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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한다 May 27. 2022

소로까진 아니더라도

독서사색

이보다도 빠를 수 없다. 빛 말고는. 얼마 전 지인이 하는 광주시 텃밭에 가지런히 심어져 있는 로메인 등 상추들을 보고 이성을 잃고 허겁지겁 땄던 기억이 떠오른다. 아마도 그날이 내 인생 처음으로 상추를 따본 날이었지? 코로나19 때문일까 아님 작년 연말에 퇴직한 분이 하루에 10시간 넘게 공부해 얼마 전에 조경관련 자격증을 땄다는 소식을 듣고 난 후부터일까. 그린그린 푸르름에 대한 무척이나 관심이 생겼다. 그래서 베란다 없는 우리 집에서 텃밭을 어떻게 가꿔볼까 이 생각 저 생각에 구글링을 해보고, 그동안 수없이 죽였던 선인장에 따박따박 물을 주기 시작했다. 


난 푸르름을 참 좋아한다. 일단 눈이 청량해지고 시원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매일 못 볼 꼴 듣고 싶지 않는 소음을 많이 접하지 않는가. 더러워진 눈과 마음을 치유하는 초록을 통해서라도 그렇게 깨끗해지고 싶을 뿐이다. 예전 잠실 살 때는 주말마다 올림픽공원 잔디밭에 아이를 풀어놓고 돗자리 깔고 누워 책을 보곤 했다. 이른바 천고독서. 가장 백미는 하늘 한 번 보고 책 한 장 보고, 초록 한 번 보고 아이는 저 멀리 안전한 곳에서 뛰어놀고 있어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안락함까지 더한다면 그야말로 행운이다. 


좀 더 보태자면 그 때 본 파란 하늘과 푸른 잔디, 더불어 책 한 장, 하늘 한 번 볼 수 있는 내 마음의 여유로움과 절묘하게 버무려진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 이게 행복이 아니면 뭐겠나. 이 정도면 됐다는 안도감까지...그때 본 찬란했던 하늘과 싱그러운 초록잔디를 가끔 생각난다. 이제와 왜 문득 그리운 것일까. 천고독서를 할 마음의 한 켠조차 내지 못하고 있는 요즘을 보내고 있는 건 되돌아볼 때다. 어떤 장소가 나의 독서를 유난히 이끄는가를 곰곰이 생각해봤더니 사실 10년 동안 덜컹거리는 어두컴컴한 버스 안에서도 무지 잘 읽었다. 


가만 보자. <윌든>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공간을 통해 인생을 전환하지 않았던가. 20대 젊은 나이에 그는 과감하게 월든 호숫가 숲속으로 들어가 오두막을 짓고 밭을 일구며 본인 방식대로 먹고니즘을 해결했다. 어린 시절부터 광적인 책벌레였기에 언제든지 비슷한 주제만 나오면 거의 문장 자체를 외워서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엄청난 양의 독서를 숲 속의 오두막에서 했겠지. 


내 경우 어떤 식으로든 책이 잘 읽히는 장소적 한계는 크게 없지만, 가장 편안했던 건 잔디를 배에 깔고 엎드려 읽었거나, 아님 높다란 하늘과 함께 같이 두 팔 벌려 읽었던 순간이었다. 참으로 반가웠던 소식 하나. 서울광장이 ‘책 읽는 서울광장’으로 탈바꿈해 우리 곁에 돌아왔다는 것. 이제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 서울광장은 3천여권의 책과 문화가 있는 곳으로 변화된 모습을 갖췄단다. 


조만간 주섬주섬 책 몇 권 에코백에 넣고 편안한 뮬 신고 광역버스에 몸을 실어야겠다. 빈백 하나 빌려서 반짝이는 하늘 한번 보고 푸른 잔디 한번 보고 책장 넘기면서 그렇게 멈출 수 없는 책읽기의 즐거움에 빠지고 싶다. 다른 사람들이 앞으로 나아가는 곳, 거기서 나는 멈춰 선다. 독서로, 헨리 소로의 숲속 오두막까진 아니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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