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평화와 자아 회복 : 침묵
가장 깊은 감정은 항상 침묵 속에 있다. -토머스 무어
예전 직장에서 알게 된 모 기자, 그와 나이와 성향도 비슷해서 가끔 차도 마시고 사는 이야기도 하곤 했습니다. 우리가 언제부터 친해졌는지 곰곰이 생각해봤더니 웃음부터 나더군요. 한 번은 1시간 만남에서 55분은 상사가 본인 이야기를 쏟아내는 바람에, 여러 번 하품을 하고 시선을 외면하기도 했습니다. 그 후, 둘이서 눈이 진하게 마주친 순간부터였습니다. 수년이 흐른 후, 어느 날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내 상사가 그렇게 별로였던가요?" 돌아온 대답은 이랬습니다. "본인 말씀은 흘러 넘쳐 주체할 수 없어 보이니까 참 만만해 보였죠.“
그 말을 들으며 내 상사가 줄줄 이야기하는 것에 동조하는 척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던 당시를 떠올려 보았습니다. 침묵 속에서 이제 그만해도 된다고 여러 차례 신호를 보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죠. 우리는 말을 통해 감정을 표현하려고 하지만, 그러나 때로는 말보다 더 많은 것을 전하는 것이 바로 침묵이고, 침묵 속에서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진짜 감정을 드러냅니다. 어떤 말도, 어떤 행동도 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더 많은 것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만 그는 그걸 전혀 이용하지 못했던 거죠.
그러다 며칠 전, 예능인 이경규가 유튜브 채널에서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만만해 보이지 않으려면 말수를 줄여라.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하면 만만해 보인다”는 말이었죠. 그는 골프 공을 예로 들며, "가만히 있으면 긴장되는 것처럼, 말을 아끼면 상대방이 속을 몰라 더 신경을 쓴다"며 중요한 순간일수록 필요한 말만 골라서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게 어디 쉽나요? 특히 선민의식이 있거나, 아는 것을 자꾸 말로 짚어주고 싶을 때, 우리는 말이 많아지기 마련입니다. 내 상사도 그랬고요. 물론 의도는 좋았겠죠. 자신이 아는 것을 공유하고 싶은 순수한 목적이나, 누군가에게 가르쳐주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청자의 반응을 살펴보는 것보다는 자기 목적에 집중하며 말을 계속하게 됩니다. 마치 숙제를 하듯 말이 흘러넘치고, 자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결과, 중요한 말을 끝낸 후에는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조차 모를 때가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입으로 배설한 느낌이랄까요? 안타깝게도 나이가 들수록 이런 상황은 자주 직면하게 됩니다.
슬쩍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본인이 말할 때, 청자의 반응을 살피지 못하는 것은 무능인가, 아니면 공감하고 싶지 않은 본인의 의지인가, 침묵의 틈을 견디지 못하는 조급한 사람인가. 사람들은 말없이 함께 있는 순간, 살짝 불편하긴 하지만, 그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서로의 마음을 읽게 되는데요. 그만큼 침묵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그릇입니다. 때로는 깊은 이해와 수용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만큼 말로 설명하려 해도 다 표현할 수 없는 감정들이 있습니다. 이런 감정들은 말보다 오히려 더 깊은 곳에서 출발하며, 그 깊고 넓음을 이해하려면 말이 아닌 침묵 속에서 그 의미를 찾아야 합니다. 그 속에 숨겨진 감정들은 우리에게 진정한 자신을 알게 해주는 열쇠가 될 수 있습니다.
사실 이런 게 진짜 어려운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그 기자가 나이도 훨씬 많은 나의 상사를 같은 맥락으로 보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침묵을 잘 지키고 보존할 수만 있다면야 어느 정도 품격을 갖춘 어른이라고 생각해도 될 만큼 그만큼 점점 말이 없어지는 나에게도 침묵은 여전히 커다란 숙제이긴 합니다. 여러분도 부디 자신의 격이 침묵을 지키지 않아서 산산조각 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져보며 말씀이 참 많아 늘 나에게 현기증을 선사했던 그 상사는 요즘 어디에서 이야기 보따리를 풀고 있는지 문득 궁금한 일요일 느긋한 오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