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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한다 Jun 23. 2022

그저 그런 삶은 없듯이

독서사색

교보문구의 책향, 러쉬의 비누향, 이니스프리의 숲향만큼 내 최애는 전직장 앞 모 카페의 로스팅한 커피향이었다. 사장님께 로스팅하는 시간만큼은 꼭 알려달라고 했을 정도로 그 향만 맡으면 묵은 스트레스가 한 번에 싹 달아날 정도였다. 내 경우는 시각보다 후각에 예민한 편이다. 보이는 것은 금방 잊고 맡은 향은 오래간다. 나만 그런 줄 알았더니, 실제로 인간의 감정을 결정하는 건 75프로가 후각이란다. 맞다. 어떤 책은 책향 말고도 진짜 사람들 향기가 폴폴 나 열광할 수 밖에 없거든

 

최근에 영접한 박규옥의 <싸가지 없는 점주로 남으리> 작가는 인문학을 전공한 박사신데 내가 예전에 살았던  근처 오피스텔에서 편의점을 경영하고 계신다. 모토가 억지로 친절하지 않으려 한다는 .  사이다 한사발 숨 안쉬고 들이킨 것처럼 속시원했다. 말도 안되는 것들로  쓰는 민원인들에게 감정을 숨기고 최대한 친절하게 대해야 한다는 것에 중압감을 느끼던 차라 마침 대리만족 제대로 했다. 겨자향 와사비향 마라향 갖은 매콤한 향내 솔솔 나는 이리도 생생하고 팔딱거리는 이야기 참으로 오래간만이었다.

 

이유인즉슨 우리나라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들 중 20프로가 자영업자분들인데도 생활인 에세이는 주로 변호사, 의사 등 전문직과 유명인에 편중되어있다. 그러니 다양한 사람들의 진심이 담긴 책들을 귀히 여기고 갈급할 수 밖에. 주위 사물 하나하나를 쉬이 놓치지 않고, 자신만의 룰로 세세히 바라보며, 때로는 투덜거리지만 전체적으로 묵묵하게 진득하게 견디어내는 삶들을 마주할 때마다 현재의 나를 되돌아보게 된다.

 

댄 애리얼리의 <루틴의 힘> 에필로그에서 자신의 주변 또는 자기 내면에서 좋든 나쁘든 그 어떤 일이 일어나도 고차원적 노력과 윤리로 무장한 채 계속해서 일을 해 낼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프로라 했다. 누구든 무언가에 대해 소명의식을 지니고 꾸준히 지속할 때, 현실에 치여 이리저리 흐트러지지 않고 쭉 ~ 그런데 알고 보면 누구에게나 그런 힘 조금씩은 갖고 있지 않나? 기왕 잡은 거 놓지 않고 계속 묵묵히 붙들게 되는, 싸가지 없어도 된다고 당당히 말할 줄 아는 점주님처럼 말이다.

 

아마추어는 일희일비하고, 프로는 총욕약경한다는 도덕경 13장이 문득 생각난다. 프로는 좋은 일이 생기든 나쁜 일이 생기든 같은 강도로 놀라고 긴장한다는데 검색창에서 찾은 의미가 더 압도한다. 평범한 사람은 사소한 총애와 모욕에도 놀라지만 사물의 도리에 정통한 사람은 그런 것을 경계한다는 뜻으로 총애와 모욕을 초월함을 비유적으로 이른 말이라고 한다. 결국 총애와 모욕 두 가지를 초월하라는 고퀄의 득도를 요구한다.

 

<상관없는 거 아닌가>의 장기하는 어느 종편 책 관련 프로그램에 나와서 다시는 에세이를 쓰지 않겠다고 했다. 너의 이야기나 나의 이야기나 다 그저 그런 거 아니냐고. 어쩌면 그저 그런 평범한 일상이란 건 없다. 어떻게 매일 반짝이고 싱그럽나 싶다가도 휘몰아치는 소용돌이 같은 삶 속에서 촘촘한 일상들이 모여 하나의 우리가 되는데 말야. 선량하고 정의로운 방향감각을 가지고 총애와 모욕을 초월하는 것은 참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저마다 그저 그럴 수 없는거다.


그래서 큰 기대없이 큰 낙심없이 묵묵히 견디어내는 모든 이들에게 지금의 장대비 말고 축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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