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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명랑한 어른으로

자기 확립과 독립심 키우기 : 명랑함

by 변한다

제가 생각하는 명랑함은 철없이 앉아서 하하 그러는 게 아니라 발견하는 기쁨이에요. 내가 힘들더라도 살아있다는 걸 기뻐하는 영성. 거기서 빚어지는 명랑함이라고 할까. 인생을 긍정하는 마음…- 이해인 수녀


고통, 절제, 참을성 등 ‘수녀’라는 단어에서 떠오르는 이미지를 확 바꾼 사람은 누굴까요? 아마도 이해인 수녀일 겁니다. 대장암 진단을 받고 투병했던 그녀는 그 후로 훨씬 더 명랑해졌고, 고통도 잘 이용하면 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며 "고통이 아니라 선물이었다"고 말하며 한없이 긍정적인 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60년 수도 생활을 되돌아보며 그녀가 깨달은 가장 중요한 가치는 밝은 표정으로 명랑하게 살아가는 것이었고, 즐겁게 사는 것이 삶에 행복과 위안을 준다고 강조하기도 했죠.


‘명랑한 어른’을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한 분이 생각납니다. 전 직장에서 처음 만난 후 지금까지도 연락을 이어가고 있는데, 특유의 구수한 사투리와 살짝 깨발랄한 매력 덕분에 언제나 미소가 지어집니다. 물론 함께 일할 때 중요한 포인트를 잘 짚어 주셨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가끔은 흥분하셔서 말이 많아 전화기를 대고 있는 귀가 불이 날 때도 있었지만, 대체로 연륜에 맞게 여유롭고 차분한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지치고 힘들 때면 그분과 전화로 마음을 나누며 큰 위로를 받곤 했습니다.


쇼펜하우어는 명랑한 성격이 행복에 차지하는 중요성에 대해, 내적인 보물 중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주며, 다른 어떤 재물 없이도 이것만 가지고 있다면 저절로 즐거워진다고 했습니다. 종종 시끄럽고 동적인 어른을 보고 '주책이다.'고 평가하는 이들도 있지만, '주책'은 타인의 시선에서 과하게 보이는 행동을 의미하고, '명랑함'은 주변에 밝은 에너지를 주는 긍정적인 성향을 뜻합니다. 아무렴 뭐 어떻습니까. 솔직히 우아하고 기품 있는 모습은 언감생심 바라지도 않고 주책과 명랑함의 묘한 줄타기를 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유쾌하고 웃음 넘치는 어른으로 내려오고 싶습니다. (사실 그렇게 높게 올라간 적은 없지만)


요즘 TV에서 태연하고 뻔뻔하게 거짓말하는, 잘못하지 않았다고 빡빡 우기며 인상쓰는 볼썽사나운 어른들을 자주 접하게 됩니다. 안 본 눈을 정말 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으며 '좋은 어른'으로 남는 것이 이토록 어려운 일인지 새삼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 ‘방법’을 찾고 있는 나의 미련을 어떻게 내려놓아야 할지 고민 중입니다.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우리의 잘못과는 무관하게 여러 가지 사정으로 ‘명예퇴직’이나 ‘희망퇴직’ 등을 맞이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나도 맡은 그룹이 갑자기 없어지거나,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별안간 발령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 후 준비를 해놓는 것에 대해 더욱 맹렬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요즘 사서 자격증 과목을 수강하면서 박차를 가하고 있는데요. ENTJ 성격이라 철저히 계획해 놓아야만 두 다리 뻗고 잠을 잘 수 있으니까요. 내가 벌써 은퇴를 생각할 만한 나이라니, 세월이 정말 순식간입니다.


내 나름대로 단단한 준비를 한다셈치더라도 살짝 긴장되고, 허투루 지나간 세월을 아쉬워하며 다소 우울해지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나태주 시인의 시 '숨 쉬게 하는 힘'에서 마음이 엉켜 풀리지 않을 때, 일단 명랑해보며 좋은 척을 해보면 조금씩 나아진다고 합니다. 모쪼록 방송인 최화정의 어머니가 해준 말을 우리도 실천해봅시다. 허리를 펴고 입꼬리를 쫙, 그럼 세상에 못 할 일은 없을 테니까요. 아무튼 ‘입꼬리 쫙’의 마법을 믿어보기로 해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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