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사색
2년만에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고 사내 모임이 다시 활성화되면서 어떤 이들은 퇴사까지 고려할 정도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참 웃프다. 남쪽 나라 근무 시절 거의 매일 상사가 주는 술을 끝내 거절 못하고 족족 받아먹고 토하고 개워냈던 그 한심하고 미련했던 나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그래 모든 인간관계는 어쩌면 노동이고 에너지 소모니까 그래라 그래, 그렇고 말고 충분히 이해하고 말고
근데 어떻게 만족되기만 할까. 최인철의 <프레임>에서 만족과 흡족의 차이를 풀어냈는데 놀라웠다. 만족에는 어느 정도의 체념도 포함되고 흡족은 자기만의 기준에서 충분히 조금의 모자람 없이 넉넉하다는 뜻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타인들과 섞여 사는 게 당연한 것인데, 그때마다 불편한 구석도 생기고, 때론 만족으로 적당하게 타협해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이런 조율 속에서 점점 지쳐갈 때 차라리 쓸쓸함과 공허함을 처절히 느끼는 혼자가 낫겠다 그 생각도 자유고, 헨리 소로나 ‘나는 자유인이다’ 프로그램 주인공처럼의 실행도 역시 자유다. 모 드라마에서 ‘행복하지 않겠다. 불행한 척 하지 않겠다. 정직하게 해보겠다’ 라고 3가지 수칙을 이야기했더니만, 연기 아닌 인생이 도대체 어딨냐는 자조적인 대답을 하더라. 그렇지 않은 척을 하든 진짜 그러려고 하든 모든 게 자유고 선택이다.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는다 하지 않나. 내 경우 40대 중반에 급사하긴 싫어 그간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적정 시간동안 쿵짝을 맞춰준 후, 그 무리를 빠져나올 적절한 타이밍을 기어이 찾아내곤 한다. 빠져나올 때면 누가 급하게 불러도 가급적 뒤도 돌아보지 않는다. 그리고 무작정 걷는다. 머플러가 없다면 외투에 깃 바짝 세우고 주머니에 손 찔러놓고는 모양빠지는 총총 걸음이라도 좋다. 제법 걸음이 빨라진다. 오직 나만의 고요한 시간을 위해 집으로 향한다.
침묵 속에서 자그마한 평안과 지혜를 얻기엔 독서만한 게 없다. 독서와 고독은 필수불가결이다. 타인과의 관계를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되는 그 적정한 온도의 마음으로 약간의 거리를 두는 것, 30cm, 흔히들 말하는 독서할 때 책과 눈의 거리라고 하는데, 잠깐 멈춰 책 속의 저자의 의견과 생각에 무게를 실어주자. 오직 독서로 바쁜 일상 속에서 펄떡거리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진정시키며 달랠 수 있다.
TV뉴스 속 주로 등장하는 인사들은 남의 허물 탓만 하고 돌림노래처럼 공정, 정의를 외치는 건 그 두꺼운 장막을 거두어내면 나를 봐줘, 인정심리만 똘똘 뭉쳐져 있는 건 아닌지. 그 헛헛한 마음에 내뿜는 포효고 소음은 아닐지 그럴 때일수록 우린 침묵 속 30cm의 거리에 주목해야 한다. 오늘은 아들 수학학원 다녀와 고꾸라져 잠들 때까지 눈 부릅뜨고 절대고독의 시간을 기다려보자. 무슨 책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