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나의 생각은 참 어리석었지만, 당시에는 내가 살고 있는 동네가 내 작은 우주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파트 단지 안에 초등학교가 있었고, 그곳에서 아이들은 집의 평수나 자동차, 옷차림에 따라 자연스럽게 편을 나누며 차별이 일어났습니다. 그때의 경험은 정말 충격적이었고, 심지어 학원 선생님들조차 아이들의 부모 직업이나 경제적 상태를 기준으로 나누는 듯한 태도를 보였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스승의 날 선물을 준비하는 것조차 신경 써야 했던 것 같습니다.


그때 나는 친구들에게 집 평수를 물어볼 때면 떳떳하게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러워했고, 유명 브랜드의 옷을 입지 못하거나 외식을 마음껏 할 수 없었던 가정형편에 대해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왜 월급 많이 주는 은행에 다니지 않지?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사업을 왜 하지 못하는 건가?' '우리 엄마는 좋은 대학을 나왔는데, 왜 계속 직장에 다니지 못한 걸까?' 그렇게 나는 열심히 일하는 아버지와 우리를 살뜰히 돌보는 엄마를 이해하기 어려웠던 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기시미 이치로 선생님의 <마흔에게>에서 언급된 아들러 심리학을 떠올리면, 열등감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아들러는 사람들이 열등감을 느낄 때 그것을 극복하려는 우월감을 추구하게 되며, 그 과정을 통해 성장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학창시절 수많은 아르바이트를 거쳐, 지금껏 20년 동안 회사를 다니며 내 삶을 일궈오며, 어렸을 때의 경제적 비교에서 오는 열등감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큰 원동력이 되었음을 느낍니다. 그래서 그때 내가 느꼈던 열등감이 오늘날 내가 서 있는 강한 우월감의 뿌리가 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열등감에 휘말려 집에 들어가는 것도, 경제적인 이유로 불화를 겪는 부모님을 마주하는 것도 싫었으며, 유복한 가정의 친구들은 편히 사는 것 같아 굳이 내가 치열히 공부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 다양한 상황에 처한 친구들을 알게 되면서, 분명한 사실은 그때의 열등감을 대면하고 풀어내는 일은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내 상황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그때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아들러가 말하는 '건전한 우월성의 추구'는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방식이 아니라, 자신이 쌓아온 것을 하나씩 더해 가는 방식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타인과 비교하지 않고, 내가 이뤄낸 성취에 집중하며 나만의 가치를 느끼는 것, 그것이 내가 지금까지 깨달은 나만의 우월성입니다. 35년 전, 나는 타인과의 비교 속에서 열등감에 휘말렸지만, 그 과정 속에서 경제적 어려움을 일찍이 깨닫고, 그것을 극복한 사람들을 순수하게 인정하고 존경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부를 이룬 사람들의 노력을 쉽게 폄하하거나 운이 좋았다고 말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혹시 당신이 지금 열등감에 휩싸여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라면, 잠시 숨을 고르고 그 열등감이라는 친구와 대화를 나누어 보세요. 그 친구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그 상황에서 내가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 한번 생각해보세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용기를 내어, 그 열등감을 넘어서 가는 길을 함께 걸어보세요. 열등감은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알려주는 중요한 조언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내가 겪은 경험을 통해 조금이나마 느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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