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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한다 May 22. 2022

언젠가는 온전히 '겸양지덕'의 독서

독서사색

선거철이다. 예전엔 관심조차 없었던 공보물이 이상하게 눈에 들어오더라. 너나 할것없이 일꾼이라 하지만, 내 동네에 뭐가 필요한지 알지도 못하고 개나 소나 지껄이는 천편일률적인 정책들. 참 황당한 것은 행정이 해야 할 일을 어떻게 국회의원이 주도적으로 하겠다는 건지, 시장이 나서서 할 수 없는 법제정을 왜 제1공약으로 내세웠는지 기본적인 것조차도 구분이 되지 않는 이런 류의 것들도 요즘 핫한 ‘반지성주의’처럼 유행인지 무척 궁금했다.


27세에 회사에 들어가 배운 건 세상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드넓고 할 일은 무지하게 많다는 것. 꼭 공부가 아니더라도 기술 하나만 있으면 남부러울 것 없이 사는 것을 내 눈으로 목격했는데, 2005년 남쪽 나라에 위치한 회사에 들어가 겪게 된 첫 충격이었다. 그 전까지는 열심을 다한 공부가 아니면 인생이 폭망인 줄만 알았거든. 어쨌거나 입사하고 바로 사보를 만드는 걸 거들었는데, 난생 처음 용접하는 아저씨, 도장하는 아주머니 동료들을 어떻게 인터뷰했을까.


지금 와 생각해보면 이른바 ‘공부왕 찐천재’ 홍진경 방법을 구사했었다. 일차방정식과 일차함수를 배우는 과정에서 모르는 건 정말 모르겠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그 리얼함과 비스무리하게 일찌감치 ‘조린이’라는 걸 즉 ‘조선업은 아무 것도 몰라요.’ 무장해제한 백치미를 무차별적으로 내뿜었다. 그러니 나 스스로 스스럼없이 다가가기 쉬웠고 덜 떨어지고 모자란 내 모습에 몇몇은 빼꼼 마음의 문을 열었는지도 모른다.  


책읽기도 그렇다. ‘그래, 나보다   아니까 이렇게 번듯하게 출판도 하는 거지모르면  까놓고 모른다고 인정하며 마음을  내려놓고 나서부터 읽기를 시작하면 술술  읽힌다. ‘나도 알거든? 으흠, 두고 보겠어팔짱끼고 벼르며 읽는  시작부터 틀려먹은 거다.  경우 마케팅이나 홍보, 독서 관련 서적을 읽을  유독 이런 시건방짐과 뾰족함 둘다 탑재되곤 한다. 특히  IT 기업이나 어플리케이션 회사에서   경력을 내세운 에필로그에서부터 벌써 째려보게 된다.


참 되먹지 못하게 유치하지 않은가. 글배우의 <괜찮지 않은데 괜찮은 척했다>를 보면 부자가 되는 법 3가지가 나온다. 하나는 내가 되고자 하는 걸 확실히 정하고 둘째는 실패할 준비를 하며, 마지막은 집중한다는 것. 이걸 ‘제대로 읽기’로 바꿔도 무방하다. 물론 이 세 가지 방법의 전제는 곧 ‘인식’이다. ‘겸양적 인식’, 내가 모르고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고 알아야 읽고자 하는 걸 정할 수 있고, 읽다가 이해하지 못함을 온전히 받아들이게 되는 것


그러다가 몰입해 눈에 힘 풀고 ‘오호라’ 기합 넣고 보게 되면 하나라도 건질 수 있다. 이 삼박자가 어우러진다면 제대로 읽기가 가능할 것이다. 더군다나 젊은 작가가 연륜이 적은데 대체 뭘 알겠어 등의 꼰대적 마인드로 메시지보다 메신저에 집중한다면 본질을 놓치기 일쑤니 세상 얇고 말랑하게 영민해져보자. 가끔씩 겸양은 안드로메다에 두고 레이저부터 뿜뿜 발사하는 내가 꼭 명심해야 할 부분인 것 같다.


“손을 넣어 대지의 가슴을 만져보라, 추운 겨울의 얼어붙은 것 같았지만 아니다. 그 얼음으로 인해 이제 우리의 보습을 받을 준비가 돼 있다.” 톨스토이의 <인생이란 무엇인가>에서 아마도 내려놓으면서 내 분수를 아는, 비우면서도 나를 깨우는 그런 자세로 겸양적 독서까지 하는 자는 더 이상 책이 필요없는 이미 현자가 아닐는지, '겸양지덕' 난 아직 멀었기에 여전히 독서하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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