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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한다 Jun 29. 2022

삼라만상 모래성 같은

독서사색

37년 노포 을지면옥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마지막 냉면 한 그릇에 아쉬움을 토로하는 사람들도, 울고 간 사람들도 있다던데 생각해보면 재개발 사업을 중단시켜가면서 약 40년 전에 지은 벽돌집을 끝내 보존할 가치가 있는지, 그러한 것이 다른 상점과의 형평성에서 어긋나는 건 아닌지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제쳐두고, 쌓고 오래되면 부수고 우리의 지혜도 그런 게 아닌가. 결국 삼라만상 모래성 같다는 생각을 문득 하게 되었다.


노은주, 임형남의 <도시인문학>에서는 2003년 미국의 공습 때 안타깝게도 파괴된 이라크 바그다드 도서관 예를 들어 설명했는데, 꼭 물리적인 공격으로 생각하기 이전에 하이테크놀로지든 고급정보든 트렌드든 뭐든 우리가 축적하고 있는 지혜의 성에 일종의 크고 작은 자극들이 아닐는지. 결국 지혜라는 것이 없는 것, 혹은 있음과 없음의 경계를 뛰어넘는 것이라고 해도 그 한계를 알면서도 계속 쌓아올리는 노력, 어쩌면 그것이 미련하긴 하지만 가장 인간다운 여정일지도 모른다. 나의 독서도 그러겠지.


파울로 코엘료의 <내가 빛나는 순간>에서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려면 오래된 시대는 마무리지어야 한다고 했다. 우린 안다. 지나간 것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돌이켜보면 그동안 대체불가라고 생각했던 일이나 지혜나 사람이 없거나 부족해도 잘 살아남았다. 그러고 보면 관행이란 건 참으로 별것 아니다. 자의반 타의반이든 간에 물 흘러가듯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일 아닌가. 뭐니뭐니해도 초절정 고수는 유연함이 빚은 여백의 하이테크. 부족한 부분을 알고 채우고 나중에 덜어내고 싹 비워내는


비움과 채움의 균형을 찾아가면서 제대로 익어가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주위를 둘러봐도 그러하다. 뭐니뭐니해도 비움과 채움의 때와 정도를 아는 어른이고 선배이고 싶다. 멈춰야 할, 자리를 비켜줘야 할 그 때에 한 발짝 물러나 줄 수 있는 쿨함과 질척거리지 않는 담백함의 지혜. 나는 얼마나 갖고 있나. 언제까지 연마해야 하는가. 도돌이표같은 물음을 던져보게 된다.


2개월 후면 이 곳에 근무한지도 만 4년, 어제 처음 만난 분이 내가 일하고 있는 곳을 듣고 나서 “너무 힘드시겠어요. 위기관리의 끝판왕을 맛볼 수 있는 곳 아닌가요?” 술렁이는 마음에 제대로 콕 박혔다.  집으로 오는 내내 잠시 마음의 위안 같은 게 찾아왔다. 전 직장, 그 친정 같은 회사에 눌러앉아 비슷한 사람들과 복닥거리며 지금껏 일했어도 정말이지 그럴싸한 평타 이상의 인생이었으리라. 허나 내 나름대로의 이유있는 도발과 개김이 퇴사고 이직이었고, 내 사전엔 빽도는 없었다.


4 내내 휘몰아쳤던 전쟁 같은 일상에서 정신줄 부여잡으며  읽고 사색하고 폭풍 같은 마음을 다스릴  아는  또한 소중하고 귀한 배움 아니더냐. ‘끝난다  ‘끝에서 난다 것으로 끝에서 둥근 새로운 시작이 나온다고는 말이 있다. 출발이 있으면 마침이 있고 끝이 있으면  다른 시작이 있고 적응이 있다. 모든  그러하리. 이로 인해 겹눈을 가지고 처음 보는 바깥을 사유하는. 세상 모든 일엔 완벽한 단점도 장점도 없다는  기막힌 진리를    깨닫으며 내일은 4 가까이서 모셨던  보스의 퇴임식이다.


마무리와 새로운 출발을 똑똑히 목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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