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직관에 응답하고 계신가요?

by 변한다

헤드헌터를 통해 지원해보지 않겠느냐고 의뢰가 들어온 어느 회사, CEO까지 샅샅이 찾아봤습니다. 그럴싸하게 보였지만 지분구조도 미심쩍고, 도통 뭘 해서 이윤을 창출하고 그 주가를 감당하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아니 이거 홍보팀의 잘못인가? 나도 통 감이 잡히지 않는데, 내가 가서 뭘 어떻게 해야 하나? 여러 고민 끝에 지원을 하지 않았고 정중히 사양했습니다. 얼마 뒤 모 시사프로그램에서 대대적으로 다루는 걸 보고 결국 나의 촉이 적중했다 싶었죠. 참으로 아찔했습니다.


우리는 각자 직관을 갖고 있습니다. 특히 인생 중반인 40을 넘어 살다 보면 이런 일이 자주 생긴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게 되죠. 똥을 밟고 지나가느냐 살짝 피하느냐 피할 수 없을 어쩔 수 없을 땐 코라도 막고 점프라도 하느냐 직관이 비춰주는 희뿌연 길의 폭과 깊이에 따라 다릅니다.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지킬 것인가>의 저자 김낙회는 직감이 타고난 것이라기보단 한 사람의 지적 경험의 결과라고 봤습니다. 우리의 직감이란 살아오며 겪었던 온갖 경험, 지식, 개념을 바탕으로 키워진 것 말이죠.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사람이라면 무릇 문제해결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어느 사안에 결정내리는 건, 감으로 한다 해도 그 감이라는 게 삶의 진득한 무언가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결과라고 봅니다. 직감의 성공확률이 높은 건 대운이 들어서라든지 신기가 있다든지 이것도 사실 한 두 번이지, 올바른 결정을 돕는 직감의 날을 갈기 위해 공부를 하고 책을 읽고 그만큼 노력하지 않으면 가당치도 않습니다. 그런 인풋이 대량으로 들어가야지 결국 적절한 결단도 적당한 타이밍에 맞춰 해내지 않겠는지요.


그래서 직관은 사골육수와 같습니다. 요즘 육수는 손쉽게 만들어먹게 작은 동전 모양으로 나오기도 하지 않나요? 필요시 쉽게 직관을 꺼내 쓸 수 있도록 있으려면 지속적으로 경험하고, 생각하고 또 고민해서 나만의 풍부한 암묵지를 평소 잘 만들어놔야 합니다. 내 경우 살려고 어떻게든 견디려고 헤쳐나가려고 책을 더 가까이 했죠. 그래서 <굶주린 마흔의 생존독서>라는 책도 썼고요.


특히 모 지자체에 있으면서 식중독에서부터 노인학대, 아동학대 등 같은 위기관리부터 압수수색, 수사, 송사까지 별별 사안들을 종류별로 의도치 않게 다채로이 겪어서, 작고 큰 일이 일어나지 않는 한가하고도 평화로운 일상을 그대로 의심없이 받아들이기 힘들 정도이기도 하여,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안될 거 같아 텍스트 속으로 풍덩 빠진 거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늙은 조개가 진주를 낳는다는 노방생주(老蚌生珠)란 말을 어느덧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거친 파도의 풍파 속에서도 진주를 끝끝내 품었던 조개의 인내, 끈기를 마냥 미련하고 어리석게 보지 않는, 아마도 나의 직관은 매순간마다 나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직관은 우리가 의도치 않게 뚜껑없는 맨홀 근처에서 어슬렁 거릴 때 다신 빠져 허부적거리지 말라며 서성이는 내 뒷덜미를 붙들고 본연의 위치로 가져다 놓아주죠. 비교란 판떼기에 올려놓고 다른 사람과 내 단면을 평가할 때, 직관은 인생은 길고 성급하게 생각하지 말라며 나를 다독여주기까지 합니다. 직관이 보내는 신호에 응답하는 첫걸음, 그래 다시 글쓰기로