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 않았고, 미치지 않았다면 지나고 나면 결국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없다.”
예전 직장에서 함께 일했던 거래처 사장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요즘 왜 SNS를 안 하느냐고 묻는다.
잠은 다 잤다.
북토크를 하러 곧 버스를 타야 한다.
카페라테 한 잔으로 졸음을 쫓으며 이렇게 글을 쓴다.
이직한 지 딱 한 달.
얼마 전에 첫 월급도 받았다.
정신없이 바쁘고,
눈에 열이 날 만큼 고되지만
조금만 더 익숙해지면
연말쯤엔 책 한권은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짧은 단상들이 자꾸만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동안 밀린 유튜브를 보다 보니
화두는 또 ‘갑질’이었다.
인기 개그우먼이
매니저에게 허드렛 일을 시키고,
술 심부름을 요구했다는 이야기였다.
일의 경계와 역할을 넘어선 요구들이
하나둘 수면 위로 올라왔다.
대중의 사랑을 받는 직업일수록
주변 사람들의 헌신은
당연한 것으로 오해되기 쉽다.
웃음을 파는 자리 뒤에서
누군가는 침묵으로 버티고 있었다는 사실이
더 씁쓸하게 다가왔다.
‘쓰레기 분리수거’라는 말에
또 다른 얼굴이 떠오른다.
예전에 모셨던 분이다.
아침 일정 때문에 몇 번
그분 댁 근처로 간 적이 있는데
그때마다 그분은 직접 쓰레기 봉투를 한가득 들고 나와
묵묵히 분리수거를 하고 계셨다.
“도와드릴까요?”라고 물으면
“아이고, 뭘 이런 걸 도와줘” 하며
손사래를 치던 분.
심성이 고왔던 사람이었다.
‘갑질’이라는 단어에는
내게도 지워지지 않는 기억 하나가 있다.
공직 시절,
한 과장에게 언성을 높였던 일이다.
그 일은 제보로 지역 언론 기사까지 났다.
억울했든 아니든 이유와 상관없이
나는 사과했고,
퇴직할 때까지 연락을 주고받으며
관계를 회복했다.
하지만 그때의 아찔함은
아직도 또렷하다.
품의 올린 계약서 결재가 나
등기를 보내러 우체국에 다녀왔다.
왕복 30분 남짓이었지만
살짝 어지러웠다.
거의 반쯤 실신한 채 사무실에 들어오니
동료가 말한다.
“그런 건 제가 가면 되지,
왜 이 뙤약볕에 다녀오셨어요?”
웃음이 나왔다.
“너한텐 이게 뙤약볕이 아니라
볕 좋은 가을이냐?”
그리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길에서 무슨 일이 생겨도,
이런 일은 앞으로도 내가 하겠다고.
그런 기사와
부끄러운 기억들을 안고서도
나는 오랫동안
스스로를 꽤 겸손한 사람이라고 믿어왔다.
특히 후배들 앞에서는
신입·대리 시절
내가 했던 자잘한 실무들을
의도적으로 미루지 않으려
늘 스스로를 경계해왔다.
때로는 그게 병적으로 보일 만큼.
그러다 문득 멈춰 서서 생각한다.
이건 정말 나만의 기준일까.
어쩌면 그때의 기사가
나에게는 하나의 검열이자
성찰의 시간이었듯,
지금의 논란 역시
누군가에게는
같은 시간이 될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늘 하시던 말이 있다.
“모든 일에는 양면성이 있다.”
죽을 만큼 힘들었고,
미치도록 분통이 터졌지만
죽지 않았고, 미치지 않았다면
지나고 나면 결국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선명하게 남지 않는다.
그래서 세상은 무채색이고,
우리는 늘
개와 늑대의 시간 어딘가에
서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