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평화와 자아 회복 : 기대감
‘진심을 다합니다.’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어딘가 불편한 감정이 밀려옵니다. 어법이 잘못된 걸까, 아니면 내 마음이 뒤틀려서 그런 걸까 생각해 보았는데, 아마도 둘 다일 수 있겠다고 느꼈습니다.
먼저, 어법을 살펴보겠습니다. 강성곤의 <정확한 말, 세련된 말, 배려의 말>에서는 ‘진심을 다한다’는 표현이 정밀하지 않다고 언급합니다. 진심을 다하려면 ‘담는다’는 표현이 더 적합하고, ‘다하다’라는 말은 온 마음, 즉 ‘전심’을 써야 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진심이란 한 치의 거짓도 없는 깨끗한 마음이며, 이는 투명성에 기반해야 합니다. 물론 한 번이라도 거짓이 있어서는 안 되지만, 일관되게 티끌 하나 없이 거짓 없이 정직한 태도를 강요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요?
무엇이든 과하면 탈이 나기 마련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진심을 다하지 않으면 이상하다.’고 여기고 진심에 죽을 힘을 다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어쩐지 자신이 그렇게 했으니까, 남들도 비슷하게 할 거라 기대하게 되죠. 그러나 이런 예상이나 추측이 과도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기 쉽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기 때문에, 무엇이 적당한지 말하기가 어려운 문제인 것 같습니다. 결국, 철저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문제입니다.
내 경우 일의 특성상 외근이 많습니다. 급하게 미팅을 나가야 할 때, 후배들이 "진심을 다해 마무리 짓겠습니다. "라고 말하고 돌아오면, 적어도 그 정도는 처리했겠지 하고 기대하게 됩니다. 하지만 종종 그 예상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있죠. 가끔은 기대치를 낮추는 것보다 아예 포기하는 게 더 빠르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렇게 되면 같이 일하는 게 불편해지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주로 “어디까지, 얼마만큼 할 건지 정확하게 말해 달라.”고 요구합니다. 그리고 말한 만큼 하지 않았거나 여건이 되지 않았을 경우, 바로 진행상황을 알려달라고 합니다. 일을 질질 끌면서 나중에 이유를 대고 일을 전가하는 비겁함은 보길 원치 않으니까요. 만약 나의 기대와 예상이 반복적으로 빗나가면, 그 사람의 ‘진심’은 서서히 훼손되기 시작합니다. 그의 말이나 행동에도 진정성을 담보하기 어려워집니다.
‘진심을 다하면 하늘이 감복하고 결국 주위가 알아준다는’ 말도 믿지 않습니다. 진심을 다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알아주겠지.‘라는 희망을 품는 것, 그 자체가 불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누군가가 나의 진심을 알아주고, 나의 최선을 인정해 준다면, 그것은 적절한 시기에 운도 함께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차라리 그 진심이 얼마나 주관적이고 개인적인지 미리 자각하고, 그 일이 내 손을 떠났다면 더 이상 걱정하지 말고, 다른 데 집중하는 게 더 생산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이 모든 생각들이 개인적인 편견일 수 있지만, 아무튼 나는 진심에 과몰입하고 낙관하는 것을 반대합니다. 진심이라는 사실에 대하여 인정하는 긍정적인 태도는 취할 수 있지만, 마냥 핑크빛 관점과는 다른 문제입니다. 진심이 우릴 속이더라도, 그것에 지나치게 슬퍼하거나 괴로워하지 않았음 합니다. 우리의 진심이 낙관적이기보단 비교적 긍정적이기를 바라며 되는 대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주말을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