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사색
37년 노포 을지면옥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마지막 냉면 한 그릇에 아쉬움을 토로하는 사람들도, 울고 간 사람들도 있다던데 생각해보면 재개발 사업을 중단시켜가면서 약 40년 전에 지은 벽돌집을 끝내 보존할 가치가 있는지, 그러한 것이 다른 상점과의 형평성에서 어긋나는 건 아닌지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제쳐두고, 쌓고 오래되면 부수고 우리의 지혜도 그런 게 아닌가. 결국 삼라만상 모래성 같다는 생각을 문득 하게 되었다.
노은주, 임형남의 <도시인문학>에서는 2003년 미국의 공습 때 안타깝게도 파괴된 이라크 바그다드 도서관 예를 들어 설명했는데, 꼭 물리적인 공격으로 생각하기 이전에 하이테크놀로지든 고급정보든 트렌드든 뭐든 우리가 축적하고 있는 지혜의 성에 일종의 크고 작은 자극들이 아닐는지. 결국 지혜라는 것이 없는 것, 혹은 있음과 없음의 경계를 뛰어넘는 것이라고 해도 그 한계를 알면서도 계속 쌓아올리는 노력, 어쩌면 그것이 미련하긴 하지만 가장 인간다운 여정일지도 모른다. 나의 독서도 그러겠지.
파울로 코엘료의 <내가 빛나는 순간>에서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려면 오래된 시대는 마무리지어야 한다고 했다. 우린 안다. 지나간 것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돌이켜보면 그동안 대체불가라고 생각했던 일이나 지혜나 사람이 없거나 부족해도 잘 살아남았다. 그러고 보면 관행이란 건 참으로 별것 아니다. 자의반 타의반이든 간에 물 흘러가듯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일 아닌가. 뭐니뭐니해도 초절정 고수는 유연함이 빚은 여백의 하이테크. 부족한 부분을 알고 채우고 나중에 덜어내고 싹 비워내는
비움과 채움의 균형을 찾아가면서 제대로 익어가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주위를 둘러봐도 그러하다. 뭐니뭐니해도 비움과 채움의 때와 정도를 아는 어른이고 선배이고 싶다. 멈춰야 할, 자리를 비켜줘야 할 그 때에 한 발짝 물러나 줄 수 있는 쿨함과 질척거리지 않는 담백함의 지혜. 나는 얼마나 갖고 있나. 언제까지 연마해야 하는가. 도돌이표같은 물음을 던져보게 된다.
2개월 후면 이 곳에 근무한지도 만 4년, 어제 처음 만난 분이 내가 일하고 있는 곳을 듣고 나서 “너무 힘드시겠어요. 위기관리의 끝판왕을 맛볼 수 있는 곳 아닌가요?” 술렁이는 마음에 제대로 콕 박혔다. 집으로 오는 내내 잠시 마음의 위안 같은 게 찾아왔다. 전 직장, 그 친정 같은 회사에 눌러앉아 비슷한 사람들과 복닥거리며 지금껏 일했어도 정말이지 그럴싸한 평타 이상의 인생이었으리라. 허나 내 나름대로의 이유있는 도발과 개김이 퇴사고 이직이었고, 내 사전엔 빽도는 없었다.
4년 내내 휘몰아쳤던 전쟁 같은 일상에서 정신줄 부여잡으며 책 읽고 사색하고 폭풍 같은 마음을 다스릴 줄 아는 것 또한 소중하고 귀한 배움 아니더냐. ‘끝난다’는 건 ‘끝에서 난다’는 것으로 끝에서 둥근 새로운 시작이 나온다고는 말이 있다. 출발이 있으면 마침이 있고 끝이 있으면 또 다른 시작이 있고 적응이 있다. 모든 게 그러하리. 이로 인해 겹눈을 가지고 처음 보는 바깥을 사유하는. 세상 모든 일엔 완벽한 단점도 장점도 없다는 그 기막힌 진리를 또 한 번 깨닫으며 내일은 4년 가까이서 모셨던 내 보스의 퇴임식이다.
마무리와 새로운 출발을 똑똑히 목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