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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한다 Oct 31. 2022

‘그냥’은 없는 독서

독서사색

요즘 SNS를 보면 책을 그냥 읽지만 말고 뭐 좀 해보라는 권유하는 내용들이 많다. 몇 권을 읽어서 PDF로 만들어 요약을 해 강의로 팔아보라는, 기록을 남기려 SNS에 정리한 걸 책으로 묶어서 펀딩해보라는, 좋다. 그래 다 좋다. 뭐든. 책에는 ‘그냥’은 없다. 책을 집어드는 순간부터 생기는 온전한 힘을 나는 믿는다. 송수진의 <을의 철학>을 보면 저자는 도서관에서 만난 철학자들은 뭔가를 안다는 것보다 존재의 기쁨을 느끼게 하는 건 없다고. 몰랐던 걸 알았을 때 ‘세로토닌’이 나온다고 했다. 자기의 깊은 내면을 알았을 때 행복해지는 것처럼


변화되더라. 유통에 사회복지에 여러 경험 속에서 생긴 다양한 감정들에 대해 니체나 칸트, 스피노자, 장자 등 다양한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테트리스처럼 딱딱 껴맞추는 저자의 필력과 관조력에 감탄하면서 웬만한 것에 별다른 감흥이나 꿈쩍도 하지 않는 건조기 드라이 시트 같은 나도 변하더라. 결국 책은 산전수전 공중전 다 겪은 저자가 썼지만, 이 내용을 느끼고 소화하는 건 나니까,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읽다가 덮었던 내가 저자 덕분에 용기를 얻어 조금이라도 변화하는 건 결국 ‘변한다’ 나니까. 독서의 힘은 바로 거기에 있는 거다.


상기되더라. 지난 주말 울다 웃었다 한 수달의 <아직 슬퍼하긴 일러요> 10년 전에 유방암 판정 받고 지금은 이겨낸 저자의 그간 이야기를 담았다. 책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품에 한동안 꼭 안고 있었다. 나의 감동의 온기가 그리고 이 책을 만났다는 행운에 고마움이 투병생활로 다사다난했던 저자에게 일말의 작은 희망으로 전해지길 바라며, 우리가 매일 당연하게 살고 있는 이 무사한 일상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값진 건지 그리고 모든 일에는 나쁜 것도 좋은 것도 없다는 것, 또 한 번 배우고 느꼈다.


정돈되더라. 저자가 병에 걸리고 친구 리스트가 정리되었다 말하는 것처럼 나는 책을 내고도 사람들이 갈라지더라. 책을 사보고 동료들에게 권해주면서 다음 책엔 이런 저런 주제를 담았음 한다며 조근조근 이야기해주는 사람에서부터, 평소 책을 좋아한다길래 달라고 해서 줬더니 봤는지 보지 않았는지 1년 가까이 지나도 아직 한마디도 없는 사람까지. 저자가 병을 완치하고 기쁜 마음에 만난 지인 왈 “너무 들뜨지마, 젊은 사람들 암은 모르는거야.” 가시 같은 말은 내 인간관계 정리정돈과 궤를 같이 한다고 하면 다소 무리한 이야기일까.


‘그냥’이 없는 독서의 쓸모를 유예하는 이 말만큼은 금지다. ‘언젠가는’ 꼭 들어맞는 상황이 우리에게 꼭 오리라는 그 절대절명의 절대와 절명은 영원히 없다. 지금은 바쁘니 시간이 나면 언젠가, 당장은 필요없으니 여유가 생기면 언젠가, 이 언젠가는 끝내 우리 생에서 오질 않을 순간이다. 만약 독서의 쓸모가 궁금하다면, 조금은 원하는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을 받는다면 지금 바로 시작하라. 가까운 도서관이든 서점이든 클릭한번에 새세상이 열리는 전자도서관이든 둘러보는 것부터 하라. 더 이상의 ‘언젠가’란 핑계는 쓰레기통에 버리고, 저스트 두 잇, 저스트 리드 잇. 아직 ‘언젠가’의 위력에 단념하긴 이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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