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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한다 May 20. 2022

기억과 망각의 균형점 찾기

독서사색

“그 많은 책이 기억나긴 해요?”


종종 SNS 친구들이 묻곤 한다. 독서하고 나서 습관처럼 간단히 쓰는 내 포스팅을 보고. 나는야 극한의 실용주의자. 자주 깜빡 하는 금붕어라는 핸디캡을 갖곤 있지만, 독서의 상수는 아웃풋이라는 생각엔 변함없다. 실사구시의 정신으로 시원스레 밑줄을 긋는다. 인상적인 페이지를 사진으로 찍은 후 사진 파일에 밑줄 쫙, SNS에 간단한 소감과 함께 적어둔다. 물론 리뷰를 더 잘 써야 한다는 부담감도 적지 않지만, 가급적 거르지 않고 한 줄이라도 남기려고 한다.


요즘 유행인 ‘필사 시도해봤다. 필사는 단순히  내용을 베껴쓰는 글씨를 연습하는  아니라 정성을 들여  문장  문장을 써내려가다 보면  안에 담긴 작가의 혼을 느낄  있다 하여 권하는 이들이 많았다. 허나  경우 예쁘게 필기한 기억만 있지 내용은  생각이 나지 않더라. 대신 어떤 책은 종이책    장을 넘겨가며 사각대는 소리로 인해 선명하게 기억  켠에 자리잡고, 기대감과 두근거림으로 봤던  순간들이 모여  여운을 주기도 한다.


인생은 끝없는 모호함 속에 강렬한 한 조각으로 대번 결정되는 것처럼 독서도 마찬가지. 다 잊어버려고 다 지워지더라도 작지만 유의미한 내용의 단편들이 모여 내 허무와 고단함을 이겨내는 기폭제로 작용하더라. 즉 망각은 어쩌면 이 복잡한 세상을 견디어 끝내 살게 해주는 꽤나 든든한 힘이었다. 스콧 A. 스몰의 <우리는 왜 잊어야 할까>에서 내린 재정의를 보고 마음을 굳혔다. ‘망각은 본연의 진정한 인지능력이며 기억과 균형을 이룬 망각은 꼭 필요하다.’


그렇다. 우리는 예전부터 망각을 극복하려 부단히 애써왔고 자주 잊어버리면 마치 뇌의 작동 오류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흔했다. 언제나 더 나은 기억력은 고귀한 목표인 반면 망각은 방지하고 전력을 다해 싸워야 하는 대상이었지만 사실 나아가기 위해서 꼭 필요했다. 잊음으로 인해 새로운 걸 받아들일 수 있는 틈이 생기고 본인에게 중요한 것은 다시금 상기하면서 그럼으로서 앞으로 한발짝 나아갈 수 있기 때문에


무엇보다 중요한 건 수많은 것들이 잊히더라도 그것은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을 기억하기 위한 과정이다라는 점이다. 그러기 위해선 슈테파니 슈탈의 <거리를 두는 중입니다>에서 나온 메타 태도에 주목해야 한다. 즉 지혜롭고 현명하게 기억과 망각의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으며 나의 기억, 느낌, 지각하는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주체적인 태도를 가지는 것. 더불어 불확실한 삶 속에서 터질 것 같은 꽉찬 머리 속에 잠시 쉼을 내어주는 것.


읽고 단면만 기억하면 뭐 어떠하랴. 잊어버려도 좋다. 지워버려도 좋다. 망각을 통해 읽는 내용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멀어지고, 놓을 수 있는 이 또한 읽는 자의 특권임을... 사는 내내 내 기억 속엔 어떤 책들이 결국 남을까. 자뭇 궁금해지는 금요일 오후가 별안간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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