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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한다 Jun 17. 2022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박따박 ‘NO’ 외치기

독서사색


어제 자원봉사 활동가를 대상으로 ‘나를 지키면서 일하기’란 주제로 강의를 하는데, 질문이 들어왔다.

 

”어떻게 하면 거절을 잘 할 수 있나요?“ ”이견을 상사에게 어떻게 말해야 하나요?“

 

거절도 이견을 표현하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고, 최대한 예의를 갖춘 태도를 취하라는 원론적인 이야기를 했다만 지금 생각하니 강상중 선생님의 말씀도 보탤 걸 그랬네. <살아야 하는 이유>에서 인간의 세 가지 가치에서 그 하나는 ‘뭔가를 만들어 내는 창조’ 그리고 창조보다는 못하지만 ‘해보지 않은 것’보다는 훨씬 나은 것으로 ‘경험’ 마지막으로는 인간의 진가는 바로 ‘태도’에 있다고 했다고 했다.


나 이 세 가지 중 가장 중요한 하나를 꼽으라면 역시 태도를 택하겠다. 즉 분명한 입장을 취하는 것이다. 즉 명확하지 않거나 불분명한 의욕이 생기게 하는 것에 정확하게 응답하는 것, 그게 실력이고, 본질이다. 옌스 바이드너의 <나는 단호하게 살기로 했다>에서 단호한 매운고추 전략가가 되라고까지 주문한다. 땡초까지 가지 않더라도 적어도 나이가 들수록 직급이 높아질수록 보이지 않는 책임에 대한 강한 책임감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그렇지 않으면 사이비, 가짜다.

 

책을 읽을 때도 그렇다. 이견에 나 스스로 설득되지 않을 경우 잠시 책을 덮고 숨을 고른다. 계속 째려보고 곱씹어보고도 납득할 수 없다면 나와 의견이 다르다는 걸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NO의 입장은 쫀쫀하게 유지해야 하고. 물론 온라인 인터넷 서점에 평점테러나 악플은 하지 않으니 걱정은 넣어두시라.


예전에 읽었던 인구학자 조영태의 <정해진 미래>, 적군도 놀라 움찔하는 사춘기 소년을 키우고 있는지라 책을 읽다가 서울대 교수 저자 본인의 학습법이나 교육법을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눈이 반짝였었다. 저자는 미래를 보면 사교육은 필요 없는 지출이고, 눈에 결국 보이고 그 돈으로 다른 활동을 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는 부분에서 화들짝 놀랐다.

 

내 생각과는 참 많이 달랐다. 외람된 말로 아이들 교육에 과도하게 민감한 한국 사회에서는 이런 이야기 함부로 하면 어쩌누 별의별 걱정까지 더했다. 어떻게 성적만을 올릴 수 있는 교육이 세상 어디에 있던가. 공부를 하다보면 다른 예를 들어 학원에서 좀 어려운 단어를 외우며 고차방정식을 포기하지 않고 붙들고 있다가 해결하다 보면 끈기와 집념도 함께 배울 수 있는 거 아닌지. 그렇다면 그런 교육에 들어가는 에너지와 시간, 돈은 그만큼 가치가 있는 거 아닌가.

 

카스R선스타인의 <왜 사회에는 이견이 필요한가>에서 설령 개인의 의견이 사회의 지배적인 의견과 다르다 하더라도, 개인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이야기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사회 전체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안도의 한숨…그래 나는 저자말에 잘 따르는거야. 더불어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사회라면 구성원들이 무조건적으로 동조하지 않고, 좀 더 활발하게 이견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나는 쏠리는가 이견을 내는 편인가. 물론 나이들면 들수록 벽에 가로막힐 때마다 침묵이나 가래끓는 ...으로 일관하는 경우가 대체적으로 많아지는 것도, 일생이 모난 돌처럼 두들겨  맞았기 때문에  이상의 마모될 머리도 없다는  역시 사실이라는 시덥지도 않은 변명 또한 해본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당히 노가 필요할 때마다 노를 외친다. 물론 노에 뒷받침해줄 대안이 있으면 더 좋고. 광야에서 나홀로 비바람 다 쳐맞는 일이 있을지라도 뭐 아닌 걸 아니라고 하지 못하면 왜 책을 읽고 배우고 성장하려 애쓰는가. 이런 저런 의문 따위를 품어보면서 그렇게 다이나믹 판타스틱 어메이징한  주를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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