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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한다 May 26. 2022

음식처럼 취향도, 추억도 환대

독서사색

책과 동급으로 애정하는 음식에 녹아져 있는 추억 한 줌을, 흐릿한 기억 속의 지난 날을 떠올려본다.

파리 출장 때 쭉쭉 찢어먹었던 후추 잔뜩 육포와 한국에서 공수해 간 캔막걸리

청와대 앞에서 온갖 폼 잡고 책을 보며 홀짝거렸던 제주 에일 수제맥주

쌍욕 한 바가지, 눈물 콧물 범벅에 고현항에서 쪽쪽 빨던 소주팩

혼자 간 여수에서 모듬회 한 사라에 흔들지 않은 100년 전통 여수생막걸리


보스의 퇴임을 목전에 두고 있어 그동안 같이 한 동료들, 관련자들과 인상적인 한 끼와 더불어 추억을 선사하고자 맛집을 폭풍 검색하는 품을 팔고 있다. 블로그도 훑어보고 후기와 사진도 꼼꼼하게 보고 장소를 선택한다. 갈 때마다 나름 괜찮은 호평을 얻게 되어 아예 맛집 블로그를 해볼까 솔깃한 요즘이다. 사람들에게는 그 어떤 것보다 음식을 통해 전해져오는 감동과 그때 시간을 함께 한 사람들과의 기억이 아무래도 크게 느껴지니 유독 신경쓸 수 밖에


한승혜의 <제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에선 책의 취향을 만드는 걸 맥주에 비유한다. 에일이든 라거든 자기 입에 꼭 맞는 걸 알아내려면 많이 마셔봐야 하는 것처럼 책도 마찬가지. 지인들에게 책 추천을 자주 하는 편인데, “내가 죽으면 다른 사람의 기억 속 내 인생만 남는다.”는 김병수의 <마흔, 마음 공부를 시작했다>처럼 나를 보면 다른 사람의 기억 속에 내가 추천해준 책 한 권 정도는 남았음 좋겠다는 욕심이 생긴다.


북큐레이팅, 참 어렵긴 하다. 최인아 책방에서, 용인의 리브레리아에서 매달 책을 받는데 내 취향에 맞지 않으면 가차없이 중고책방으로 직행한다. 읽기 싫은 책을 읽는 건 입맛에 맞지 않은 음식을 먹는 것처럼 고욕이고 음식은 삼키고 뱉고가 되지만, 책은 부피가 있어 부담스럽게 공간을 차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려워서 시도하지 않는 게 아니라 시도하지 않아서 두렵다는 말에 기운을 얻어 책을 추천받고, 선물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때론 자격시비가 붙곤 한다. 어쭙지 않게 너가 좀 책을 읽는다고 함부로 내 취향을 안다고? 그리고 가장 어려운 건 차원이 다른 클라스를 선보이는 다독가 보스들에게 책을 추천할 때다. 엄청난 교양의 아우라에 눌려 기죽게 되고, 나의 수준을 어떻게 평가할까 벌거벗겨진 마음에 너무나 많은 생각이 머릿 속에 떠나지 않지만, 맛집을 직감으로 때려 맞추는 그 신기를 적용해 그대로 유감없이 책고르는 감을 보여주겠어! 하고 마음을 다져본다.


 6개월 안에 읽었던 책들  소개했는데 30 공직생활 끝에 명예퇴직을 앞둔 분에게 김영민의 <공부란 무엇인가>, 라이코스 메일계정에서부터 만화잡지 보물섬을 그리워하는 80년대생 언저리 분들에게 김정훈의 <낀대세이>, 그림과 화가의 인생을 한눈에 단숨에 보고 싶은 분들에겐 문하연의 <다락방 미술관>, 브랜딩에 대해  제대로 잡고 싶은 창업을 꿈꾸는 분들에겐 황조은의 < 회사의 브랜딩>, 나같은 고전 잘알못들에게 김훈종의 <어쩐지 고전이 읽고 싶더라니>   북큐레이팅 적중률은 어느 정도인지 무척 궁금하다.


앞으로 남은 독서 세월, 그게 얼마 되었든 간에 하여간 힘닿는데까지 많이 읽고 침튀기면서 많이 추천할거다. 자신 있게 누군가에게 권할 수 있고, 같이 읽자고 청유할 수 있는 그런, 우리의 독서는 음식처럼 기억과 취향을 찾아가는 어느 지점에 과연 와있는지 모르겠지만...갑자기 생각나는 책, 당연한 환대를 받고 용기를 듬뿍 얻고자 할 때 읽어야 할 이라영의 <환대받을 용기, 환대받을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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