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변한다 Aug 18. 2022

거저 되는 것도 대단한 것도 없는

독서사색


“배고파요. 빵 좀 구워주세요.”

 

요즘 주말마다 사회복지사 실습을 위해 그룹홈에 오전 9시경 출근한다. 도착해 신발 벗자마자 들리는 아이의 목소리에 헐레벌떡 부엌에 들어와 한 시간 내내 8인분의 토스트를 굽고, 소세지 야채볶음에 볶음밥까지 후다닥 해다 바쳤더니만, 중학생 아이는 식탁에 앉자마자 유튜브 삼매경. 내가 손수 만든 음식에 좀 더 집중했음 좋겠다는 서운함과 안타까움이 범벅돼 보다못해 아이에게 한소리를 했다. “씹어 삼키는 것이 먹는 일의 전부가 아니야. 이 음식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얼마만큼 정성이 들어갔을까 생각하면서 먹는 게 어떨까. ”

 

이종건의 <연대의 밥상>을 먼저 읽었더라면 더 친절하게 이야기해줬을텐데 저자는 사람은 마음을 먹으니까 그래서 외로움은 배고픔이고 결국 배고픈 마음들이 밥상을 차리는 것이라 했다. 내가 없는 솜씨 를 부려가며 아이들의 밥상을 정성껏 차리는 건, 밥 한 끼로 인해 내 진심과 애정을 잘 알아주고 소화해줬음 하는 바람에서일 것이다. 실제로 놀이치료할 때 음식은 큰 역할을 한다고 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서 친구들에게 나눠주고 먹게 하는 놀이를 하게 되는데, 그건 그동안 자신이 경험했던 관계를 표현하는 것이라고 한다.


안정된 애착관계를 형성하지 못했거나 학대를 받은 아이들의 경우 사람들에 대한 불신이 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을 괴롭히고 힘들게 한다는 생각을 한다. 이런 아이들은 타인들을 경계하고 의심하게 되며, 그래서 놀이치료를 할 때 보면 독이 들어 있는 음식을 먹여서 죽게 만들기도 하고, 대변 소변 음식을 먹이기도 하면서 자신이 인간관계에서 맛보았던 관계를 재연하기도 한다고 한다.

 

  끼에 놀이치료까지  호들갑이냐고 하겠지만, 그룹홈의 아이들은 대부분 부모의 학대나 유기에 의해 오게 되기에  아이들의 고되고 외로웠던 아픈 시간을 견디어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하는  한끼에 정성과 사랑을 담아 관계의 맛을 알아가게끔 만들어준다면  또한 보람과 성취 아니겠는가.  이번 주말에 하나 덧붙여 알려주고 싶다. 세상엔 거저되는  없다는 

 

우리의 하루를 되짚어 보면 어떤 이들의 크고 작은 수고에 의해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노력들이 흔적을 남기기도 하지만 보이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우린 그저 감사하면 된다. 3개월 전에 시댁에서 얻은 유산균으로 매일 꾸덕한 요구르트를 만들어 먹고 있다. 오도독 누군가를 씹어 먹어버리고 싶을 땐 너트를 넣기도 달달함이 필요할 때는 냉동 블루베리를 녹여 먹기도 했다. 그러면서 형님이 요구르트 직접 만들어먹는 것에서부터 대가족의 대소사를 책임지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을까. 문득 되돌아보게 되었다.


그러니 거저 되는 삶도 대단한 삶은 없다고. 번거롭고 소소한 일을 해내며 사소한 즐거움이나 때론 가벼운 실망으로 채워가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씩씩하게 살아가면 된다고 아이들에게 꼭 말해줘야겠다. 이번 주말엔 냉장고에 있는 보랏빛 가지 좀 볶아볼까. 아점 후 부른 배를 내밀고 1시간 남짓 아이들과 함께 보는 책이 정말 맛있더라고. 주말이 기대되는 목요일이 지나간다.

 

작가의 이전글 사회적 뇌, 렛츠 갯잇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