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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한다 Apr 19. 2022

어느 고전 읽기 실패자의 퇴로

독서사색

꺼지지 않는 지혜의 등불, 그 이름은 위대하고 찬란한 ‘고전’


교보문고에 따르면 2020년 세계문학 도서의 판매량이 전년 대비 40프로이상 증가했고 최근 들어 소설 검색 분류에 ‘세계문학전집’을 새로 추가했다고 한다. 팬데믹으로 인해 독자들은 고전을 통해 지혜가 필요하다 자각한 것이라고 업계는 판단하고 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고전엔 거의 문맹 수준이다. 예를 들어 이지성의 <에이트 씽크>에서 교과서에서 나올 법한 고전들을 우수수 이야기하는데 숨이 턱,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된 건 왜일까?


첫째, 무관심이다. 지금껏 고전의 ‘고’자도 소설의 ‘소’자도 흥미가 없었거든. 아무리 가볍고 간편한 것으로부터는 얻을 수 없는 귀중한 것들이 그 속에 다 있다고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동인’ 나를 잡아끄는 매력이 전혀 없었다. 자 교보문고에서 지난 3년간 가장 많이 팔린 고전이 ‘데미안’이다. 그 뒤를 잇는 게 ‘인간실격’, ‘빨간머리앤’, ‘페스트’ 네 권 다 내용조차 내 머리 속 지우개가 이미 빡빡 지웠다. 그 중 빨간머리앤은 아마도 TV로 봤지?


둘째, 압박감이다. 이미 ‘고전이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부담감에 짓눌린다. 마케팅, 전시, 홍보를 해왔던 터라 주로 트렌디한 책들을 보며 영감을 얻어온 나로선 시대가 다른 고전이 감각에 맞지 않다고 생각하는  어쩌면 당연하다. 고전을 주로 인용하는 이지성과 채사장의 책을 보면 절대 어지간하지 않으면 웬만하면 그들을 따라잡을  없다는 넘사벽에 막혀  다른 느낌의 답답함과 복창 터지는 느낌 또한 지울  없다.


물론 고전과 친해지려 시도조차 해보지 않았던 건 아니다. 휘발성이 강한 책들보단 진짜 글을 쓰려면 소설을 읽어야 한다는 강권에 의해 시립도서관에서 하는 고전소설 읽기 강좌도 들어보고, 협동정신에 입각해서 책 모임도 하고 있지만 약간 연결고리조차 붙들고 있기에도 갈 길이 멀고 멀다. 어떤 이는 ‘고전’을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나는 마른오징어를 닮았다며, 읽는 턱을 단련하라 하던데 내 경우 그전에 이빨부터 빠지겠는걸?


고전 읽기 미션을 붙잡고 고민하던 중, 일본의 평론가 와타나베 쇼이치의 <지적 생활의 방법>을 보고 무릎을 쳤다. “‘나만의 고전’이 없다면 당신은 아무리 책을 광범위하게, 그리고 많이 읽는다 해도, 당신은 진정한 독서가라고 여길 수는 없다.”


옳다구나. 그렇다면 일단 내 자신에게 깊은 영향을 주는 ‘나만의 고전’부터 꼽아보자. 그걸 곁에 두고 쓰담 쓰담하며 자주 읽는다면 이 또한 의미 있는 일이지 않을까.


강신주의 <감정수업>, 김영민의 <공부론>,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은유의 <쓰기의 말들>. 브라운스톤의 <부의 인문학>, 도리스 메르틴의 <아비투스>, 찰스 핸디의 <코끼리와 벼룩>, 말콤 글래드웰의 <티핑 포인트>...이와 같은 뛰어난 작품을 변한다의 스타일로 고전화시켜 깊이 흡수하는 것, 큰 기대는 없지만 조금 설레긴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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