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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한다 Jun 30. 2022

흐린날 더 유연함을 사랑한 독서가로

독서사색

“나 아니면 절대 안돼.”


주위에 일잘러들에게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며 무수히 많이 들어왔던 말, 이 세상엔 절대라는 게 없음을 당연히 알면서도 무심코 습관적으로 하겠거니 싶다가도 진작부터 궁금했다. 진짜 그렇게 생각하는 건지, 그렇다면 그 연유는 무엇인지, 혹시 주문이나 자기최면을 거는 건 아닌지. 근데 잘 보자. 타인에게 인정받고 존경받는 건 결국 내가 하는 게 아니다. 나에게 부여된 명예도 마찬가지. 타이틀을 주고 주지 않고의 주체가 내가 아니다. 전적으로 타인에게 의존해야 한다.


셀린 벨로크의 <괴로운 날엔 쇼펜하우어>에서 인간은 인간에게 늑대라는 호모 호미니 루푸스라는 말처럼 동물세계에 유독 드러나는 생존 투쟁은 인간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고 했다. 그래서 쇼펜하우어는 인생은 비용이 더 나가는 비즈니스라고 한 것이다. 인정받으러 아님 살려고 투쟁하는 모든 것에는 피로누적이나 탈진이란 비용적 측면이 발생하기 마련이니까. 고통이나 괴로움 올테면 와라 하면서 밸러스트의 예를 들었다. 밸러스트는 배를 무겁게 하지만 반드시 배에 쌓아야 뒤집히지 않고 정해진 항로를 가기 때문에 꼭 필요하다.


그 무게의 추를 잘 봐야 하는 게 평생의 과제다. 그러려면 타인과 나 사이의 균형점을 정확히 알고 자신의 페이스를 조절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물론 적당한 관심과 사랑을 받기 위해 노력하는 건 본인 성취나 계발에 나쁘지 않지만 정도가 심해지면 인정감옥에서 평생을 진저리 치며 살아야 하는 댓가를 치르게 된다. 그래서 나는 나란 개체성에 너무 몰입하지 말고 스스로를 옥죄이는 끈을 조금씩 풀고자 하는 노력을 마흔 이후에 열나게 하고 있는 중이다. 근사한 내 이미지를 만들고 살찌웠던 에고를 지금 내리고 있는 비 따위에 함께 슬슬 흘려보내고 말이다.


독서의 예를 살펴보자. 하지현의 <정신과 의사의 서재>에서 독서를 표피적, 감성적 수준의 안다에서 성찰을 동반한 알 것 같지만 잘 모르겠다는 조심스러운 통찰로 진행하는 정도라 표현했다. 내 두 눈으로 꼭꼭 씹어먹는 독서도 이 정도인데, 조직에서 남과 마음을 맞춰 같이 하는 일에서 ‘절대’ 나 ‘완벽’, ‘백프로’는 비현실성이 과한 측면이 있다. 마음 속에 늘 새겨둔다. 정수만 남겨두자. 바리스타 자격증 소지자답게 말하자면 에스프레소 원액만 잘 만들면 된다. 얼음과 물 붓고 아이스아메리카노로 만들어 먹든 우유와 휘핑크림을 넣든 말든 그건 추후의 일


이번 주는 번개도 치고 폭우도 들이붓고 우르르 쾅쾅 내 마음을 어지러이 헤집어 놓았기에 내려놓기의 수액 반 병이 그야말로 절실할 때 이럴 땐 나만의 동굴이 정말이지 필요하다. 그렇다면 이불 뒤집어 쓰고 비 소리 들으면서 책을 보는 게 어떨까. 문득 혼자 자주 출장갔던 비에 젖은 파리가 생각났다. 호텔 자그마한 창밖으로 홀로 보던 에펠탑, 매캐한 냄새 폴폴 지하철, 주린 배를 움켜쥐고 베어물던 딱딱한 바게트, 하루 종일 한국어 하고 싶어 근질거렸던 입으로 혼자 낭독을 했던 책이 뭐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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