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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한다 Jun 06. 2022

불편함을 딛고

독서사색

잘못 골랐다. 천주희의 <우리는 왜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가> 아침에 카카오바이크 득템해 한껏 좋은 공기 들이마시며 천을 가로지르면서 새벽 출근 잘했는데, 읽고 나니 삶은 고구마 열 개 몽땅 한입에 털어넣은 거 같다. 빚과 가난에 좌절하는 우리 가여운 청춘들, 이 노릇을 어쩌면 좋은가. 열정 페이와 헬조선에 아파하고 허덕이는 이 시대 젊은이들의 모습과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자화상, 예전의 내가 떠올라 참 먹먹했다.


젊음 그 자체는 차세대의 착취해야 할 노동력이며, 이미 노동자계급의 일원이라고 생각하는 게 어쩌면 당연한 시대다. 우리 젊은이들은 아르바이트, 인턴십, 산학협력 등의 이름으로 이미 노동을 하고 있으며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내 경우도 대학시절 기억은 통째로 없다. 동아리고 뭐고 학창시절의 향수나 낭만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돈 버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거든.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참 다를 바 없어 더 가라앉는다. 


잘못 골랐다. 폐지줍는 노인을 다룬 소준철의 <가난의 문법> 주인공의 현실 속에는 멀지 않은 미래에 늙어갈 우리들의 모습이 담겨 있음에 남일이 결코 아니라는 걱정부터 앞서게 되는 그래서 밤잠을 설쳤다. 한때 서울 북부에 주택을 구입할 정도의 부를 쌓았지만 연금과 폐지판 돈, 노인일자리로 벌어들이는 돈을 합쳐 50만원 정도로 삶을 겨우 지탱하고 있는 주인공의 가난이 결국 국가와 사회와 시대의 변화 속에서 생긴 거라고 하니 답답할 수 밖에 


은퇴나 퇴직 따윈 생각할 수 없는 노인들, 알고 보면 그들이 노후에도 빈곤한 이유는 아마도 자식들 뒷바라지에 그동안 모은 자산과 노동력 대부분을 바쳤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고단한 세월 끝에 돌아온 건, 온전치 못한 몸으로도 또다시 쓰레기 줍는 하급의 노동을 강요당해야 하는 각박한 현실. 돈 버느라 혼이 나갔던 젊음과 청춘이 있었다 하더라도 이들의 가난은 20년 후 우리에게 닥친 미래일 수 있다 하니 더 침전된다. 


지난해 여름 우리는 유엔개발회의에서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국가적 지위가 격상하게 된 국가가 됐다. 눈 떠보니 선진국, 허나 OECD 회원국 중 자살율 1위인 대한민국에서 20대, 60대 남성의 자살이 증가하고, 2030대 여성의 죽음 원인의 1위가 자살이라는 통계는 아직도 후진국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가슴 아픈 현실의 반증이 아닐는지. 밑이 어딘지도 모르게 끝없이 하강하고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던 건 아마도 그 이유일 것이다. 


더 이상 ‘아프니까’가 당연한 전제가 되지 않고 ‘덜 아프게’ 우리들을 위해 청년수당과 연금을 통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과, 실업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게 새로운 응전을 지원하는 시스템은 눈 떠보면 선진국인 대한민국에 아직 요원하기에 읽을수록 더 침전되고 더 가라앉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불편한 독서를 감행해야 한다. 그대 더 나은 세상과 더 나은 미래를 꿈꾼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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