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변한다 Apr 17. 2022

어쩌다 독서

독서사색

“나는 반드시 무엇을 얻으려는 마음에 독서를 하지는 않습니다.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독서를 하면 재미가 없거든요. 따라서 책을 계통에 따라 읽는 경우도 거의 없고, 깊이 숙독하는 경우도 많지 않습니다. 그 대신 폭넓은 분야의 책을 읽죠, 소설까지.”


고 이병철 회장께서 하신 말씀이라는데, 시간이 약이고 금인 대기업 회장이 소설까지 읽는 것은 결코 흔한 일은 아닐 거다. 그만큼 장르를 넘나드는 폭넓은 독서는 중요하다는 말이겠지.


최승영의 <빨리 은퇴하라>를 보면 독서에는 다섯 가지 방법이 있다더라. 첫째 박학, 말 그대로 두루두루 다양하게 읽는 것 두 번째는 심문, 궁금증을 가지고 있는 것, 세 번째는 신사, 독서를 하며 신중하게 생각하는 것, 네 번째는 명변, 독서를 통해 명백하게 분별하는 것,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는 독행, 독서를 통해 얻은 지식을 진실한 마음으로 성실하게 실천하는 것


앞서 언급한 이 회장님은 박학으로 책을 읽으신 거 같고, 그렇다면 나는 어떤 독서를 하고 있는가. 최종 목적은 ‘독행’이지만, 닥치는 대로 섭식하면서 오롯이 내 시간을 가지며 힐링한다는 과정 자체를 즐기고 있는 중이다. 책을 펼쳐들면 세상만사로부터 여기저기 치이고 휘둘렸던 시간에서 벗어나 저자와 나만이 있는 영적 공간에 들어가거든. 일종의 공감여행이라고 해야 하나. 그 자체만으로 정말 좋다.


긴가민가할 때도 있다. 책을 보면 스마트하고 기똥차게 논리정연한 사람들 천지인데, TV를 틀면 마치 온통 바보멍충이들이 감히 세상을 맥락없이 흔들어대는 것 같으니 어지러울 수 밖에. 처해 있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겹눈으로 종합적으로 보는 데는 정말이지 독서만한 것도 없다.


근데 <철학자 김진영의 전복적 소설 읽기> 이런 책을 보면 “리스펙“ 소리가 절로 나온다. 다 빡빡 책장이 찢어져라 밑줄치고 싶다. 절대 비교하지 않으려 해도 저자처럼 이런 완벽하고 주관적 독서가 되려면 도대체 몇 권의 책을 읽어야 하나. 나 죽기 전에 가능한가 싶기도. 고개 쳐들고 다니기 민망할 정도로 내 독서가 비루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희의 <책에서 한달 살기>도 입이 쫙 벌어진다. 이 책 저 책 두루두루 정신없이 질척이는 나같은 산만이에겐 저자가 시도한 한 책에서 한 달 살기는 도저히 미션 임파서블이다.  


가만 보자. 아니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는데 열등감 따위까지 가져야 하나. 참네. 나의 독서는 일종의 앙리 루소의 그림 같은 거라 생각한지 좀 되었다. 왠 앙리 루소? ‘잠자는 집시’를 그린 그는 글쎄 평생 그림을 배워본 적 없으며 어느 유파에도 속한 적이 없었다. 본업은 세관원, 40세가 넘어 취미로 일요일마다 그림을 그렸던…대단하지 않은가. 헌데 더 대찬 게 있다.그의 고향 라발이라는 시의 시장에게 셀프 추천 편지를 쓴다. 잠자는 집시를 사달라고 참 당차다.


힘주어 ‘이걸 꼭 잘해볼거야’ 보단 예전엔 돌처럼 거들떠도 안봤지만 느즈막히 자연스레 흥미를 느끼는, 먹물이 화선지에 스윽 스미는 듯한, 이게 진정 내 독서 스타일이다. 아무튼 사회복지사 6과목 중간고사와 과제는 끝났고, 내일은 퇴근 후 이불 곱게 뒤집어쓰고 요망한 것에 몸을 맡겨버려야겠다. 온갖 근심과 잡념을 싹 잊게 하는 나의 만병통치약 일단 컴온! 뭐 읽지? 이어령 선생님 아님 강신주 선생님? 찰스 핸디 선생님?


작가의 이전글 백만 년 만에 동네책방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