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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한다 May 23. 2022

무계획 독서

독서사색

“앞머리를 일자로 자르지 말고 아치형으로 하세요. 유한 인상으로 보이시려면”


얼마 전 미용실에서도 들었던, 아마 100만번 귀에 인이 박히도록 그 말에 커다란 너털웃음과 “아, 다시 태어나야 할 거 같아요.”로 친절히 화답한 지 10년째. 이젠 그러려니 하고 AI 로봇같이 자동적으로 리엑션을 한다. 아마도 온전히 날 받아들인 모양이다. 유하면 어떠하고 세보이면 어떤가. 거친 인상과 레이저 발사 눈을 소중히 돌보고 내면을 더욱 가꾸는 개성만점 삶을 살겠다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다.


이처럼 나이 들수록 외모 등 내려놓는 지점들이 하나둘씩 생긴다고 하는데, 희한하게도 책읽기의 경우 레드퀸 효과에 갈팡질팡할 때가 있다. 세스 고딘이 붉은 여왕의 저주라고 부른 레드퀸 효과는 진화생물학에서 파생한 개념으로 우리네 삶이 모두 런닝머신 위에 있다는 것이다. 즉 제자리에 가만히 멈춰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뒤쪽으로 이동해버리기 때문에 계속 달릴 수 밖에 없다는 것


이지성과 정회일의 <독서 천재가 된 홍대리>를 보면 레드퀸 효과를 내세우며 독서로 제자리에 온전히 머물기 위해서는 온 힘을 다해 뛰어야 하고 비슷한 경쟁에서 벗어나려면 매일 한 권씩 책을 독파하는 등의 두 배 이상의 노력을 들이라 한다. 사실 시도를 해보지 않은 건 아니다. 몇 년 전 첫 이직에 무난히 적응하기 위해 호기롭게 일주일에 책 두 권은 거뜬히 보자고 넘버링까지 해가며 가속도를 붙였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었다.


 책을 보는 행위에 집중하는  아니라  순간 내가 지키고 있는 계획이 우선이며 오히려 독서 자체는 부수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두세 권은  읽어야 일주일을  마무리할  있을 거란 일종의 강박도 보태어 더는 독서하는 시간이 기다려지지 않았다. 이러한 깨달음과 회한 이후  이상 1년에   계획 따윈 없다. 대신 하나 건진 습관은 문화일보  매주 금요일마다 책을 소개하는 섹션을 빠짐없이 읽는다는 . 이를 통해 책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얻고 활용하고자 한다.


갑자기 양희은의 <그러라 그래>에서 전유성씨가 말한 게 생각난다. 저자가 일을 그만두고 노년에 대해 생각만 하고 결단을 확실히 내리고자 할 때 ‘뭘 몇 살까지 하겠다는 계획을 해? 그냥 해! 나이 든 사람이 방송하면 말투가 꼭 한문 선생님 같아지는데 자꾸 사람을 가르치려고 들면 그땐 그만둬.“ 맞다. 신은 인간을 하찮게 비웃는 빌미가 바로 사람의 계획이라고 하는데, 이 책을 먼저 봤더라면 더 좋았을 걸 아쉬움이 드네.


“나는 새로운 접점을 찾기 위해 시간과 품을 들이기보다 아무튼 눈앞에 있는 내가 하고 싶은 일에 힘과 의식을 집중하고 싶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고양이를 버리다>를 보고 다소 마음이 놓였다. 그저 성실하게, 꾸준히, 묵묵하게 읽다 보면 본연의 나를 주체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자기 주도력이 생기겠지. 잘 여물어가며 잘 읽으면서 나만의 정통성을 세워보자. 어느새 성장해있는 내 자신을 언젠가 마주할 수 있기를 희망을 안고 책을 가슴에 꼭 품어보는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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