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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한다 Jul 20. 2022

깊고 푸른 밤을 기다리며

독서사색

“그냥 제 음악이 깊어지길 바란다.” 얼마 전에 미국에서 열린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최연소 우승을 한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했던 말이다. 경쟁에서 이긴 한 청년의 툭 내뱉은 말, 산 속에서 피아노치고만 싶다고. 사실 경쟁에서 이겼다고 실력이 늘지는 않지만 우리는 이기고만 싶어한다. 일단 승리를 쟁취하고 싶어 안달난 보편적 심리를 뒤로 한 채 사람 없는 산 속에서 피아노만 치고 싶어하는 청년을 어떻게 봐야 하나.


아마도 그에게는 경쟁은 타인들과의 싸움이기보단 어제의 본인과 오늘의 본인과의 견줌을 통한 나아짐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이것이 평소의 신념이니, 두려움 없이 무심히 저런 말을 내뱉을 수 있는 것이고. 결국 본인이 갖고 있는 평소 생각이 바탕이 된 태도는 늘 상황을 이길 수 밖에.


문득 몽테뉴가 생각난다. 사냥은 목적은 포획의 즐거움에 있지 않다는 것. 즉 사냥 그 자체와 그것을 둘러싼 모든 것, 사냥을 나갈 때 하는 산책이며 보는 풍경이며, 함께 하는 사람들이며 뭐든 있다는 거다. 포획물에 관심 있는 사냥꾼은 고기 채집자일뿐 과정마다 의미가 있고 수련이 있다는 것. 언뜻 보면 쉬워보이지만 실천하기도, 더군다나 그런 상태에 놓이기까지도 어려운 일일 수 있다.


상당히 똑똑하고 괜찮은데 자격지심에 사로잡혀 매사 자신감이 없는 친구들이 있다. 똑같은 행운과 불운이 찾아와도 행운의 경우 용기가 없어 주워먹지 못하고 불운에는 직격타를 맞아 사경을 헤매다 끝난다. 적어도 내 행복은 선택과 기술의 태도의 문제라는 걸 상기하면 될 것을 자주 까먹는다. 사실 남탓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 그건 비겁의 문제다.  


두려움 없이 본인이 하고자 하는 일을 선택하고 집중하는  아마도 생존에 필요한 기술을 이미 갖고 있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또한 그럴  있는 적당한 상황에도 놓여져 있는 현재가 있을 거다. 그래서 무턱대고 하고 싶은 거만 하고 살라는 그딴 조언 따윈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왜냐면 여기엔 그걸 하기 위해서 해야  일은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역시 하고 싶은 거만 하기 위해서 포기해야 하는 것들에 대한 책임 역시 본인이 져야 한다. 어떻게 생계나 여건 등을 생각하지 않고 그저 취향으로 일을 선택해 지속할  있겠는가.


어떻게 보면 본인과의 경쟁도 팔자 좋은 소리라고 할 수 있겠다. 적어도 다른 건 신경쓰지 않아도 되니까 주저 앉혀야 하는 타인을 볼 필요도 없을 뿐더러 나만 생각하고 나만 바라봐도 되니까.  수험생이야 ‘넌 공부만 해.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게’의 부모님이라도 계시지만 늙어가는 우리의 경우 넋놓고 불평 불만만 하다가 하세월 보낼 수는 없지 않나. 당장 어벙한 삽질은 멈추고 본인에게 주어진 환경 속에서 우수하도록 최선을 다하는 지금을 사는 게 어떨까.


현재는 선물이라는 낯간지러운 이야기는 생략하고, 그래서 “나는 어머니의 자부심이다.” 의 <미생>의 장그래 말을 이렇게 바꿔보고자 한다. 오늘의 우리는 어제의 우리의 자부심이고 싶다고. 깊고 푸른 오늘 밤에 무슨 책을 볼까. 자부심 주사 한방 시원하게 맞을 그거 하나만 생각하고 지리한 오늘 오후를 어서 끝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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