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얽힘을 풀다 : 번뇌
삶은 고통이며 생존은 고통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
남들의 삶은 대체로 순탄하고 무난해 보이는데, 왜 나만 이렇게 유난히 괴로워하는 걸까? 사실 이 생각은 21년째 변함이 없습니다.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다고 해도 할 말은 없지만, 그래서 작년에는 한방 정신과도 다녀왔습니다. 약도 지어 먹고,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호흡을 병행한 명상도 했죠. 그 즈음, 관련된 책들을 마구 읽게 되었는데요.
이선이의 『나를 들여다보는 마음수업』을 읽고 나니, 내 몸부림이 다소 민망하게 느껴졌습니다. 저자는 내원하는 ‘어른 아이들’에게 꼭 이런 질문을 던진다고 해요.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독립하고 경제적인 책임을 지는 것이 어른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저자는 ‘인생이 고(苦)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말하더군요. 그래서 아직 나는 어른 아이인가 봅니다.
그래요, 인생이 항상 기쁨만 가득하다면 그게 뭘까요? 우리는 인생의 한계를 받아들이고, 고통과 고난을 마주해야 하며, 이른바 ‘비터스위트’(bittersweet)… 행복과 불행은 항상 공존하고, 행복은 목표가 아니며 불행은 적이 아닙니다. 사이토 시게타의 『안아주는 말들』에서도 괴로움은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절망의 끝에서 필사적으로 살아온 사람은 그 고유의 빛을 발하며, 괴로울 때야말로 내가 진정으로 소중히 여기고 원하는 것이 보인다고 합니다. 즉, 괴로움을 이해하는 것이 실천적 행동이라는 것이죠. 그런데 번뇌를 안다고 해도, 일상에서 불쑥 터져 나오는 상실감은 도저히 막을 도리가 없습니다.
그때마다 필요한 것은 메타인지입니다. 어떤 이는 끓어오르는 감정을 누르고 10초를 세고, 나를 바라보자고 합니다. 하지만, 1초도 힘든데 10초라니요. 물론, 참으로 어렵고 힘든 일이지만, 해야 하지 않겠어요? 어려운 일일수록, 더 무지막지한 일일수록, 진심으로 내 마음을 따박따박 들여다보고 알아가는 일이 중요합니다.
이른바 자기 자비란, 힘겨운 투쟁을 벌이는 스스로를 친절하게 돌보며 격려하는 것입니다. 일상의 삶이란 고통의 연속이니까요. 마치 어려움에 빠진 친구를 도울 때처럼, 나를 달래며 잘 이끌어 가야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은 친구에게 하는 만큼 자기 자신에게 친절하지 않고 차갑습니다. 나처럼 스스로를 구석으로 몰아붙이고, 때로는 냉정하게 대하기도 하죠.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과반수 이상이 자기 자신보다 다른 사람에게 더 관대하다고 합니다.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에게 내가 따뜻하게 대하지 않으면 누가 할까요? 이제는 안 좋은 일에 연루되었을 때, 내가 불행하다고 느낄 때마다 이렇게 생각하려고 합니다. ‘신께서 도대체 나에게 어떤 깨달음을 주시려나? 뭔가 이유가 있을 거야. 그냥 그런 게 아닐 거야.’ 무신론자인 나도 이렇게 마음을 고쳐먹으면, 얄궂게도 다음이 정말 기대되곤 합니다. 자기 응시, 그리고 자기 암시. 이것이 일상의 고통 속에서 숨 쉴 수 있게 해주는 방법이 아닐까요? 좋은 밤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