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평화와 자아 회복
공감은 우리 모두가 말할 수 있는 언어와 같지만 진정으로 이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 미상
예전 회사에서 한때 주기적으로 심리 상담을 받았던 경험이 있습니다. 한 동료가 SNS 등을 통해 주로 리더에 관한 이야기를 공공연히 퍼뜨렸고, 나를 포함해 리더와 함께 일하는 우리 조직에 있는 사람들 하나하나를 저격했습니다. 개개인의 업무에 자격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소문까지 돌았습니다. 그로 인해 정신적으로 많이 지쳤고, 마치 공개적으로 발가벗겨지고 처형당한 기분이었습니다. 나는 내 일을 성실히 하고 있었지만, 상황이 너무나 잔인하고 지옥 같다고 느껴졌습니다. 일상 생활조차 버거운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그때 나를 지탱해 준 것은 내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고 공감해 준 상담사였습니다. 덕분에 나는 많은 위로를 받았고, 울렁거리는 마음을 다잡으며 어둠의 긴 터널을 지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 상담사는 나에게 ‘공감할 만한 사람’이라고 느껴졌고,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나보다 나이 어린 그는 자신의 고민을 누구에게 말하며 위로받을까?
그는 내게 말했습니다. 자신도 번뇌가 있지만, 내담자와 이성적으로 대화하면서 마음의 안정을 얻는다고요. 그리고 자신의 역할은 내담자의 문제를 해결해주기보다는 함께 어려움을 나누는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이는 바로 ‘인지적 공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상대방의 감정을 무조건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이해하고 합리적으로 접근하는 것. 나에게는 그것이 매우 효과적이었습니다.
며칠 전, 한 교사가 휘두른 흉기에 초등학생이 사망하는 참사가 벌어졌습니다. 해당 학생이 한 가수의 열성 팬이었다고 부친이 밝히자, 일부 네티즌들은 그 가수의 소셜 미디어에 빈소에 가라는 댓글을 수없이 달았습니다. 또, 부친이 가수에게 장례식에 와 달라고 공개적으로 부탁한 것에 대해 동정과 조문 강요에 대한 논란도 일었습니다. 그때 눈에 띄었던 한 댓글이 있었습니다. “유가족의 아픔에 공감하면서도 가수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
우리는 대체로 어려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공감하고 연민을 느낍니다. 하지만 우리의 공감 능력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세상에 필요한 만큼의 공감을 다 주기에는, 우리에게 주어진 공감의 총량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직업적으로 공감을 요구하지 않는다면, 사실 우리는 서로 크게 공감하지 않고 살아가도 됩니다. 나의 공감이 상대방의 공감의 크기와 똑같아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도 괜찮습니다.
그래서 ‘인지적 공감’이 중요합니다. 이 공감의 시대에 오롯한 나로 살아가는 방법은, 나 자신을 지키면서 타인을 이해하는 균형을 찾는 것일 것입니다. 나가이 요스케의 『공감병』에서도 이야기하는 것처럼, "공감받지 않아도, 연결되지 않아도 나라는 존재는 훼손되지 않아야 한다"는 당위성이 그만큼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나에게도 생계가 있고, 가족이 있으며,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신경을 써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순한 동정과 연민을 넘어 다양한 공감 오지라퍼들이 공감 능력을 앞세워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는 사람들에게 공감을 강요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공감에 대해 올바르게 이해하지 않으면, 오히려 자신을 잃을 위험이 있다는 점을 기억했음 합니다. 부디 고인이 예쁜 별이 되어 좋은 곳으로 가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