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변한다 Aug 23. 2022

어찌저찌해서 살아지는 것처럼

독서사색


서울시가 아이 봐주는 조부모 등 친인척에게 소정의 돌봄수당을 지급한다는 뉴스에 아이 때문에 허덕였던 예전이 문득 생각났다. 내 자기소개에 빠지지 않는 단골멘트, “출산 휴가 3개월 빼고는 쉬지 않고 일했어요. ” 와 오버랩되면서...사실 나만 쉬지 않고 일하지 않았다. 내 엄마, 내 아버지가 나와 내 남편의 역할을 대신 해주었기에 그때 그 아기는 어찌저찌해서 시크 중1이 되었다.


내 의지 50에 주어진 환경 50을 더해보니 어떻게든 살아지더라. 내가 편견없이 자랄 수 있었던 건 모두 외할머니 덕분이었다고 하는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넘사벽이고, 시크 중1은 행정복지센터의 영어강의를 매주 듣는 학구열 철철 넘치는 우리 엄마 덕분에 영어 공부에 대한 거부감이 그다지 없다.


무거운 아이를 들어 올리다 손목터널증후군, 허리디스크와 같은 손주병에 시달리면서까지 품에 늘 끼고 사셨던 그 세월에 보답이라도 하는지, 시크 중1은 주 양육자인 우리 엄마를 애미인 나보다 더 사랑한다. 며칠 후면 시아버지 팔순인데 코로나 걸려 건강이 좋지 않으시단 이야기에 나보다도 먼저 안부 전화를 드렸단다. 정말 기특하게도


우는 아이를 냉정하게 놓아두고 서울과 거제를 오고갔던  세월들이 켜켜이 쌓이고 누적돼 이제는 고운 결을 맞추듯 윤이 나고 반짝이게 한다. 나도 부모가 되어서야  부모의 고단하고 무거웠던 삶을 조금이나마   있었다 하면 꽤나 늦은 변명일까. 그래도 꾸역꾸역 여기까지 왔으니, 지금이라도 알았으니 됐다셈치고 매일 감사하며 살아야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학기 적응에 여념없는 아들을 할머니 종일 케어에서 자립시키느라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쥐었던 몇 달 전, 오래간만에 본 무척이나 씩씩한 고교 동창. 중학교 3학년 딸과 7세 아들을 번듯하게 그 누구의 도움없이 손수 키우느라 정신없지만 차분히 묵묵하게 본인의 삶을 살아내는 그녀를 보면서 나는 뭐 대단한 거 하느라 온종일 열불 나 있나. 부끄럽게도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자신과 화해한 자만이 세계에 대한 공정한 태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에릭호퍼의 말처럼 수시로 끓어오르는 분노와 상심을 누르고 한없이 모자란 날 탓하며 그래도 내 자신과 화해해야되지 별 수 있겠는가. 시크 중1보다도 못한 생물학적 나이만 성인이면 되겠는가. 진짜 품이 넓은 으른 되려면 아직 멀었다. 처음 해보는 엄마라 여러가지로 미안하다.


일단 입버릇처럼 하는 말부터 고쳐야지.

애는 잘 커? "말 안들어요. "

말 잘 들으면 얘가 아니지. 아차차 나도 말 안들었잖아.


돌이켜보면 참 어긋한 순간들이 많았고 나로 인해 부모님 속도 많이 썩어문드러졌는데, 정작 '내 아이는 그러면 안돼' 라는 시건방진 생각은 대체 뭐지? 참 내 속 편하게만 생각한다고 반성하게 된다. 요즘 부쩍 아들과 밤마다 이야기할 기회가 많은데 말할수록 갸우뚱 내 아이인가 싶다. 14년 전 내게서부터 분화되어 독립된 또 하나의 주체로 인정해나가야만 하는 시점이 드디어 도래한 거다.


이유남의 <엄마 반성문>을 보면 일단 오더보다 물음으로 이스라엘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많이 하는 말을 예로 들었는데 "마타호쉐프". 그래 너의 생각이 뭐야? 너는 어떻게 하고 싶어? 내가 산 세상보다 더 새롭고 낯선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이 아이에게 나의 말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도 곰곰이 생각해보면서...수학학원에서 돌아올 아이를 기다리는 중 녀석이 좋아하는 블랙핑크와 아이브 신곡을 들어본다. 근데 엄마는 빅뱅의 ‘봄여름가을겨울’ 이 더 좋아.


“아름답던 우리의 봄여름가을가을겨울 비 갠 뒤에 비애 대신 어 해피 엔드 칠색 무늬의 무지개 철없이 철 지나 철들지 못해 철부지에 철 그른지 오래..."

작가의 이전글 거저 되는 것도 대단한 것도 없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