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가볍게 대하지 않기 위해

by 변한다

“소통은 말의 문제가 아니라, 기다림의 문제다.”


경상도 남쪽 도시의 어느 작은 도서관에서

라면 냄새와 책 이야기가 함께 어우러진

북토크 시간을 가졌다.


자기 마음은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은 채

남을 쉽게 판단하고 재단하다가

얼마나 자주 상처받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결국 중요한 건 타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훈련시키고 성장시키는 일이라는 이야기였다.


한 분이 조심스럽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솔직하게 다 얘기하면,

저랑 같이 일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질 겁니다.”

관리자로서의 고충이었다.


나는 그분께 말했다.

내 페이스가 아니라,

상대의 페이스에 맞춰 긴 호흡으로 가셔야 한다고.

정도만 이야기하고,

상대가 올라오면 그때 나머지를 전해도 늦지 않다고.


소통은 나의 방식이 아니라

상대의 눈높이에 맞추는 일이다.

상황과 수준에 따라 조율하며 기다리는 것,

그것이 진짜 소통이다.

그리고 이 역시 단번에 되지는 않는다.

반복적인 훈련이 필요하다.


요즘은 임원이나 관리자가 되기보다는

실무형 부장으로 남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

관리자라는 자리가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일은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고,

그 ‘사람’과의 일에는

늘 감정 노동과 복잡한 조율이 따른다.


사실, 나 역시 그렇다.

나는 실무에 집중하고 싶지,

사람을 거느리는 역할에만 머물고 싶은 사람은 아니다.

그건 책임을 피해서도,

욕심이 없어서도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나에게 사람을 다루는 일은 쉽지 않다.

사람의 마음을 살피고,

속도를 맞추고,

말하지 않은 감정을 헤아리는 일은

어떤 실무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요구한다.


그래서 안다.

관리자가 되기를 망설이는 마음이

결코 나약해서가 아니라는 것을.

그건 오히려,

사람을 가볍게 대하고 싶지 않다는

하나의 증거일지도 모른다.


이건 비단 직장 이야기만은 아니다.

가족을 대할 때도,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때로는 타인에 대해

‘단념’이나 ‘수용’이라는

마음의 매듭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자신의 기대를 쉽게 접지 못하는 분,

과거의 상처 때문에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지만 그게 어려운 분께는

이렇게 말씀드렸다.

그 역시 자신의 숙제이니,

기분 좋고 유쾌하게 풀어가 보시라고.


20대 분들도 함께해 주셔서 고마웠다.

그들을 보니 내가 책을 읽으며

비로소 마음을 들여다보기 시작한 시점이

그들보다 훨씬 늦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이 때부터 마음공부를 시작했더라면

어땠을까, 잠시 그런 마음이 스쳤다.

나는 늘 마음속에

돌덩이 하나쯤 안고 살아왔으니까.

내 마음 하나 들여다보기도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늘 빠듯하다.

부디 귀하게 나눈 이야기들이 헛되지 않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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