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평화와 자아 회복 : 관계
진정한 자유는 감정을 다스릴 수 있는 능력에서 온다. – 넬슨 만델라
가끔 내 안에 내가 두 명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한 명은 모든 것을 제어하려는 의지를 지닌 나이고, 또 다른 한 명은 그 통제를 벗어나 감정에 휘둘리는 나입니다. 때로는 이 두 존재가 충돌하며 나를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이러한 감정의 롤러코스터는 때 이른 갱년기 때문일 수도 있고, 아니면 다른 어떤 이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끔 '경계성 성격장애'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럴드 J. 크리스먼의 『감정의 피부가 약한 사람들을 위한 책』을 읽고 나서, 조금 안심할 수 있었습니다. 저자는 경계성 성격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겪는 감정들이 사실 우리 모두가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는 문제라고 합니다. 거절당하는 두려움, 정체성에 대한 혼란, 그리고 공허함과 무료함—이것들은 누구나 한 번쯤 느껴봤을 겁니다. 다만, 성격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이러한 감정들이 그들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리게 만든다고 합니다. 반면, 우리는 그 감정들을 어느 정도 다루며 살아간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특히 내게는 특히 공허함과 무료함을 단 한순간도 견디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몰두할 무언가가 없으면, 내 마음은 금세 변덕을 부리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채 배회하기 시작합니다. 그 이랬다 저랬다 하는 나를 보고 싶지 않기에, 그 순간을 넘기고 싶은 마음에 무언가를 시작합니다. 그래서 나는 늘 바쁘게 살아갑니다. 손에 잡히는 일을 하나씩 해나가며 시간을 보내고, 그로 인해 진짜 무엇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며 살아왔습니다.
문제는, 이런 생활이 진정한 '쉼'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입니다. 정말 '휴식'이라는 것이 내 삶 속에 있었나 싶은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이승원의 『우리는 왜 쉬지 못하는가』를 보면, 일이 행복을 추구하는 수단이어야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일을 목적으로 착각하거나, 일을 자아실현과 동일시한다고 말합니다. 이런 현상을 '착각 노동 판타지'라고 정의하기도 했죠. 나는 그저 바쁘게 살아가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진정한 쉼은 결코 이런 방식에서는 찾아지지 않았습니다.
내면의 공허함과 무료함을 견디지 못하고 계속해서 무언가를 찾아 나서는 나는, 사실 내면의 평화를 찾는 방법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요즘 유독 듭니다. 이렇게 사는 것도 꽤나 지쳤나 봐요. 얼마 전 아버지 팔순을 기념하여 점심을 함께 했는데, ‘아버지 나이까지 이대로 쭉 이렇게 사는 게 과연 내게 좋은 것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하기도 했습니다. 불현듯, 죽음에 이르렀을 때에 진정한 평안이 그때 찾아오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감정은 관계라고 합니다. 그래서 아직은 내 널뛰는 감정과의 관계가 썩 좋지 않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아마도 감정의 흐름을 제대로 다루고, 감정과 건강하게 관계를 맺는 게 내겐 진정한 쉼의 첫걸음이 아닐까 합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나는,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마지막 회에서 박동훈(이선균)이 이지안(이지은)에게 묻는 질문을 떠올립니다. “지안, 편안함에 이르렀는가?” 그 질문처럼, 내 감정을 충분히 관찰하고, 그 감정들이 무엇인지, 어떤 맥락에서 나온 것인지 명확히 파악하고 분별하며 이해하게 되면, 그 감정을 더 잘 다루고, 말과 행동을 조절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물고 빨고 하다가 갑자기 화가 치밀어 아이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일도 점차 사라지겠죠.
감정과의 관계에 있어서 쉴 수 있는 움막을 짓고, 그곳에서 감정을 제대로 다루어 오르락 내리락 하지 않고, 평평한 평지에서 균형을 잡은 감정을 가지고 평탄히 살아가고 싶습니다. 부디 나도 여러분도 그렇게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