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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침잠이 필요한 때

마음의 얽힘 풀기 : 침잠

by 변한다

본질적으로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한 통제력을 가지고 있다. - 스피노자


"등뼈가 부러질 것처럼 아프고, 창자가 끊어질 것처럼 힘든 고통 속에서, 그저 편안해지고 싶다."


이 말은 한 지상파 기상캐스터가 직장 내 괴롭힘에 시달리며 세상을 떠났다는 의혹이 제기된 사건에서, 유족 측이 전한 자살 시도 당시의 고백입니다. 그 고통이 얼마나 깊고 참담했을지, 그 안에 담긴 아픔을 감히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이 기사를 처음 접한 장소는 아마도 내가 자주 찾는 비브리오세라피 공간인 도서관이었을 것입니다. '비브리오세라피', 즉 '독서치료'는 20세기 영국의 건강보험공단에서 처음 언급되었으며, 고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입구에도 '영혼을 치료하는 장소'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고 합니다. 나의 비브리오세라피는 30대 이후 오로지 책 속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최근 이직, 학위 취득, 그 외 여러 가지 스트레스가 쌓여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나는 그 무거운 생각들을 잠시라도 내려놓기 위해 책 속에서 위로를 찾습니다. 그곳이 내 유일한 숨구멍이자 위안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 한때 왕따의 기억들이 있습니다. 첫 경험은 초등학생 때, 그 이유는 명확하지 않지만 아마도 몇몇 힘 좀 꽤나 쓰는 친구들과의 불화가 원인이었을 것입니다. 그때는 그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뛰고, 눈을 마주치는 것조차 두려웠습니다. 나는 점점 더 철저히 소외되었고, 그로 인해 방과 후 혼자 시간을 보내며 우울한 날들을 보냈습니다. 당시 나는 2층짜리 주택에 살았고, 몇 번은 뛰어내릴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용기가 없었습니다. 그때 '토지'라는 드라마가 인기였는데, 나는 드라마 속 장면들을 하나하나 곱씹으며 외로움을 달래곤 했습니다. 학년이 끝나 전학을 갔고, 그 친구의 소식을 잊고 지내던 중 대학에 가서 우연히 그를 찾게 되었습니다. 그때, 이상하게도 날 괴롭혔던 그 친구가 보고 싶었습니다. 기대를 품고 만났지만, 그때의 커다란 벽 같았던 존재감이 지금은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결국 나의 기억 속 감정들이 왜곡된 것 같다는 생각조차 들었습니다.


그때 나는 깨달았습니다. '지나고 나면 사실 아무것도 아니었고, 내가 그 감정을 너무 오래 묵혀두었구나.' 이제는 사람에게서 받은 감정들을 그대로 담아두지 말고, 삼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감정의 끝까지 한 번쯤은 가보는 것입니다. 한숨도 쉬어보고, 울어보며, 분노하고 아파한 후에야 비브리오세라피든, 드라마세라피든, 정신과 상담이든 나만의 방법으로 치유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그 감정을 잘 소화하고, 마침내 삼킬 수 있습니다.


때로는, 천하의 예쁘고 깜찍한 아이브의 장원영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나도 마찬가지로, 누구에게나 사랑받을 수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왕따의 아픈 기억이 여러 번 있다고 해서 그 괴로운 과거들이 매번 반복되는 것도 아닙니다. 감정을 삼키고 그럭저럭 견디다 보면, 사실 모두와 잘 지내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한 사람이라도 소중한 관계를 만들어 나가면서, 나쁜 기억들은 점차 희미해집니다. 이제는 주위의 소외된 사람들에게 더 눈길이 가고, 한 번이라도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여유도 생겼습니다.


그래서 나는 생각합니다. 모든 것이 나쁘지만도, 모든 것이 좋지만도 아닌 것이 바로 우리 인생이라는 사실을요. 이제 그 시간들은 지나갔고,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누군가에게 와닿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와의 소통입니다. 그리고 감정의 밑바닥까지 가보고 그 결론을 짓는 것, 특히 그 시점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는 어쩌면 위로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겪었던 힘든 시간들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그것이 결국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 원동력이 되었음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안광복의 <철학으로 휴식하라>에서 태풍이 부는 까닭은 내 인생을 결딴나기 위해서가 아니고, 내 일상을 힘들게 하려고 경제 상황이 꼬여버린 것도 아니며 세상이 되어야 하는 대로 흘러갈 뿐이니, 필연을 받아들이라는 스피노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우리의 마음이 누군가로 인해 힘든 처지에 놓여 있다면, 그것을 진정시키고 온화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우리 자신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안정을 찾아 나갈 것이고, 보다 밝은 마음과 조금은 펴진 어깨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부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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