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사색
“나는 반드시 무엇을 얻으려는 마음에 독서를 하지는 않습니다.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독서를 하면 재미가 없거든요. 따라서 책을 계통에 따라 읽는 경우도 거의 없고, 깊이 숙독하는 경우도 많지 않습니다. 그 대신 폭넓은 분야의 책을 읽죠, 소설까지.”
고 이병철 회장께서 하신 말씀이라는데, 시간이 약이고 금인 대기업 회장이 소설까지 읽는 것은 결코 흔한 일은 아닐 거다. 그만큼 장르를 넘나드는 폭넓은 독서는 중요하다는 말이겠지.
최승영의 <빨리 은퇴하라>를 보면 독서에는 다섯 가지 방법이 있다더라. 첫째 박학, 말 그대로 두루두루 다양하게 읽는 것 두 번째는 심문, 궁금증을 가지고 있는 것, 세 번째는 신사, 독서를 하며 신중하게 생각하는 것, 네 번째는 명변, 독서를 통해 명백하게 분별하는 것,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는 독행, 독서를 통해 얻은 지식을 진실한 마음으로 성실하게 실천하는 것
앞서 언급한 이 회장님은 박학으로 책을 읽으신 거 같고, 그렇다면 나는 어떤 독서를 하고 있는가. 최종 목적은 ‘독행’이지만, 닥치는 대로 섭식하면서 오롯이 내 시간을 가지며 힐링한다는 과정 자체를 즐기고 있는 중이다. 책을 펼쳐들면 세상만사로부터 여기저기 치이고 휘둘렸던 시간에서 벗어나 저자와 나만이 있는 영적 공간에 들어가거든. 일종의 공감여행이라고 해야 하나. 그 자체만으로 정말 좋다.
긴가민가할 때도 있다. 책을 보면 스마트하고 기똥차게 논리정연한 사람들 천지인데, TV를 틀면 마치 온통 바보멍충이들이 감히 세상을 맥락없이 흔들어대는 것 같으니 어지러울 수 밖에. 처해 있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겹눈으로 종합적으로 보는 데는 정말이지 독서만한 것도 없다.
근데 <철학자 김진영의 전복적 소설 읽기> 이런 책을 보면 “리스펙“ 소리가 절로 나온다. 다 빡빡 책장이 찢어져라 밑줄치고 싶다. 절대 비교하지 않으려 해도 저자처럼 이런 완벽하고 주관적 독서가 되려면 도대체 몇 권의 책을 읽어야 하나. 나 죽기 전에 가능한가 싶기도. 고개 쳐들고 다니기 민망할 정도로 내 독서가 비루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희의 <책에서 한달 살기>도 입이 쫙 벌어진다. 이 책 저 책 두루두루 정신없이 질척이는 나같은 산만이에겐 저자가 시도한 한 책에서 한 달 살기는 도저히 미션 임파서블이다.
가만 보자. 아니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는데 열등감 따위까지 가져야 하나. 참네. 나의 독서는 일종의 앙리 루소의 그림 같은 거라 생각한지 좀 되었다. 왠 앙리 루소? ‘잠자는 집시’를 그린 그는 글쎄 평생 그림을 배워본 적 없으며 어느 유파에도 속한 적이 없었다. 본업은 세관원, 40세가 넘어 취미로 일요일마다 그림을 그렸던…대단하지 않은가. 헌데 더 대찬 게 있다.그의 고향 라발이라는 시의 시장에게 셀프 추천 편지를 쓴다. 잠자는 집시를 사달라고 참 당차다.
힘주어 ‘이걸 꼭 잘해볼거야’ 보단 예전엔 돌처럼 거들떠도 안봤지만 느즈막히 자연스레 흥미를 느끼는, 먹물이 화선지에 스윽 스미는 듯한, 이게 진정 내 독서 스타일이다. 아무튼 사회복지사 6과목 중간고사와 과제는 끝났고, 내일은 퇴근 후 이불 곱게 뒤집어쓰고 요망한 것에 몸을 맡겨버려야겠다. 온갖 근심과 잡념을 싹 잊게 하는 나의 만병통치약 일단 컴온! 뭐 읽지? 이어령 선생님 아님 강신주 선생님? 찰스 핸디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