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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한다 Jul 26. 2022

책, 세르파와 함께 여행을

독서사색

드라우파디 무르무전 자르칸드주, 인도의 첫 부족출신 여자 대통령이 탄생했다. 3500년 길고 긴 질곡의 카스트 제도 역사를 뚫고 억압받고 소외된 피지배계층의 한 줄기 희망이 드디어 생겨난 것이다. 나에게도 이와 비견되는 한 줄기 불꽃 스파크가 일어난 적이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전 직장 본관 1층에서 외국인 선주와 거리낌없이 영어를 원어민처럼 하는 중성미 뿜뿜 여선배를 보고, 정말 진심으로 바랐다. 지금까지 임원으로 건재하신 걸로 알고 있어 나의 바람은 아직도 유효하다. 그때부터였다. 나도 내 몫을 톡톡히 할테니 당신도 살아남아주길 바라는 일종의 연대 의식 같은 거

 

나 역시 지지 않고 싶었다. 나부터 쉽게 꺾이고 싶지 않았다. 시들고 싶지 않았다. 내가 선택한 것에 꾸준히 응원을 하고 싶고, 그 기대에 부응하고 싶었다. 그래서 오기 반, 호기심 반으로 전직장서 인도 지역전문가 모집에도 지원한 적이 있었다. 그랬더니 면접에서 인재제일 회사의 인사팀 높으신 양반께서 친히 주시는 질문 “인도에는 성폭행이 많던데, 그런 험한 일 당하면 어떡하려고 해요? ”, “얘는 누가 키운데요? ” 뭐래 킹받네. 가뜩이나 큰 눈에 눈알까지 튀어나오는 줄!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충분히 예상했던 불합격 통지를 받은 후 한참을 생각했다. 내가 뭐 사회운동가가 아니기에 앞에 나서서 이 판을 어떻게 뜯어 고쳐야 할지 관심 밖이나 다만 나 스스로를 실험대상으로 삼아 이것저것 해보자는 생각... <나는 내 파이를 구할 뿐 인류를 구하러 온 게 아니라고>의 저자 김진아는 가능하면 여성 자영업자들을 응원하고 싶어 원두까지 바꿨다고 했다. 그녀의 같이 끌어안고 나아가기처럼 미개한 성개념이 화석처럼 굳어버린 고매한 분들과 두 눈 부라리고 싸우는 것보단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숙제를 하자. 이건 그저 흥미로 하는 게 아니라 각자의 위치에서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노력의 일환으로 보면 된다고, 그것도 내가 할 수 있는 연대라고.

 

사실 난 조선소에서 안성맞춤 인재였다. 키 170에 기골이 장대한, 목소리 우렁찬, 현장 아저씨들과 막걸리 하나로 형동생 할 수 있는 걸걸함도 이미 탑재되어있었다. 나도 진작에 알고는 있었으나, 속으로 내적 갈등과 우려가 있었긴 했다. 내추럴 본 서울 깍쟁이 내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하는 그게 자그마치 10년이었다. 강산이 바뀔 세월을 꾹꾹 채우고 5키로 용달차에 바리바리 내 묵은 짐들을 보고, ‘이 회사는 무슨 열녀문 비석 하나 안 세워주나.’ 혼잣말 했던 게 문득 생각난다. 그때 내게 주어진 실험을 마친 무척 홀가분한 기분이었다.

 

나같이 주어진 과제를 기어이 마친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덜 놀라고 덜 기대하는 덜 불행한 세상은 이윽고 온다. 기약도 없는 낙관론자라고? 아니다. 같이 두 눈 부릅뜨고 살아보시라. 특히 능력주의의 실현에서 성별이 그다지 많은 포션을 차지하지 않는 날은 반드시 올 거라 믿는다. 왜냐하면 소득, 승진, 존중의 불평등이라는 악순환을 끊어야 나를 미지의 세계의 성폭력으로부터 걱정해준 상무도 롤모델인 네이티브급 임원도 그리고 나도 다 행복해질 수 있다는 그 진리는 변하지 않으니까


에브리바디   해피, 그래서  책이 좋다. 책을 본다는 , 책이란 세르파를 동반한 즐거운 여행 같다. 직무와 연관된 책이라면 패키지 여행, 철학이나 인문학 같은 삶에 관련된 책이라면 테마 투어, 자유 여행이   있겠다. 이로서  삶을 보다  충만하고 풍요롭게 살아가면서 막히지 않고 흐르는 ‘이동성있는 자신을 발전해나간다면  또한 즐거운  아니던가.


분명 어떤 카리스마 쩌는 지도자의 어떤 흔들림 없는 기조를 통해 구성원 모두가 깔깔거리며 흡족스러운 삶을 사는 시대는 일찌감치 갔다. 우리는 각기 다른 행성들에서 모인 소우주이므로 그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우리 소우주들은 일단 패키지 여행이든 테마 여행이든 세르파인 책을 벗삼아 여행부터 해야 한다. 그게 내 15년 전 연대감과 꽤나 비스무리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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