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고요히 견딜 수 밖에

마음의 얽힘 풀기 : 분노

by 변한다

분노를 품은 상태로 지내는 동안, 당신은 정신적인 평화의 60초를 포기한다. - 랄프 월도 에머슨


예전 회사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해외 영업팀의 후배 대신 발표를 맡게 되어, 출장을 가게 되었습니다. 직전까지 달달 외워가며 완벽을 기했습니다. 그만큼 준비에 신경 썼고, 덕분에 무사히 잘 마쳤습니다. 그날은 안도감에 몇 잔의 와인을 마시며 관계자들과 스몰토크를 나누고, 친목을 도모하는 뒷풀이도 즐겼습니다.


돌아온 직후, 어느 날 상사가 나를 불렀습니다. "정말 잘했냐?"는 의심 섞인 질문을 던지더군요. 발표뿐만 아니라, 우리 회사 기술에 관심 있는 투자자들과 명함을 잘 교환하고, 다음 미팅을 잡으면서 주최 측 인터뷰까지 촬영했다는 이야기를 하자, 상사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그 후배가 일정에 욕심을 내어 내 출장까지 가려고 했지만 내가 가서 그 발표를 잘했다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말을 했다는 것입니다. 영어 실력이 유학파 본인보다 부족하다며 깎아내렸다고요.


그 순간 황당함과 분노가 밀려왔습니다. 예전 같으면, "네가 유학을 다녀왔다고 뭐가 그리 대단한데?"라며 따져물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때는 그저 얼굴이 약간 달아오르며 피식 웃고 넘길 수 있었습니다. 나 역시 과거에는 남을 이겨야겠다는 열망이 가득했지만, 이제는 그런 경쟁심 가득하고 오만한 마음이 얼마나 불쌍하게 느껴지는지 모릅니다. 남을 비판하는 데만 주로 몰두하는 사람들을 보면, 오히려 그 열정과 기운이 안쓰럽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효율적으로 영민하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남을 비판하는데, 애를 쓰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그들이 분출하는 감정에 무심코 휘둘리지 않으려 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에너지가 한정적이라 분노에 에너지를 쏟는 것이 생산적이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죠. 그렇지만 여전히 가끔씩 화가 치밀어 오를 때면, 내가 얼마나 갈 길이 먼지 실감합니다. 아니, 아예 다시 태어나야 하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나는 유독 그 사람이 힘들다>의 저자 심리학자 베르벨 바르데츠키는 말합니다. 건설적인 분노는 스스로를 통제하는 힘이 되고, 그 힘을 자신을 위해 사용할 수 있게 해준다고요. 즉, 쓸데없이 다른 사람에게 분노를 터뜨리기보다는, 그 에너지를 자신을 보호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벌컥 화가 치밀어 오를 때, 그 상황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것도 중요합니다. 짜증이나 분노가 몰려온다면, 그저 눈앞의 일에 집중하는 거죠. 업무든 집안일이든 뭐든, 무심히 열심히 하다 보면, 어느새 마음 속 분노는 가라앉고 평온해지기 마련입니다. 그러려면 일정 기간 연습이 필요합니다. 마음을 다스리고 정신을 가다듬는 건 결국 자기 자신의 몫이니까요.


누군가에게 "너가 감히 날 디스해?"라고 화를 내는 것은 당연할 수 있지만, 중요한 건 내가 그런 감정에 휘둘리게 되면, 그 사람의 말이나 행동이 내 마음속에 계속 박히고 자국이 남게 된다는 점입니다. 결국, 내가 그 사람 때문에 불편한 직장생활을 만들고, 내 스스로 손해를 보게 되는 거죠.


그렇기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마음으로 그 상대를 대하는 것이 더 나은 방법입니다.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거나 아부를 할 필요는 없지만, 가끔 여유를 가지고 작은 미소를 지으며 "오늘 퇴근 후 좋은 약속이라도 있나 봐요? 옷이 멋지네요."라는 가벼운 인사를 건넨다면, 오히려 상대는 당황할지도 모릅니다.


그 후배는 아마 지금까지도 알지 못할 것입니다. 그가 날 험담했다는 사실을 내가 알고 있다는 것을요. 칭찬까진 아니지만 매일 그를 옅은 미소로 대했으니까요. 때로는 이런 마음을 덤덤히 갖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내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찬찬히 고려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도 언젠가는 은퇴할 때가 올 테지만, 그때까지는 이런 작은 마음의 여유를 잃지 않으려 합니다.


요즘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안정됩니다. 텔레비전 속은 온통 남 탓, 네 탓, 너희탓만 하는 세상인데, 그 속에서 나만이라도 평온하고 차분한 마음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치밀어오는 분노를 고요히 견디고 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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