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변한다 Sep 13. 2022

탈진 끝에 깨달음

지난 추석 끝 무렵 본 안톤 숄츠의 <한국인들의 이상한 행복>에서 유독 푹 빠졌던 평범하지만 실행하기 버겁기도 한 문구, “여행이든 인생이든 나를 풍요롭게 하는 것은 결국 얼마나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라 내가 가진 것을 얼마나 여유롭게 나눌 수 있느냐 하는 마음가짐이다.” 저자는 미얀마 여행 중 갑작스러운 소나기를 만났는데, 우연히 길에서 마주친 노인이 ‘우리나라(미얀마) 좋아요?’ 하고 묻더란다. 좋다고 하니까 잘 익은 망고가 가득한 봉투를 건네주더란다. 저자가 생각했을 때 자신은 미얀마의 평범한 시민보다 상대적으로 가진 게 많은데 이런 걸 받아도 될는지 멈짓 했다고 한다. 나에게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이 나눌 줄 알고 자신과 주변 세상을 어떻게 느껴야 하는지를 미얀마 노인은 저자에게 증명해줬다.


퇴사한지 일주일채 되지 않았다. 안톤 숄츠 독일 아저씨처럼 내가 가진 것들을 4년 동안 전 직장에서 얼마나 나눴으며 내 자신과 주변 세상을 어떻게 느꼈는지 그동안의 내 노력과 피땀눈물들이었던 파일, 사진 등을 보고 지우고 있는 중이다. 그러면서 지금의 그로기 상태에 대한 문득 드는 내 진단은 ‘나 아무렇지도 않고 씩씩해’ 하고 자기 주문은 걸어놨기에 현실을 외면한 채 그냥 내달리기만 하다가, 사실상 대자로 뻗은 탈진이 맞다. 파커 J 파머의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에서 탈진의 정의가 와닿는다. 내가 갖지 않은 것을 주려고 할 때 나오는 결과라는 것. 분명 공허함이지만 내가 가진 것을 주는데서 나오는 결과가 아니고, 그것은 내가 주려고 해도 아무 것도 없음이 드러나는 것일 뿐이라는 것


번아웃도 마찬가지다. 대개는 너무 많은 것을 주려는 데서 나오는 결과라 생각하지만, 내가   없는데 억지스러우니까 이런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탈진은 다른 사람들의 요구와 요청을 돌보기 위해서보다는  자신을 내세우려는 필요에서 나온 부산물은 아닌지, 어찌 보면  말고는 없다는 오만과 착각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겠다는.  이상 이런 사태를 막으려면 무엇보다  ‘참자아 원하는  알고  능력치를  판단해야 한다. 18년차  경우 아무래도 일을 새롭게 배우고  때는 한참 지난 지라 성장감보단 성공하고난  성취감, 잦은 몰입과 막중한 책임으로 인해 탈탈 털리고 '번아웃'되기 마련이다.


또한 번아웃은 일을 많이 해서가 아니라 일만 해서 생기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일이 아닌 다른 곳에서부터 성장감을 느낄 필요가 있다. 나의 생계와 직접적인 상관없는 분야에 관한 공부라든지, 내 경우 성취감도 성취감이지만, 성장감도 중요해 그래서 뒤늦게나마 사회복지 공부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보아하니 나보다 일찌감치 '외부으로부터 오는 성장감'에 눈을 뜬 분들이 많더라. 사회복지 실습에서 만난 어느 분은 금융권에서 20년 넘게 근무하고 있는데, 퇴근 후 헐레벌떡 실습시설로 온 그의 얼굴에 보여진 건 피곤이 아닌 바로 '생기'였다. 참고로 이 분은 평생교육사 2급 과정, 청소년지도사 과정을 이미 수료했다. 참 부지런도 하시지.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게 좋고 그렇게 공부를 하다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는 겸손도 탑재되어 있었다.


사람의 본성을 거스르지 말고 그대로 존중하며 따를 일을 그동안 미련하고 지독하게도 많이 거슬렀던 거 같다. 내 자신의 깜냥과 수준을 외면한 채 '달려라 하니' 따라하다가 자빠지지...통렬한 반성의 의미에서 ‘모든 국민은 자기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는 토크빌 말을 이렇게 바꿔보자. ‘모든 사람은 자기 본성에 맞는 스트레스를 가진다.’ 그동안 되지도 않은 괜찮은 척 하느라고 무지 애썼다. 다음 회사는 내 덩치보다 더 우람하고 씩씩한 분들이 많은, 부디 워라벨이 적정하게나마 지켜질 수 있는 곳으로 가서 내 ‘성장감’에도 지속적인 눈길을 주고 싶다. please!

작가의 이전글 피스타치오 아이스크림이 생각나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