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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한다 Apr 22. 2022

커밍아웃 벽돌책 포비아

독서사색

’내 서재의 벽돌책을 공개합니다. ‘     


내일 세계 책의 날을 맞아 어느 온라인 도서판매점에서 하는 이벤트를 보고 피식 웃음이 났다. 완독하지 못한 도서를 공유하고 함께 읽을 수 있도록 돕는 취지라는데 이쯤에서 커밍 아웃하겠다. 벽돌책을 보면 눈부터 스르르 감긴다. 두께 자체를 보는 것만으로도 책장을 펼치기 전에 이미 콱 질린다. 내 기준에 두꺼운 건 최소 400페이지 이상이다.     


작년 5월의 아픈 추억, 아비지트 배네지의 <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을 호기롭게 샀다. 648페이지...아마도 저자는 2019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라 할 말이 참 많았던 모양이다. 노란색 섹시한 표지가 제발 끝까지 읽어달라고 갖은 유혹을 했지만 선뜻 손이 가지 않더라. 책장 한 켠에 외로이 있는 모습을 차마 두고만 보기에 마음이 아파, 중고서점에 팔아버렸다.     


소곤소곤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방식에 취해 책장을 넘기다보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고, 한달음에 읽어치우게 하는 매력 넘치는 돌연변이들도 있다던데 불행히도 아직 만나지 못했다. 백전백패, 내 무거운 머리는 이미 벽돌 위에 자리잡고 더 무거운 눈꺼풀은 이쑤시개로 쑤시지 않는 이상 미동이 없었다.   

  

내 증상에 적극적으로 공감하는 우군들이 많아진 건 거스를 수 없는 요즘 대세인 거 같다. 아무래도 sns 등 간결한 단문에 익숙해진 탓에 긴 호흡의 문장들을 읽기 버겁게 느껴지거든. 더불어 경쟁력 있는 작가들의 신간을 빠르게 출간하고자 하는 출판사의 다급함이 더해 책은 점점 가벼워지고 있다.     


그러니 보기 힘든 두툼한 책을 무리해서라도 곁에 두고 싶은 오기가 생기는 거다. 사람은 사회적 존재고 내 세계는 내가 서 있는 작은 공동체에서부터 시작되며, 우리는 언제나 양옆의 존재와 자신의 위치를 확인한다. 잘 들여다보자. 자랑스럽게 진열하고 전시하며 소유하려는 그 마음부터 한발 앞섰던 거다.


그래 이 바보야. 문제는 내 마음의 군더더기야. ’지옥으로 가는 길은 수많은 부사로 뒤덮여있다.’는 스티븐 킹의 말을 되새김질해본다. 군더더기는 내 독서생활에서도 완전히 제거하자고 굳은 다짐과 함께 내 서재에서 영문도 모르고 퇴출된 두꺼운 고인들을 위해 진심으로 온전한 애도를 바란다.


변한다  이대로 가볍고 얇은 책들과 함께 나풀거리며 살래.         


PS. 혹시 두께가 무색할 지경의 놀라운 가독성을 뽐내는 책이 있다면 추천바란다. 사양하지는 않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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