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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한다 May 18. 2022

함부로 마세요

독서사색

자기애성 성격장애를 아는가? 주로 자기애성 성격장애를 가진 남성 중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많다는데 사실 성별의 구분은 크게 유의미하다고 보지 않는다. 2005년부터 모 기업에 입사해 지금까지 겪어온 수많은 보스들 중 이 성격을 가지지 않은 사람은 단언컨대 거의 없었다. 어쩌면 성공의 조건에 필수요건은 아닐까 하는 옅은 의심이 들 정도였으니까. 나이들면서 쉽게 피로감을 느끼는 요즘 그 에너지, 그 체력 하나는 훔치고 싶을 정도로 대단하다 생각했다.


참으로 불가사의했다. 묻지도 않고 궁금하지 않은 자기 이야기를 하고, 왜 모든 상황을 본인은 화자가 되고 다른 이들은 청중으로 만드는지 도대체 왜 저럴까 무엇이 저 상황의 동인일까? 아마도 첫 번째는 내면의 권태와 공허함을 말로 손쉽게 풀려고 하는 의지의 반로일 것이고 또 다른 이유는 만족할 만한 대화의 경험치 부족이나 시도조차 하기 어려운 일말의 두려움 때문이 아닐까 하는 추측도 잠시 해봤다.


무엇보다 간절함의 부재, 알고 보면 대화를 가장한 일방적 강연을 스스로 용인할 정도로 실은 타인과 말을 하고 싶지 않았거나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 아닐까. 진실로 상대방과의 공감을 원한다면, 남의 귀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빼앗지 않는 강도짓은 차마 양심상 시도할 엄두조차 내지 않았을텐데 말이다. 상대 입장으로 더 안타까운 건 적절한 타이밍에 박차고 나가는 호기로움과 티내지 않게 조는 속임수, 묵묵히 듣고야 마는 인내 말고는 달리 방도가 없단 거다.  


자기애성 성격장애자가 하는 말에는 끝과 한계가 없다. 그에게는 주위의 청중들의 썩은 표정조차 가늠하기 쉽지 않다.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사고로 인해 상대를 이해하는 능력 또한 부재하여 다른 사람의 요구나 감정을 인지하기는 커녕 받아들일 수도 없다. 설상가상의 가장 큰 비극은 본인에게 이러한 공감 능력이 없다는 걸 꿈에도 생각하지 않다는 것이다.


작년 말 첫 출판을 할 때 관계자로부터 들었던 주된 이야기는 독자를 두고 하는 글인지 본인 소장용 일기인지 잘 판단하라는 거였다. 그때부터였다. 나의 쓰기는 독자의 감정과 의견에는 크게 관심이 없고, 내 책에 대해 내가 가진 예상이나 기대에 적절히 부응하기만을 바라는 수준이지는 않은지, 또한 나의 읽기는 책을 쓰느라 온 정신과 온 에너지를 쏟아 넣은 저자보다는 독자인 내 감정과 의견이 우선인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특히 제대로 쓰고 읽지 않는다는 건, 결국 다른 사람의 의견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는 증거이며, 어쩌면 자기애성 성격장애의 발현이기도 하지 않을까 의심을 하게 된다. 김진영의 <희망은 과거에서 온다.>에서 독서란 쓰여지지 않은 걸 읽어내는 것이라는 벤야민의 말을 빌렸는데, 나는 좀더 덧붙이고 싶다. 쓰여지지 않은 걸 잘 살펴야지 읽어낼 수 있고, 잘 살피고 읽어야지 잘 쓸 수 있다고


모름지기 좋은 쓰기와 읽기란 독자와 저자의 생각의 방향을 묻는 간절한 질문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렇다면 내 읽기와 쓰기는 어디쯤 와있나. 아직도 잘 살피고 가늠하지 않고 나르시시즘에 빠져 허부적거리고 있는 건 아닌지, 창피하게도. 늘 돌아보고 반성하며 다짐해야 한다. 하나의 낭비 없이 하나의 허투루 없이. 적어도 내 글을 읽는 독자가 끝내 덮고 줄행랑을 치지 않았음 하는 바람을 가져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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