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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한다 Apr 18. 2022

‘窓’ , 독서의 효용

독서사색

  

“사람의 다양한 면모가 주사위처럼 여섯 개가 있다고 가정하면 각각의 관계마다 보여줄 수 있는 면이 다르다는 것”     


남극에 다녀온 90년대생 작가 김인태의 <재밌으면 그걸로 충분해>에서 일명 주사위론을 이야기하는데 눈이 번쩍였다. 남이 모르는 내가 있다면 내가 모르는 남도 있는 , 그러니 나는 어떤 사람이고 너는 어떤 사람이라는 어떠한 틀에 가둬 생각하는 오류를 범하지 말자는 거다. 이는 조하리창과 비슷한 개념이다. 똑같은 세상이라 할지라도 우리가 어떤 프레임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는가에 따라 달리 보인다.


지금 4월이니 나무의 예를 들어보자. 30년 된 나무를 관공서에서 베었다고 그 자체만으로 ‘가로수 학살’, ‘가로수 실종사건의 전말’이니 뭐니 무지막지한 소란 끝에 알고 보면, 인도에 지그재그로 심어져 있어 보행의 불편함과 나무의 크기와 높이 때문에 이식의 어려움 둘 다 있어 어쩔 수 없는 실행이었다는 건 가려져 있다. 오직 눈에 띄는 건 ‘오래된 나무의 불쌍한 종말’ 이어야 할 뿐     

독서를 통해 비뚤어지는 시선을 경계하고 다잡으려 애쓰는 건, 바로 이 지점이다. 책을 통해 아웃워드 마인드셋이 가능하다. 일차적으로 다양한 사람들의 관점을 접할 수 있다는 거다. 그리고 타인을 사람으로 보며 그 사람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부터 관심을 갖게 된다. 즉 내 시각을 내부에서부터 외부로 돌려볼 수 있음으로서 자신에 대한 신념을 넘어 세계관으로 확장할 수 있다.   

 

찰리 채플린의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란 관점, 시선의 전환이라든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의 김춘수 시인의 ‘꽃’에서 본 대상에 대한 의미 있는 관찰 등 덧붙일 말들은 수두룩하다.     


사실 막상 들어가보지 않고 겪지 않고 함부로 말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사춘기를 겪는 중1 아들을 보며 요즘 드는 생각을 양념 살짝 치자면, 내 속으로 낳은 자녀의 마음 속 한 켠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면서 말이다. 결국 우리는 만물 가운데 하나일 뿐 우리 중심에서 한발 물러서서 곁에서 바라본다면 그 시선으로 다른 어두운 자리를 비출 수만 있다면 이 또한 즐겁고 의미 있는 일 아닌가.   

  

얼마 전에 본 김이섭의 <인생의 답은 내 안에 있다>에서 기가 막힌 문구가 있더라. “인생의 가나다는 시비를 거는 게 아니라 시비를 ‘가리다’. 네 것과 내 것으로 나누는 게 아니라 함께 ‘나누다’, 차별하는 것이 아니라 차이를 만들어내는 ‘다르다’” 헌데 왜 주위에 사사로운 시비를 걸고 넘어지고 자빠지는 사람들이 많은지 원...참 어렵고 분주하게 산다 싶다. 그러거나 말거나     


“ 뭔 책을 많이 읽어? “ 갸우뚱하며 독서의 효용을 묻는 분들께 ‘窓’이라는 짧고 굵게 대답하련다. 그대가 앉은 자리에서 멀리, 깊게, 구석구석, 요모조모 볼 수 있는 이것이 바로 독서가 주는 위대한 힘!

(3주 전 자가격리 중, 하도 답답해서 책들고 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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