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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심에 물을 주지 마라

마음의 얽힘을 풀다 : 허영심

by 변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손상 받기 쉬운 반면, 정복되기 어려운 것은 인간의 허영심이다. - 니체


최근, 아는 분의 소개로 만난 30대 구직자는 몇 년간 국회의원실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지만, 여전히 진로를 선택하지 못하고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정치에 관심이 있다고 말했지만, 정치활동을 통해 어떤 가치를 실현할 수 있을지, 본인의 역량이 무엇인지 묻자 대답은 모호했습니다. "정치를 왜 하고 싶냐?"고 물었을 때도 역시 구체적인 답변을 내놓지 못했습니다. 그의 말에서 느껴진 것은 너무 추상적인 생각들이었습니다. 사실, "당신이 보고 있는 세상에서 부족한 점을 가릴 수 있는 눈이 있긴 있냐?"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습니다.


모든 일에는 분명한 명분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정치라면 세상을 바꾸고, 자기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싶은 순수한 마음에서 시작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치에서 중요한 것은 권력입니다. 정치인은 권력을 추구하는 것이 정치의 원동력이고, 그 권력이 제대로 쓰이려면 정치인은 그에 맞는 역량을 갖춰야 합니다. 문제는 권력에 도취되며 그 권력을 과시하려는 욕망에서 발생합니다. 후광효과를 노리는 주변 사람들도 한몫하죠. 정치인으로서 허영심에 빠지게 되면, 스스로를 구렁텅이에 몰아넣고, 주변 사람들까지 그 구렁텅이에 끌고 갈 수 있습니다.


그에게도 정치의 낭만을 쫓지 말고 현실을 직시하라고 조언했습니다. 자신만의 무기를 찾아 그것을 날카롭게 다듬는 데 집중하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취업을 위해 기본적인 영어 점수나 자격증 하나 없이 있었습니다. 유학을 다녀왔기에 그것이 불필요하다고 여긴 것 같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가 해야 할 준비조차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정치보다 취업이 시시하다고 여긴 그의 오만한 태도가 눈에 띄었습니다.


자신이 아직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는 점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허영심에 휘둘리게 된다면,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결국 그 사람의 미래는 불투명할 수밖에 없습니다. 니체의 말처럼, '내가 아닌 것'으로 얻는 인정은 허영심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적당한 자부심과 실행하려는 의지는 필요하지만, 지나친 허영심은 오히려 문제를 복잡하게 만듭니다. 허영심은 주로 교활함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감추고 싶은 면을 숨기고, 타인을 속이려는 마음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무엇을 두려워하고 싫어하는지, 무엇을 숨기고 무엇을 드러내고 싶은지 잘 구별해야 합니다. 그게 바로 '안목'입니다.


얼마 전, 지인의 자녀가 40대인데도 취업 준비에만 집중한다는 이유로 아르바이트를 전혀 하지 않고, 엄마 카드에 의존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는 눈이 높아서 아무 곳이나 들어갈 수 없다고 주장하며 많은 기회를 놓치고 있다고 했습니다. 과연 그가 어디에 가든지 간에 적응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를 직접 심어보지 않으면 그 효용을 알 수 없습니다. 꽃밭을 구경만 하고 열매를 따먹으려 한다면, 그 사람은 실질적인 어떤 일도 할 수 없고, 운 좋게 기회가 온다고 해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것은 자명한 사실이니까 말이죠.


우리가 사는 세상은 꽃밭이 아니며, 우리가 오로지 쓸 수 있는 운동장은 그리 넓지 않습니다.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허위의식과 나르시시즘에 빠진 사람들은 결국 눈앞의 기회를 놓치고, 그들의 미래는 늘 안개 속에 가려져 있을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서 그런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되지 않습니까? 그들을 반면교사 삼아, 현재의 나를 들여다봅시다. 정복되기 어려운 건 허영심이라는데, 우리는 이런 말을 할 자격이 과연 있는지. 우리의 허영심은 우리의 힘으로 잘 참아내고 있는지, 허영심이라면 지적 허영심 정도면 충분합니다. 부디 매사에 겸허히, 절제와 소박함을 잊지 않도록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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