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사색
참 보기 싫다. 인사가 만사라고 하는데 누가 누구를 지적질하는 건지 다들 기억상실증에 걸렸는지 뉴스를 완전히 끊고 싶다. 정치는 인재를 얻는데 달려 있고 현명한 사람을 등용하지 않았다면 정치를 잘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는데, 이 좁아터진 나라에서는 그리도 쓸 만한 사람들이 없나. 아님 다들 꽁꽁 숨어있는 건가, 찾을 능력이 없는 건가 헷갈리기 시작한다.
그거 아는가? 글쎄 황희는 좌의정으로 있으면서 사위 서달의 살인사건을 무마하고자 부정 청탁을 한 적이 있었는데, 세종이 대충 눈감아줬단다. 김준태의 <조선의 위기대응노트>에선 세종이 다 좋은데 인재를 쓸 때 필벌을 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신하의 잘못에 관대하다면 공직 기강은 결국 해이해지고 부정부패가 만연할 우려가 있다는 것. 세종 같은 군주야 이를 통제할 수 있는 역량이 있겠지만 평범한 리더는 필패할 수 밖에 없다는 한계를 보여준다. 그래서 좋은 게 느슨한 게 결코 나중에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
입사 후 3개월 지나 전 보스와 장시간 독대할 기회가 있었다. 조직경험이 별로 없는 그가 깜빡 놓친 거 같아 친절히 알려주기 위해 참으로 용기를 내어, 특정인에 대해 조심스럽게 꺼냈다. 그는 그 당시 14년 내 회사경력에서 듣도보도 못한 스타일의 인물이었기에 정보 공유 차원의 시도였다. 나의 포인트는 세 가지였다. ‘그를 아시느냐. 확신하지 않으면 곁에 두지 마셔라. 멀리하기 어렵거든 적어도 무슨 일을 하고 다니는지는 파악해보셔라.’ 힘들게 꺼낸 내 이야기에 전 보스 왈 “저도 압니다만, 시간이 해결해주겠지요.” 저 세상 텐션 전지적 관찰자 시점의 애매모호한 대답은 상당한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시간이 해결해주겠지요‘ 는 이별의 상처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시간이라는 묘약을 상기시켜줄 때나 하는 말이지, 매일 매일 총성 없는 전쟁터인 회사에서 하는 말은 아니다. 특히 피 튀기는 전쟁터를 진두지휘하는 리더의 입에서 나온다는 건 이유야 불문하고 무책임하고 부적절하다. 몇 년전부터 내가 계속 내 덩치에 맞는 돗자리를 사야 되는 거 아니냐고 자문자답하는 이유를 이제야 밝힌다. 내가 그 당시 요주의 인물이라고 지목한 그는 퇴사 후 전 보스를 포함해 그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거의 모든 사람들을 지금껏 혼란과 시련에 빠지게 했다. 몇몇은 직격타를 맞아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다.
독일속담에 젊은 사람들은 빠르게 걷지만 나이 든 사람은 지름길을 안다는 말이 있다. 이는 생물학적인 나이만을 뜻하는 것은 아닐 거다. 조직생활을 어느 정도 경험한 사람은 상황을 파악하고 가름마 탈 줄 아는 내공이 있다. 자질구레한 것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본질을 꿰뚫어보며 선택과 집중을 할 줄 아는, 일과 관계 그리고 심리 정도는 충분히 들여다볼 줄 안다. 무릇 리더라면 특정 분야의 특출한 능력도 중요하지만 우선적으로 사람을 보는 안목을 가져야 한다. 만약 안목이 탑재되지 않았다면, 자신보다 잘 아는 사람을 등용해, 적극 활용하며 그 사람의 말에 귀 기울여 들을 줄 알아야 한다. 안타깝게도 전 보스는 그걸 정확하게 실기했고, 그 실패는 나에겐 처절한 반면교사다.
이놈의 반면교사도 하루 이틀이지, 수시로 하면 참 지겹다. 그러나 주의해야 할 것은 나는 절대 아니라고 방심하거나 시건방떨어선 안된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기에, 절대 잊지 않고 온 몸 구석구석에 새겨놔야 한다. 꿈틀거리는 산낙지 깨소금 팍팍 넣은 기름장에 찍어먹기보단 벌건 초고추장에 빠뜨려 몇 초 기절시킨 다음에 오독오독 긴 호흡을 가지고 씹어먹듯이 말이다. 거참 오늘과 같이 먹구름이 꾸물대는 날엔 그때 적중했던 신기 같은 게 스믈스물 올라오는 거 같다. 외계인 같은 소리는 넣어두고 예전에 봤던 김정현의 <팀장 리더십 수업>을 다시 꺼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